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과 ‘굴욕’이 결국 충돌을 빚었다. 민주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광주 5·18 국립묘지에서 빚어진 일이어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에 쏟아낸 한-미 또는 남북 관련 발언 때문에, 그가 돌아오면 방미 결과를 놓고 조용히 넘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짐작은 국민 누구나 했을 것이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노 대통령이 자신의 발언에 대해 어떻게 해명하는지였다. 정치범 수용소에 있었을지 모른다는 뜬금없는 얘기는 무엇이며, 반미주의자가 아님을 각인시키기 위해 이라크 파병을 서둘러 결정했다는 설명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북핵 문제를 미국의 군사적 위협으로 풀어보자는 주장은 도대체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 등등.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은 젊음 때문이었을까.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은 노 대통령의 발언들을 굴욕외교로 단정짓고 곧바로 항의에 나섰고, 망월동에서의 충돌은 모처럼 화해와 용서의 장을 만들어가던 참여정부와 한총련의 ‘결별’로 이어지고 있다. 한총련이 잠시 기다려주지 않은 탓에 수배 중인 학생들과 그들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님들은 또 긴 세월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오아시스가 되어 다시 돌아와야 할 학생운동까지.
정부는 노 대통령 발언에 대한 ‘해명’이 궁색했던 것일까. 노 대통령이 10여분 늦게 뒷문을 통해 5·18 기념식에 참석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위 학생들을 사법처리하겠다고 나선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의 권위가 손상됐고 법 질서 회복 등의 명분을 내세워 또다시 엄혹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려 한다.
<한겨레21>이 노 대통령에게 보내는 정재욱 한총련 11기 의장의 편지를 게재한 게 불과 한달 전이었고,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출연한 노 대통령이 정 의장을 만나 “<한겨레21>에서 편지를 읽었다”며 화해의 손을 내민 게 5월1일이었다. 그 뒤 한총련은 변화의 몸짓으로, 법무부는 합법화 모색으로 서로 화답하며 때를 기다려왔으나 안타깝게도 당분간은 모든 게 얼어붙을 것 같다. 국민 모두 주목했던 노 대통령의 방미 발언에 대한 평가와 토론까지.
한총련이 정부와 국민에게 주저 없이 사과를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정부도 행사장 경비가 허술해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아닌지 조사하겠다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어 그나마 안도케 한다.
어디까지가 ‘국익’이었고, 무엇이 ‘굴욕’이었는지를 5·18 민주영령들에게 물어보자. 그리고 뭐라고 답하는지 귀기울여보자.
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사진/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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