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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꼬~옥 껴안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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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2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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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용호 기자
껴안고 얼굴을 부비는 것만큼 살가운 인사가 있을까. 눈을 맞추고 체온을 느끼는 사이라면, 적어도 쉽게 총부리를 겨눌 수는 없을 거다. 반전 목소리가 뜨거웠던 4월, 서울 인사동 거리에선 이색적인 평화 캠페인이 열렸다. 낯선 사람끼리 서로 안아주는 ‘렛츠 허그’. 8주 동안 진행됐던 행사를 마무리하며 허그 캠페인을 처음 제안했던 임미현(24·성공회대 사회학과)씨와 피터 윌슨(24·영어강사)씨가 포스터 앞에 섰다.

부시와 후세인이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는 포스터 내용처럼 서로 안아주며 평화를 기원하자는 발상은 천진해 보인다. 그러나 이 단순한 행동조차도 감행하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사람들은 전쟁터에서 죽어가는데 겨우 껴안기 캠페인을 하자고 하면 너무 한가해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그러나 모두 같은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평화에 대한 메시지야말로 부드러운 형식을 띠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처음엔 친구들에게 같이 하자고 했더니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덥석 안을 수 있냐며 겁을 내더군요.”

결국 성공회대에 다니는 일본·한국인과 뉴질랜드 출신인 피터가 뭉쳐 10명의 ‘다국적 허그 군단’이 이뤄졌다. 얼굴을 붉히던 친구들도 길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점차 과감해졌다. 기대보다 사람들이 훨씬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평화 메시지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면 스스럼없이 펜을 잡았다. ‘서로 껴안자’고 제안하면 할아버지, 어린이, 외국인 가릴 것 없이 즐겁고 신기해하면서 어깨를 감싸안았다.

“서양인들은 껴안는 인사가 너무 보편적이기 때문에 안고 나서 뒤돌아서면 얼굴도 잊어버릴 정도예요. 하지만 진심으로 상대방을 안는다면 마음을 비운 가운데 충만함이 이는 걸 느낄 수 있지요.” 2년간 머물렀던 한국을 떠나 앞으로 영국으로 갈 피터는 이번 평화 퍼포먼스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됐다고 했다.

이들은 허그 캠페인을 준비하면서 가졌던 세미나 기록과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글과 그림, 사진들을 모아 자료집도 낼 계획이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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