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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호치민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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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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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용무로 베트남 호치민시를 찾은 게 4월23일이었다. 2박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4월30일이 베트남 전쟁 종식 28돌이라고 해서 바쁜 일정을 쪼개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통일회당(옛 대통령 관저)을 다시 찾아보았다. 대회의실과 연회실, 응접실, 오락실, 댄스홀, 옥상 헬리콥터장 등의 사치와 호화로움에서 부패한 남베트남 정권의 몰락은 필연이었음을 발견한다. 특히 남북 베트남의 갈등이 심화되고 미군 주둔으로 전면전 가능성이 높아가던 1962년부터 4년여에 걸쳐 이 건물을 지었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서 사담 후세인을 떠올려보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리라. 그가 과연 이라크 경제개발과 자주국방의 토대를 마련한 영웅적인 지도자였는지, 친족들의 부패를 묵인하고 출신지역 인물들만을 중용한 봉건적인 지도자였는지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바그다드 함락 뒤 TV에 비친 호화로운 대통령궁과, 둘째 부인의 생일파티에 등장한 10층짜리 케이크, 약탈이 줄을 이었으나 아직 남아 있는 첫째 부인 집의 고급 양탄자들, 대통령궁 벽에 감춰진 6억달러 등은 일그러진 지도자의 모습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베트남 통일의 아버지’ 호치민은 더욱 빛을 발한다. 몇해 전 하노이를 방문했을 때 둘러본 호치민 묘와, 그가 죽기 전까지 10여년간 살았던 목조가옥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평생을 독신으로 조국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살았던 호치민. 그의 유품은 작은 나무 책상과 침대, 책과 시계 등이 전부였다. 노구를 이끌고 러닝셔츠 차림으로 병사들과 함께 모래주머니를 나르는 사진 속의 호치민. 온몸으로 외세에 저항한 혁명가이면서도 베트남 어린이와 농민들로부터 친근감 있는 ‘호 아저씨’로 불렸던 호치민.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은 “위대한 지도자야말로 모든 인간성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며 지도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회가 혼란스럽고 격변할수록,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가 높을수록 국민은 진정한 지도자의 출현을 갈구한다. 우리에겐 백범 김구 선생이 있었다는 자부심이 있지만, 불행하게도 반세기 동안 그런 지도자를 또 다시 만나지 못했다. 지금, 우리 국민은 지혜와 역량을 하나로 모아내고 민족의 갈 길을 밝혀줄 진정한 지도자를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측근들이 줄줄이 검찰조사를 받고, 북핵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야 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사담 후세인과 호치민을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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