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발바닥’은 말한다
등록 : 2003-04-30 00:00 수정 :
양심수 석방과 정치수배 해제를 위한 전국 교도소 도보순례단의 출발을 앞둔 지난 3월22일 오전. 대학을 마치고 군입대를 앞두고 있던
이명원(30)씨는 한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이씨는 도보순례단의 기수로 서울구치소를 출발했다. “대학에 다니면서 양심수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어요. 양심수 석방과 정치수배 해제를 온몸으로 이뤄내고 싶었습니다.”
이씨를 비롯한 도보순례단은 하루에 30여km씩 956km를 걸어 의정부·천안·대전·광주·진주 등 전국 10개 교도소를 차례로 방문했다. 부산·안동 교도소도 방문하려고 했지만 기결양심수가 사면대상자에 포함되면서 예정보다 일찍 순례일정을 마감했다. 36일 동안의 대장정을 마감한 순례단은 4월27일 연세대 정문 앞에서 열린 ‘전국교도소 도보순례 보고와 선별사면 반대, 정치수배 해제 촉구 문화제’에 참가했다.
“도보순례 기간에 연인원 500여명이 참여했어요.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참가한 아빠도 있었고, 걷지는 못해도 함께하고 싶다며 차량운전을 자원한 분도 있었어요.” 이명원씨는 도보순례단 최진수(41) 단장과 함께 잠시도 순례단을 이탈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강철 발바닥’이 커다란 자산이었다. 하루만 걸어도 물집이 생겨 고통받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이씨는 순례일정 동안 발바닥으로 인한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막바지에 무릎을 다쳐 조금 고생했을 뿐이다.
도보순례단의 활동은 무작정 걷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하루 8시간 정도 걷고 나면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천막 간담회’가 기다렸다. 게다가 이씨는 도보순례단의 하루를 정리해 인터넷 사이트(
www.yangsimsu.net)에 올리는 한 임무를 따로 맡았다. 두 시간여 동안 일지를 작성해도 PC방이 없어 다음날까지 묵혀두기 일쑤였다. 이씨가 올린 순례일지는 동참자를 모으는 구실을 톡톡히 했다. 넉넉한 웃음과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동이 있었기에.
진주교도소에서 마지막 밤을 맞은 순례단은 아주 특별한 의식을 가졌다. ‘양심의 타임캡’을 만든 것이다. 10여명의 순례단원은 저마다 소중한 것들을 캡슐에 넣어 10년 뒤 만나서 풀기로 했다. 거기엔 함께 한 모습을 비디오 카메라에 담은 테이프를 비롯해 순례일지, 다짐의 글 등이 들어 있다.
도보순례를 통해 사람을 깊고 굵게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는 이씨는 떠날 때보다 마음이 무겁다. 아직 양심수 이석기씨가 감옥에 있고 정치수배는 풀리지 않았기에. 이씨는 다시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다. 강철 발바닥이 입소문으로 퍼져 ‘미군기지 도보순례’를 시작하는 여중생 범대위가 ‘특별초빙’한 것이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