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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황인덕 · 주순여] 파업은 삶의 가장 강렬한 느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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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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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성모병원 파업으로 맺어졌던 황인덕·주순여 부부…“잃은 것은 돈이요, 얻은 것은 인생이라”

217일 동안 장기파업을 벌인 노동자들의 삶 속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몇백분의 일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성모병원’, ‘강남성모병원’, ‘의정부성모병원’이 모여 있는 ‘가톨릭중앙의료원’(CMC)의 노동자들은 꽃피어 만발한 늦봄부터 낙엽 떨어지는 가을을 지나 한겨울 추위를 견뎌내야 했던 많은 나날들 동안 수백편의 소설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가톨릭중앙의료원 해고 노동자들이 한양대병원 바자회에서 해고노동자 돕기 음식판매활동을 벌였다.(박승화 기자)

끝내 대화를 거부한 신부님·수녀님…

2002년 12월24일 밤, 성탄대축일 전야미사를 1시간 앞두고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가톨릭중앙의료원 한용문 파업대책본부장이 217일간의 장기파업을 끝내는 ‘파업중단 선언’을 하는 순간,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노숙 철야농성을 벌이던 400여 조합원들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아무런 문서 합의도 없이 깃발을 내리고 농성천막을 철거하는 모습을 보면서, 끝내 대화를 거부한 신부님·수녀님·병원관리자들 중에 회심의 미소를 지은 이가 있었다면 천벌을 받을 일이다. “그럴 리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구속, 수배, 해고, 무노동 무임금, 손해배상 청구, 가압류, 병원출입금지 가처분신청, 경찰병력 투입과 강제해산 등 가능한 노조 탄압행위가 모두 동원된 파업 과정이나 조합원들이 현장에 복귀한 뒤 당하는 일들을 보면, 딱히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파업 때문에 해고된 23명의 노동자들 중에서 서울지역에 있는 두 병원의 해고 노동자 18명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심문회의가 열린 지난 4월29일, 반나절이나 걸린 심문회의가 거의 끝나가는 ‘최종진술’ 시간에 다른 노동자들과는 좀 다른 내용의 진술을 하는 선량한 얼굴의 남자 노동자가 있었다. 대부분 그 시간에는 자신의 해고사유에 관해 설명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는 “파업이 좋아서 파업을 하는 노동자들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문을 열더니, 파업에 대한 병원의 대응방식이 얼마나 비합리적이었는지, 병원의 비이성적 대응이 노동자들의 삶에 얼마나 큰 비극을 초래했는지에 대한 설명만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는 “병원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잃은 조합원들은 지금 정신적 공황상태에 있다”고 표현했다. 자신의 해고사유에 관한 설명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최종진술을 끝낸 황인덕(35)씨는 결국 그날 구제되지 않은 몇명의 간부에 포함됐다.

황인덕씨와 그의 부인 주순여(30)씨를 함께 만났다. 남편 황인덕씨는 강남성모병원의 간호부 보조원이자 보건의료노조 강남성모지부 조직부지부장이고, 부인 주순여씨는 같은 병원 외과중환자실 간호사이자 노조 조합원이다. 두 사람이 만나서 가까워지게 된 사연에 대한 궁금증부터 풀어보는 것이 당연한 순서다.

“처음에는 얼굴만 알고 지냈어요. 저는 노동조합 전임자였고 이 사람은 평조합원이었다가 나중에 대의원을 했는데, 노동조합 활동하면서 보니까, 밤 근무 끝낸 뒤에도 내려와서 열심히 도와주는 모습이 참 성실해 보이더라고요.”

황인덕씨가 설명하는데 내가 참지 못하고 채근을 했다. “결정적 순간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흔히 말하는, 필(feel)이 와서 팍 꽂힌 때가 언제였어요?”

황인덕씨는 잠시 생각해보는 표정이 되더니 말한다. “2000년 6월에 파업 전야제를 치렀는데 우리 병원 역사상 처음으로 1천명 이상이나 모였어요. 한껏 긴장된 분위기가 지속되다가 다음날 새벽 파업 시작 직전에 협상이 타결됐지요. 조합원들이 모두 돌아가고, 간부들은 남아서 설치했던 무대도 치우고 뒷정리를 했어요. 그날 둘이 한강변에 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아무래도 그날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 결혼은 ‘노동조합의 선물’이에요.”

간호사 일이 주는 위로와 기쁨

사람들이 꽉 찼다 빠져나가 텅 빈 공간에서 그 행사를 주관했던 사람들이 덩그마니 남았을 때 가슴 가득 밀려오는 쓸쓸하고 외로운 묘한 느낌을 잘 아는 사람은 그날의 분위기를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황인덕씨가 말하는 동안 옆에 앉은 주순여씨는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내내 웃었다.

파업현장의 돌잔치. 지난해 6월 강남성모병원 로비에서 열렸던 황인덕·주순여 부부의 아들 민하의 돌잔치.(박승화 기자)

두 사람은 2000년 9월16일 결혼했다. 상대방의 어떤 점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물었더니 차분한 말씨로 서로 칭찬하기에 여념이 없기에 내가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아직도 서로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했군요?” 그 말에 주순여씨가 눈이 동그래지더니 따지듯 묻는다. “그걸 왜 환상이라고 생각하세요?” 두 사람은 천생연분이다.

부부가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일주일에 두세번이 채 안 된다. 그것도 일부러 시간을 맞춰야 그만큼 가능하다. “남편의 노동조합 활동에 불만은 없느냐?”고 아내에게 물었다. “제 기본적인 생각은,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사람이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이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나는 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별 불만은 없어요.”

주순여씨가 좋아하는 일이란 무엇일까? “감히 천직이라고까지 말하지는 못하지만, 간호사 일에는 보람이 있어요. 기본적으로 남을 도와주는 일이니까요. 환자를 만나 학교에서 배운 대로 대소변 씻는 일부터 온갖 의료처치를 하면서 그 환자가 나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 그 일을 통해 내가 오히려 위로와 기쁨을 얻기도 하는 것, 그런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 그것이 참 좋아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노동위원회 심문회의 최종진술에서 “병원에서 일하면서 간호사가 정말 제 적성에 맞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새로 바뀐 유니폼 세벌이 지금도 비닐에 싸인 채 옷장에 걸려 있습니다. 다시 돌아가 그 옷을 입고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울먹이던 간호사가 생각나 목젖이 울컥 잠겼다.

“저는 남편이 옳다고 믿는 일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있어요. 비록 지난번에 ‘앞으로 한번만 더 잡혀가면 내가 같이 안 산다’고 말하긴 했지만….” 황인덕씨는 파업기간에 병원 로비를 침탈한 경찰들에게 잡혀가 4개월가량이나 갇혀 있다가 집행유예로 나왔다. 남편이 병원 로비에서 붙잡혀가는 순간에도 부인은 중환자실에서 열심히 일했다. 의사들의 파업과 달리 병원 노동조합의 파업은 필수 진료가 꼭 필요한 부서의 조합원들을 파업에서 스스로 제외시킨 채 진행되기 때문이다.

2002년 6월29일, 파업 중이던 병원 로비에서는 두 사람의 아들 민하의 돌잔치가 벌어졌다. 그 소문을 미리 들어 알고 있던 터라 “어떻게 돌잔치를 파업현장에서 할 생각을 했지요?”라고 물었는데, 아,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이었던가.

“아기를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마침 돌 무렵이라 떡이나 좀 돌리고 가려고 생각했어요. 아빠가 체포영장이 발부돼 밖에 못 나가고 병원 로비에서 먹고 잘 때여서 가족끼리 간단히 식사나 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감동처럼…

부인의 말을 황인덕씨가 받아 이었다. “우리가 돌잔치를 준비한 게 아니었어요. 그때 차수련 위원장님도 계셨는데, 제가 어딜 갔다왔더니 조합 간부들이 상을 차렸더라고요. 그날 민하가 볼펜하고 쌀을 손에 잡았어요. 조합원들이 축가도 불러주고, 사진도 찍고. 한용문 지부장님이 정리하는 노래를 조용하게 불렀는데, 그날 조합원들이 참 많이 울었어요. 축의금도 많이 받았어요.”

설명을 듣던 내가 거든답시고 끼어들었다. “축의금 받는 그런 일을 또 챙겨준 사람이 있었군요.” 우문현답의 행진은 계속된다. “조합원들이 봉투도 없이 그냥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찔러줬어요.”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감동도 이것에는 훨씬 못 미치리라.

남편 황인덕씨에게 마지막 말을 부탁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지난해 파업 때처럼 열심히 살아본 적은 없습니다.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것은 미리 짐작했지만, 어렵다고 피해간다면 이 다음에 아이 앞에 당당한 아버지로 설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느 조합원 말대로, 잃은 것은 돈이요 얻은 것은 인생이지요. 앞으로 더 열심히 싸워야지요.”

“남편이 해고됐는데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나의 짓궂은 질문에 주순여씨는 “복직투쟁 한다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까르르 웃었다. 그늘 없이 활짝 웃는 얼굴에 ‘헌법재판소 필수공익사업장 직권중재 합헌 결정’ 기사가 문득 겹쳐져 보였다. 하느님,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착한 노동자들이 잘못된 제도의 희생양이 되어야 합니까

하종강 |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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