PGA에서 세기의 성 대결 벌인 ‘슈퍼우먼’ 소렌스탐… 거대한 발자국 남기고 눈물 흘리다
“어린 소녀였을 때, 나는 많은 선수들을 존경했고, 그들처럼 되기를 원했다. 만약 내가 여기(콜로니얼 컨트리클럽)에 와서 (남성들의) 골프를 보고 배운 것이 전 세계 소녀들에게 충격을 줬다면, 소녀들이여 꿈이 골프건 노래건 그 무엇이든지 그 꿈을 좇아라. 그것은 원더풀하다.”
‘골프여왕’ 아니카 소렌스탐(33·스웨덴). 전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그의 ‘세기의 성 도전’은 지난 5월24일(한국시각) 컷오프 통과라는 목표달성 실패와 함께 펑펑 쏟아지는 눈물로 결말을 내렸다. 하지만 스웨덴 스톡홀름 출신의 한 여성 골퍼가 남성들을 상대로 보여준 용감무쌍한 도전정신은 지구촌 곳곳에 진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초라한 성적, 그러나 정교한 샷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와, 소렌스탐의 출전을 비아냥거렸던 비제이 싱(피지) 등 정상급 남자 선수들이 뭔가 꺼림칙한 듯 출전을 기피했던 ‘더 뱅크 오브 아메리카 콜로니얼’. 총상금이 무려 500만달러나 걸린 대회였건만, 유명 선수들이 소렌스탐을 의식한 듯 대거 불참했다.
소렌스탐은 이 대회에 출전해 지구촌 미디어의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미국 텍사스주의 작은 도시 포트워스를 일약 유명한 도시로 만들어버렸고, 역시 미국프로골프(PGA) 도전을 꿈꾸는 한국 출신의 13살 천재 소녀골퍼 미셸 위(한국이름 위성미) 등에게 큰 희망을 불어넣었다.
소렌스탐은 콜로니얼 1·2라운드 결과 컷오프 통과에 실패한 뒤 “여기에 올 만한 실력을 갖춘 선수라면 당장 이곳에 와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뒤를 이어 여성 골퍼들의 PGA 도전은 계속돼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어쨌거나, 전설적 골프스타 벤 호건이 5차례 우승한 코스여서 ‘호건의 앨리’(오솔길)라고 불리는 ‘콜로니얼 컨트리클럽’(파70·7080야드)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통산 43번 우승에 빛나는 소렌스탐에게는 쉽지 않은 시련의 무대였다.
소렌스탐은 1라운드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중압감과 자주 접해보지 못한 긴 코스, 빠른 그린의 생소함 속에서도 컴퓨터 같은 샷을 뽐내며 골프여왕으로서의 능력을 한껏 보여줬다.
버디 1개와 보기 2개로 1오버파 71타. 출전선수 111명 가운데 공동 73위. 1위 로리 사바티니(6언더파 64타·남아공)와는 7타차. 경기 기록상으로는 매우 실망스런 결과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다. 소렌스탐은 18개홀 가운데 14개에 이르는 파4와 파5 홀에서 모두 9차례 드라이버로 티샷을 했는데, 가장 어렵다는 5번홀(파4·470야드)에서 공을 왼쪽 러프로 보냈을 뿐, 모두 페어웨이에 안착시켰다. 드라이샷의 정확도는 92.9%. 출전선수 중 단연 1위였다.
“마치 ‘머신’ 같았다.” 그와 함께 ‘영광의 라운딩’을 한 ‘루키’ 애런 바버(미국)는 “18홀을 도는 동안 한번도 샷 실수를 하지 않는 선수와 경기한 적이 없다”며 소렌스탐의 정교한 샷을 극찬했다.
그린 적중률도 77.8%(공동 11위)로 높은 편이었다. 4차례만 샷이 그린에서 빗나갔으나 대체로 그린 바로 옆쪽에 붙어 핀 공략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렇지만 첫 도전인지라 낯설고 어려운, 무려 7080야드나 되는 긴 코스에서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가 269.0야드(공동 84위)로 PGA 선수들에 비해 턱없이 짧은 게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했다. 이 때문에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샷 때는 평소 사용치 않던 6번 아이언 등으로 그린을 공략해야 했고, 자연히 정확히 공을 핀 바로 옆에 붙일 수 없었다. 그것이 버디를 잡지 못하는 결정적 걸림돌이 된 것이다.
여성들의 도전은 계속된다
2라운드는 그것이 더욱 현실화돼 그렇게 잘 치던 드라이버도 난조를 보였고, 그린 적중률도 크게 떨어졌다. 결국 4오버파 74타로 무너졌다. 1·2라운드 합계 5오버차 145타. 출전선수 111명 가운데 공동 96위. 컷오프 기준타수(1오버파 142타)에 4타 모자라고, 1위에는 13타나 뒤진 초라한 성적표였다.
그렇게 잘나가던 골프여왕도 이런 결과 앞에 눈물을 쏟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 2라운드 마지막 18번홀에서 3.7m 거리의 어려운 파 퍼팅을 성공시킨 뒤 환하게 미소지으며 갤러리의 환호에 답례한 그였지만, 이틀 동안 함께 라운딩을 한 딘 윌슨과 애런 바버, 그리고 캐디들과 차례로 포옹하고 돌아선 뒤에는 주먹만한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눈물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경기 내내 날 응원했는데 그들을 실망시켰다. 코스가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았지만 내가 너무 긴장했다. 그러나 PGA 투어에서 경기를 치렀다는 사실이 기쁘다.” 대회에 앞서 ‘우승도 가능하다’고 큰소리를 쳤던 소렌스탐이었다.
그의 용감한 도전에 대해 이번 대회에 출전한 PGA 선수들의 찬사가 줄을 이었다.
“소렌스탐이 멋지고 우아한 플레이를 보여줬다. 정말 슬픈 결말이다.”(댄 포스먼) “지난해 타이거 우즈와 2차례 경기를 했는데, 갤러리와 보도진 등쌀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때문에 나는 경기를 망쳤는데 이런 와중에 71타를 쳤던 소렌스탐은 정말 대단한 여자다.”(케니 페리) “경이적인 플레이였다. 상어(그렉 노먼)와 호랑이(타이거 우즈)에 이어 슈퍼우먼까지 상대하게 됐다.”(예스퍼 파네빅)
대회에 앞서 ‘콜로니얼은 에베레스트 등정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 소렌스탐도 “가능한 한 높게 오르려 했으며, 내가 디딘 발자국은 모두 가치가 있는 것”이라며 어느 정도 만족감을 표시했다.
1945년 로스앤젤레스 오픈에 도전한 베이브 자하리아스 이후 58년 만에 이뤄진 여성 골퍼의 미국프로골프 투어 정복기. 그의 도전은 아쉬운 실패로 끝났지만, 도전정신은 길이길이 여성 선수들에게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당장 올 7월에는 수지 웨일리가 다시 PGA 투어인 ‘크레이터 하트퍼드 오픈’에 나서고, 이어 천재 소녀골퍼 미셸 위가 8월 캐나다 남자프로골프 투어인 ‘베이 밀 오픈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 출전해 남자들과 자웅을 겨룰 예정이다.
김경무 기자 | 한겨레 스포츠부 kkm100@hani.co.kr

사진/ ‘골프여왕’ 아니카 소렌스탐이 호쾌한 드라이브샷을 날린 뒤 공을 쳐다보고 있다.(SYGMA)

사진/ 1,2 라운드 결과 컷오프라는 실망스런(?) 성적을 남긴 소렌스탐이 경기를 마친 뒤 아쉬운 듯 눈물을 훔치고 있다.(SY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