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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는 한국인의 놀잇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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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1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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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김정운 교수(여가정보학)

김정운 교수의 로또학…정부는 노는 방법 제한말고 서민위한 수익금 활용에 더 신경써야

지난 4월19일 고건 국무총리는 로또복권 1등 당첨금 상한액을 정해 당첨금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며칠 뒤 정부는 다시 방침을 바꿔 1등 당첨금 비율(전체 당첨금 중 46%)을 당분간 현행대로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2∼3개월간 문제점을 점검한 뒤 비율조정 여부를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국무조정실 권혁세 재경금융심의관은 “400억원이 넘는 고액 당첨자도 나왔지만 8억원짜리 당첨자도 나왔다. 당첨금이 들쭉날쭉하고 추세를 확인하기 어려워 몇 개월 더 지켜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첨금 하향조정 방침이 나온 뒤 총리실 인터넷 게시판에 네티즌들의 수많은 글이 올라왔는데, 대부분 왜 당첨금을 내리느냐, 왜 자꾸 정책을 바꾸냐고 비판하는 글이 굉장히 많았다. 로또복권을 사는 국민도 사행심 우려는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 반발에 부닥쳐 로또복권 당첨금 상한액 제한 방침을 철회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셈이다.

사진/ 로또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과 사람이 몰리는 건 그만큼 재미에 목마른 사람이 많았다는 증거다. 한 로또복권 판매점.
총리실 홈페이지는 로또 당첨금 제한을 불평하는 글들로 가득 차 있다. 로또 수익금으로 정부만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거나 상한액을 두면 외국 로또복권을 사겠다고 엄포()를 놓는 글까지 등장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명지대학교 기록과학대학원 여가정보학과 김정운(41) 교수는 “로또 수익금은 정부의 것이 아니라 로또 판에 참여한 대다수 서민들의 것”이라며 “로또 수익금을 달동네 공원 건설과 지역주민들이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나인홀 대중골프장 건설에 쓰라”고 줄곧 외치고 있다. 로또 광풍에 비친 한국인의 놀이문화를 김 교수한테 들어보았다.

-로또 현상을 한국인의 놀이문화라는 맥락에서 자주 얘기하는데….


=로또에 대해 ‘좋다, 나쁘다’라고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 더 할 이야기가 없어진다. 로또를 그저 즐거운 게임으로 보고 그냥 놔둬야 한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게 문제지만 당첨금을 제한하겠다면 로또를 아예 금지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 우리 국민은 재미있는 일에 굶주려 있다. 재미있는 일이 없어서 로또 판을 키워 ‘대박’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로또를 재미 또는 놀이 추구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로또 현상에 숨어 있는 집단심리학적 욕구를 읽어야 한다. 놀 수 있는 장은 마련해주되 노는 방법까지 정부가 관여하지는 말자.

-가만히 놔두면 로또가 건전한 놀이·게임으로 바뀌는가.

=자발적으로 놀게 하면, 극한까지 가본 뒤 재미없고 시시해지면 그만하고 내려오게 마련이다. 당첨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수백만명이 몇번씩 로또복권을 사지만 당첨 가망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현실로 느끼고 나면 점차 스스로 통제할 것이다. 영국에서도 로또 이상열풍이 불었는데 로또 참여가구가 95년 전체 가구의 72%에서 97년 62%로 떨어졌다. 한창 들끓다가도 점차 시들해지는 것이다. 내기가 사회적으로 해롭다면 가위바위보로 내기하는 것도 금지시켜야 하나?

-돈 많은 사람보다는 서민들이 주로 로또복권에 빠져들고 있지 않은가.

=로또를 자연스런 문화현상으로 보자. 먹고사는 문제를 어느 정도 채운 나라에서는 로또를 다 하고 있다. 로또가 아니어도 빚 내서 카지노·경마장 갈 사람은 다 간다. 물론 인생역전의 꿈을 꾸고 카드빚 내서 로또에 몰입하는 사람들은 별개 문제다. 그런 사람은 정신병리학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이런 문제는 로또 이전에도 이미 존재했다. 로또에 기대 일확천금을 꿈꾸게 만드는 사회가 병든 사회다. 대다수는 혹시나 하고 샀다가 꽝이면 역시나 하고 만다. 로또에 그저 재미있어하는 사람도 많다.

-거액의 빚을 내 로또복권 샀다가 패가망신하는 부작용도 크다. 당첨금을 제한하면 폐해를 줄일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재미’라는 게 뭐냐 일단 당첨금이 커야 재미에 빠져들 수 있다. 한국인들한테 익숙한 문화가 ‘따따블’이다. 고스톱에서 쓰리고 피박, 그리고 나가리판이 되면 몇배로 판돈이 커지는데, 이것이 고스톱의 핵심적인 재미 요소다. 확 끌어당기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 1등 당첨자가 안 나와 이월되면 따따블로 당첨금이 커져서 확 달라붙지 않는가

사진/ 여가정보학자인 김정운 교수. 로또를 사소하게 즐기는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해 로또복권 예상 수익금이 1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수익금은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은가.

=로또 수익금은 달동네 공원을 만들거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나인홀 골프장 건설 같은 여가문화 시설에 전액 투자해야 한다. 정부 각 부처의 눈먼 돈이 돼서는 안 된다. 부처별로 이리저리 쪼개 쓰면 어디에 썼는지 표도 안 난다. 이번주에는 서울 노원구에 시민공원 만드는 데 투자하고 다음주에는 서대문구에 시민 골프장 짓는 데 쓰자는 얘기다. 로또 수익금은 서민들이 호주머니 털어서 모은 우리 돈이다. 정부 돈이 절대 아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민간이 참여하는 로또수익금운영위원회 같은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서 여가시설이 가장 빈곤한 지역을 조사한 뒤 그 동네부터 공원을 만들고 나인홀 대중 골프장을 만들자. 내가 산 로또복권 한장이 우리 동네 공원조성에 쓰이는 셈이다. 물론 강남·서초 등 여가문화 시설이 어느 정도 잘 갖춰진 곳은 로또 수익금을 쓰지 않아도 된다. 미국에서 조사한 어떤 보고서를 보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여가시설이 많은 지역일수록 우발적 폭력 같은 범죄도 줄어든다고 한다.

=국민이 노는 데 로또 수익금을 다 쓰자는 말인가.

=그렇다. 지금은 각 부처 예산이 펑크나면 채우는 데 쓰고 있다. 무슨무슨 기금에 넣고 중소기업지원자금 결손을 메우는 데 쓰고 있지 않은가 어디다 쓰는지도 모르게 여기저기 새나가고 있다. 로또를 놀이로, 재미로 하는 서민들이 많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참여해 판돈을 키운 것이다. 따라서 수익금은 서민들의 여가환경을 조성하는 데 모두 쏟아부어야 한다. 정부가 준조세처럼 걷어서 쓰는 것은 가난한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사기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로또가 한국인의 건강한 놀이문화로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인가.

=물론 지나친 로또 광풍은 문제다. 로또를 사소하게 즐기는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다만 로또가 한국인의 놀이문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한국인의 밤문화가 세계 최고라고 하는데, 우리는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놀이를 좋아하고 극단까지 가야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여긴다. 술을 먹어도 갈 데까지 가야 직성이 풀린다. ‘짧고 굵게’ 놀아야 한다는 생각이 폭탄주를 낳았다. 우리는 세상이 뒤집어져야만 재미를 느낀다. 안 되면 술을 왕창 먹어 자기 위장이라도 스스로 뒤집어야 한다. 이쯤 되면 즐기려고 먹는 게 아니다. 로또 판돈이 커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로또를 사소한 즐거움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인생역전’이란 슬로건이 문제라는 뜻인가.

=맞다. 인생역전이니 하는 말을 내건 로또복권 사업이 잘못된 것이다. 로또는 섰다판의 쪼는 맛이나, 낚시로 치면 손맛이다. 그런 재미를 느낄 수 있으면 된다. 로또로 ‘팔자 고친다’고 선전하는 데서 비뚤어진 사행심이 생기는 것이다. 아주 다양하고 사소한 일에서 재미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얼마나 즐길 것이 없었으면 월드컵 때 수백만명이 빨간 옷을 입고 나왔겠는가? 그 당시에도 수영·농구를 즐기는 사람은 있어야 했다. 그러나 경마장도 영화관도 음악회장도 온통 월드컵만 중계했다. 우리의 놀이문화가 빈곤하기 때문이다. 로또에 어마어마한 사람과 돈이 몰려드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재미있게 즐길 것이 없었기 때문에 로또가 등장하자 기다렸다는 듯 몰려든 것이다. 어찌 보면 그만큼 재미에 목마른 사람들이 많았다는 증거다.

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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