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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 딱지, 무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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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0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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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만 신임 국정원 기조실장을 향한 ‘친북좌파’공격이 얼토당토 않은 이유

서동만 상지대 교수가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을 맡기에 적합한지, 부적합한지를 재론하는 것은 뒤늦은 일이다. 하지만 낡은 색깔론으로 한 학자의 사상과 학문적 업적을 일방적으로 재단하는 ‘폭력’이 얼마나 근거없는 ‘선동’인지는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4월22일 국회 정보위는 국정원장 인사청문회 증인으로 나온 당시 서 교수에 대한 ‘미니 청문회’를 약 1시간가량 벌였다. 이 자리에서 여야 의원들은 “박사학위 논문을 보면 친북좌파임을 알 수 있다”, “논문 지도교수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교수가 친북인사라 그 영향을 받았다” 등의 주장을 폈다. 국회 정보위는 다음날 국정원장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에서 “서 교수는 국정원의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의 ‘박사논문’을 보기라도 했는가


사진/ 노무현 대통령이 5월1일 오후 청와대에서 서동만 국정원 기조실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이에 대해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공동대표인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는 “고위 공직자에 대한 검증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검증 자체는 하지 않고 아무 내용 없이 ‘라벨링’(딱지 붙이기)을 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과연 서동만은 친북좌파인가. 이에 대해 민교협과 학술단체협의회 등이 낸 의견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서 교수는 북한 사회의 형성에 관한 뛰어난 연구업적을 쌓은 학자이다. 한 성실한 학자와 그 학문적 업적을 멋대로 재단하고 비난하는 국회 정보위원들은 자신들의 시대착오적이고 반민주적인 만행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

서 실장은 97년부터 2001년 상지대로 옮기기 전까지 4년가량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로 있었다. 학계 인사들은 서 실장이 친북좌파 혐의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신원조회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외교안보연구원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눈여겨볼 것은 서동만 실장 관련 조선·동아·중앙 등 일부 신문의 보도 내용이다. 색깔론을 부풀렸다는 평가를 받는 이들 신문은 주로 정치권의 논란을 중계하는 식으로 보도를 했다. 다시 말해 조·중·동의 기사에서는 서 실장의 북한 연구방법론이나 논문 주장의 허점, 편향성, 사실 관계의 오류를 조목조목 비판하는 학자나 전문가의 실명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서동만이 친북좌파란 주장은 난센스’란 학계의 분위기를 방증하는 것이다.

서 실장의 논문지도교수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친북 인사란 일부 의원의 주장도 사실과 거리가 먼 것이다. 친북 성향의 지도교수 밑에서 배운 서동만도 친북이란 논리에서 나온 이 주장은 그 전제부터 취약하다. 와다 교수는 북한의 국가체제가 1967년부터 72년에 걸쳐 건설되었고 그 토대는 61년에 만들어진 국가사회주의체제라고 본다. 와다 교수는 북한에 대해 수령을 사령관으로 받들며 전 인민은 항일유격대원의 자세로 생활하고 학습하고 생산하는 국가인 ‘유격대 국가’라고 말했다. 그는 유격대 국가는 일종의 커다란 쇼 내지는 연극이란 결론을 낸다. 이런 주장을 펴는 학자한테 ‘친북’이란 딱지를 다는 것은 ‘무식한’ 일이다.

‘북한문제 자판기’의 탄탄한 바탕

사진/ 4월22일 국회 정보위 이윤성 의원은 서동만 기조실장의 스승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교수까지 ‘친북학자’로 몰았다(한겨레)
북한 전문가라고 해도 대개 정치, 경제, 사회·문화, 군사 등 전공에 따라 분야가 나누어져 있는 편이다. 예를 들어, 군사안보를 전공한 학자에게 지난해 7월 북한의 경제개혁인 경제관리개선 조처의 의미를 묻는 것은 적절치 못한 질문이다.

하지만 외교안보연구원과 상지대 교수 시절 서동만 실장은 예외였다. 그는 기자들의 다양한 북한 관련 현안에 관한 질문에 대해 논리적인 답변을 곧바로 해주곤 했다. 그는 거의 모든 분야의 남북관계 현안에 대한 전문가로 여러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에 단골로 등장했다. 당시 통일부를 출입하던 기자들은 어떤 남북관계 문제를 물어도 바로 분석이 나오는 서 실장을 두고 ‘북한문제 자판기’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판기의 바탕은 단순한 순발력이나 말재주가 아니라 탄탄한 박사학위 논문이었다.

청문회에서 의원들은 서 실장의 언론 기고문 가운데 ‘머리 떼고 꽁지 떼고 입맛에 맞는’ 몇 문장을 찾아내 이를 근거로 색깔론이란 녹슨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인사청문회에서 정작 서 실장의 총체적인 대북 인식이 담긴 박사학위 논문에 대해 본격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한 의원은 없었다. 서동만 교수가 95년 도쿄대대학원에서 받은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논문은 ‘北朝鮮における社會主義體制の成立 1945~1961’이다. 우리 말로 옮기면 ‘북한사회주의 체제의 성립과정 1945~1961’이다. 이 논문은 600쪽이 넘는 분량인데 아직 한글로 번역되지 않았다.

이 논문은 북한 사회주의체제가 61년 조선로동당 제4차 대회를 전후로 확립되었다는 인식 아래 45년 해방 이후 이때까지의 시기를 5개 시기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첫째 시기는 해방 이후 소련군의 점령정책의 조정을 받으며 각 도를 중심으로 인민위원회가 만들어진 시기이다. 둘째는 토지개혁 등이 이루어지고 북조선로동당의 창설을 통해 ‘당=국가’가 성립하던 때다. 셋째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전시체제가 생겨난 시기이다. 넷째는 휴전 이후 58년 농업집단화가 완료되기까지 전후 복구건설 등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다섯째는 58년부터 61, 62년까지 통치체제 전반의 개편이 일어나 ‘당의 일원적 지도체계’가 전사회에 깔린 시기이다.

서 실장은 논문에서 다섯개의 시기를 정치적인 세력 관계의 변화 과정을 기본축으로 하면서 당과 정부의 관계, 당과 군대의 관계, 공업부문의 관리체계, 농업생산체제와 농촌통치체제 등 4개 부문의 제도형성이 상호간에 어떤 관계를 맺으며 진행되어왔는지를 전체적인 견지에서 종합하고 있다.

50년대 북한과 서동만의 관계?

사진/ 학자들은 50년 전 한국전쟁 때 잣대로 색깔몰이를 하는 일부 정치권과 언론을 강하게 비판했다.(한겨레 이정우 기자)
이 논문에 대해 김연철 고려대 연구교수는 “1960년대 이후 국내외에서 나온 북한 관련 학위논문 가운데 가장 훌륭한 논문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재 북한체제의 작동원리를 알려면 50년대 북한을 알아야 하며, 50년대 북한을 알려면 서동만의 박사학위 논문을 읽어야 한다는 3단 논법을 펼친다.

50년대 중반 북한은 현재 북한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북한에서는 중공업과 경공업의 우선순위, 농업 협동농장화 등 경제건설 방향을 두고 토론이 벌어졌고 관료주의를 비판하는 문학작품과 독자 투고가 <로동신문> 등에 실리기도 했다. 전쟁 복구작업도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있어 북한 사회는 체제이행의 다양한 길이 열려있었다. 서 실장은 논문에서 김일성 단일지도체제의 확립 등으로 북한사회가 활기와 상상력을 잃고 국가사회주의화된 과정을 분석적이고 종합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50년대의 활력과 다양한 모색을 종파주의의 맹동쯤으로 여겨 관련 논의 자체를 금기시하는 현 북한 지도부 입장에서는 서 실장의 실증적 분석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비판의 근거도 갖추지 못한 채 ‘친북 좌파’라고 우기는 냉전적 색깔론 망령이 되풀이된다면 한국의 미래는 암울하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언제까지 서동만을 위한 변명 같은 기사를 써야하나.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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