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편집국장 출신 박정삼 국정원 2차장… “편집권도 못 지켰는데 국정원을 개혁한다고”
지난 4월30일 국가정보원 고위 정무직 인사가 발표된 뒤 <국민일보> 정치부 기자들은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신임 국정원 2차장에 임명된 박정삼(59) 전 <굿데이신문> 사장 때문이었다. 국정원 2차장은 국내 정보 수집 파트의 최고 책임자로 국정원 요직 중의 요직이다. 그동안 언론계 인사가 2차장에 임명된 전례가 없었을 뿐 아니라, 박 차장이 전문성과 개혁성이 검증된 인물이 아니어서 그의 발탁은 언론계와 정치권에 많은 뒷말을 낳고 있다.
“조희준 회장 기대에 충실히 부응”
그러나 <국민일보> 기자들이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은 이런 점 때문만이 아니다. 박 차장은 1999∼2000년 <국민일보> 편집국장으로 있으면서 기자들과 심한 마찰을 빚었다. <국민일보> 기자들에 따르면 박 차장은 당시 철저하게 조희준 사장의 편에 서서 조 사장의 전횡에 맞서 싸우던 기자들을 탄압해 언론계의 거센 비난을 샀다. <국민일보> 기자들은 “사주의 눈치보기에 급급해 편집권도 지키지 못한 인물이 어떻게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려는 국정원 개혁을 수행할 수 있겠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심지어 “이번 인사는 노무현 정권 인사 중 최악의 작품”이라는 비아냥도 서슴지 않는다. 도대체 그와 <국민일보>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반발이 나오는 걸까.
1999년 9월2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사 빌딩 앞. 낮 12시가 되자 30여명의 <국민일보> 기자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이들의 손에는 피켓과 유인물이 잔뜩 들려 있었고, 머리에는 붉은 머리띠가 둘려 있었다. 곧 김용백(현 <국민일보> 정치부 기자) 노조위원장의 선창에 이어 30여명의 우렁찬 구호가 이어졌다. “박정삼은 퇴진하라!” “분사계획 철회하라!” “경영상태 공개하라!” 이날 집회는 <국민일보> 역사상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회사 사수 투쟁’의 전주곡이었다. 1988년 창간된 <국민일보>는 97년 조용기 목사의 장남인 조희준씨가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언론 사주가 된 조 사장은 회사 경영 개선이라는 명목 아래 연봉제와 분사를 추진하다 노조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조 사장은 “만성적 적자구조에서 벗어나려면 연봉제와 분사가 필요하다”며 이를 강행했고, 노조는 “경영진의 무능함을 사원들에게 전가하려는 행태”라며 반대했다. 노조는 “조 사장이 분사를 통해 <국민일보>를 축소시킨 뒤, 스포츠신문을 창간하는 데 그 역량을 집중시키려는 저의가 있다”며 맞섰다. 조 사장은 편집국 기자들이 주축이 된 노조의 반발로 자신의 뜻을 관철할 수 없게 되자 ‘강수’를 두기 시작했다. 첫 번째 작품이 편집국을 장악하기 위해 박정삼 당시 <한국일보> 비서실장을 편집국장으로 영입한 것이다. 99년 3월 취임한 박 국장은 조 회장(98년 11월 회장으로 취임)의 기대에 충실히 ‘부응’했다. 조 회장은 당시 신문의 1면 사진을 직접 고르고 일부 민감한 기사의 강도와 단수를 조정하는 등 신문 편집에 적극적으로 간여해 기자들의 반발을 샀다. 하지만 박 국장은 기자들 편에 서지 않았다. 오히려 사주의 입장을 대변하며 기자들의 반발을 무마하는 데 힘썼다. 당시 노조원이었던 한 기자는 “조 회장은 편집국 간부들과 사전 상의없이 불쑥 지시를 내려 지면이 엉망이 된 경우가 많았는데, 박 국장은 이를 막기는커녕 반발하는 기자들을 나무랐다”고 말했다.
정찬용 인사보좌관과의 친분
박 국장과 기자들의 갈등은 99년 8월 단행된 편집국 인사에서 절정에 달했다. 박 국장은 노조 수석부위원장 등 노조 간부 2명을 포함한 11명의 기자를 지방으로 발령냈다. 박 국장은 지방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조처라고 설명했지만, 당시 <국민일보>는 지방면이 1개였을 뿐 아니라 지방 주재 기자들이 이미 포진된 상태여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11명 중에는 회사가 주최한 ‘자립경영안 설명회’에서 사측에 경영 상태 공개 등을 요구하며 ‘항명성’ 발언을 한 기자 3명도 포함됐다. <국민일보>의 한 기자는 “당시 설명회에서 회사 간부가 ‘이름을 기억하려고 한다’며 발언을 한 기자들의 이름을 모두 적었는데, 그 중 경영진을 비난한 기자들이 인사에 포함됐다”며 “박 국장이 사주의 지시에 따라 인사를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고 말했다.
박 차장은 5월2일 <한겨레21>과의 전화통화에서 “그 인사는 지방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에서 나온 것이지만 당시 시끄러웠던 노사문제를 잠재우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각 부장들로부터 인사 대상을 추천받아 한 것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박 차장은 99년 9월 노조가 실시한 편집국장 퇴진 찬반 투표에서 97%의 ‘압도적’ 비율로 퇴진을 요구받았지만 조 회장의 든든한 지원으로 버텨냈다. 하지만 그는 2000년 3월20일 김용백 노조위원장이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가자 편집국장을 사퇴한 뒤 조 회장이 창간한 <스포츠투데이> 전무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2001년 다시 <국민일보> 부사장으로 복귀하지만, 곧 새로 창간된 <굿데이신문> 대표이사로 영입됐다.
청와대는 박 차장의 인선 배경에 대해 “기자 출신으로 상황 판단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여러 조직에 근무하며 조직관리 능력도 검증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박 차장에 대해 완벽한 검증을 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일보 사태는 당시 언론계의 최대 화두였을 뿐 아니라, 조희준 회장이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탈세(25억원)와 횡령(183억원) 혐의로 구속되면서 다시 관심을 끌었던 사건인데 이를 너무 가볍게 본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보좌관은 이에 대해 “국민일보 사태 얘기를 들었지만, 그가 80년 신군부의 언론 탄압에 맞서다 해직되는 등 언론 발전에 공로가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박 차장과 광주일고 선후배 사이인 정 보좌관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애초 국정원 2차장은 다른 언론계 인사가 거론됐는데 그 인사가 고사하자, 정 보좌관과 친분이 있는 박 차장이 추천됐다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박 차장은 인사보좌관실에서 강력하게 천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이런 분석을 뒷받침했다.
당시 <국민일보>에 다니다 퇴사한 한 기자는 “언론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심도 없이 사주 눈치보기에만 급급했던 사람에게 국정원 개혁을 맡긴 것은 난센스”라며 “청와대 인사 시스템이 허점을 드러낸 인사”라고 말했다.
이춘재 기자cjlee@hani.co.kr

사진/ 국정원의 요직인 2차장에 임명된 박정삼 전 〈굿데이신문〉사장.
1999년 9월2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사 빌딩 앞. 낮 12시가 되자 30여명의 <국민일보> 기자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이들의 손에는 피켓과 유인물이 잔뜩 들려 있었고, 머리에는 붉은 머리띠가 둘려 있었다. 곧 김용백(현 <국민일보> 정치부 기자) 노조위원장의 선창에 이어 30여명의 우렁찬 구호가 이어졌다. “박정삼은 퇴진하라!” “분사계획 철회하라!” “경영상태 공개하라!” 이날 집회는 <국민일보> 역사상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회사 사수 투쟁’의 전주곡이었다. 1988년 창간된 <국민일보>는 97년 조용기 목사의 장남인 조희준씨가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언론 사주가 된 조 사장은 회사 경영 개선이라는 명목 아래 연봉제와 분사를 추진하다 노조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조 사장은 “만성적 적자구조에서 벗어나려면 연봉제와 분사가 필요하다”며 이를 강행했고, 노조는 “경영진의 무능함을 사원들에게 전가하려는 행태”라며 반대했다. 노조는 “조 사장이 분사를 통해 <국민일보>를 축소시킨 뒤, 스포츠신문을 창간하는 데 그 역량을 집중시키려는 저의가 있다”며 맞섰다. 조 사장은 편집국 기자들이 주축이 된 노조의 반발로 자신의 뜻을 관철할 수 없게 되자 ‘강수’를 두기 시작했다. 첫 번째 작품이 편집국을 장악하기 위해 박정삼 당시 <한국일보> 비서실장을 편집국장으로 영입한 것이다. 99년 3월 취임한 박 국장은 조 회장(98년 11월 회장으로 취임)의 기대에 충실히 ‘부응’했다. 조 회장은 당시 신문의 1면 사진을 직접 고르고 일부 민감한 기사의 강도와 단수를 조정하는 등 신문 편집에 적극적으로 간여해 기자들의 반발을 샀다. 하지만 박 국장은 기자들 편에 서지 않았다. 오히려 사주의 입장을 대변하며 기자들의 반발을 무마하는 데 힘썼다. 당시 노조원이었던 한 기자는 “조 회장은 편집국 간부들과 사전 상의없이 불쑥 지시를 내려 지면이 엉망이 된 경우가 많았는데, 박 국장은 이를 막기는커녕 반발하는 기자들을 나무랐다”고 말했다.

사진/ 99년 9월 국민일보사태 당시 기자총회에서 〈국민일보〉기자들이 박정삼 편집국장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왼쪽). 같은해 10월 열린 거리시위에서 〈국민일보〉노조원들이 조희준 당시 회장의 독선적인 경영을 규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