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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미국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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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1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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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미국 뉴욕으로 이민 간 고교 동창이 며칠 전 사업차 출장을 와 그곳 동포 사회가 노무현 정부와 그의 미국 방문을 평가하는 얘기를 전해주었다. 그의 얘기를 종합하면 “안정감을 주지 못한다. 촛불시위와 주한미군 재배치 방침이 맞서면서 빚어진 미국과의 갈등도 그 원인 가운데 하나다. 반미 분위기 확산은 미군철수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곧 한반도에서 전쟁을 불러올지 모른다. 이번 방미 때 노 대통령은 ‘읍소’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미국과 갈등을 풀어야 한다”로 정리된다. 전체는 아니겠지만 이런 미국 동포들의 우려와 주문은 ‘친미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고 있는 이 땅의 보수주의자들의 그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일부 언론의 ‘노무현 흠집 내기’와 ‘안보 상업주의’가 해외 동포들에게 먹혀든 탓이리라.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으로 간 까닭은’을 놓고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은 것 같다. 과연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이며, 우리가 미국을 어떻게 대했기에 대통령이 ‘읍소’까지 할 것을 주문받고 있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가 미국을 동맹국이나 우방으로 대접하지 않은 적이 잠시라도 있었던가. 70, 80년대 대학가의 거센 미군철수 요구를 일부 운동권 학생들의 철없는 주장이라고 애써 무시했던 게 미국 자신이었다. 잦은 미군범죄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들이 소파(SOFA) 개정을 요구했지만 그때마다 미국은 우리의 자존심을 무참하게 짓밟기 일쑤였다. 미군기지가 수도 서울의 한복판을 깔고앉아 있어도 정부가 이전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다고 하니 불편을 감수해온 게 우리 국민이다.

부모도 자식이 성장하면 어려워하면서 대접을 달리하게 마련이다. 비약적인 경제성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민주화, 남북화해의 물꼬를 튼 6·15정상회담 등에 힘입어 세계 속의 한국 위상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음을 미국이 모를 리 없다. 따라서 미국은 이제 한국에 대한 대접을 달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의정부 여중생 궤도차량 사망사건에서 보여준 미군 가해자 무죄평결, 일본이나 나토(NATO) 수준의 소파 개정요구 묵살, 미국 비자발급 및 입국심사 강화, 파병 압력 등 최근의 일들은 우리를 너무나 무시한 대접임에 분명하다.

여중생 궤도차량 사망사건이 오는 6월13일로 1년을 맞는다. 미국은 촛불시위가 반미로 이어질 것을 걱정하기에 앞서 한국을 앞으로 어떻게 대접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한동안 유행했던 광고 카피처럼 “‘반미’는 미국 하기 나름”임을 왜 미국은 모르는지.

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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