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딛고 다시 일어선 그녀, 여성 상품화 반대집회에서 평화 메신저로 무대 선다
‘양자리 여성. 스칼렛 오하라가 전형이다. 열정적이며, 어리석을 정도로 충동적이고 자만심이 강하다. 이런 여성에게는 승리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최근 발간된 <여성을 위한 심리 점성학: 섹스 사인>이란 책에 적힌 ‘점괘’를 일러주자, 백지영씨는 금세 긴장을 풀었다.
“이 책은 서점에서 살 수 있는 거죠 타로점 보셨어요 얼마 전에 봤는데, 예언이 너무 적중해서 무서웠어요.” 그리고는 “<델라구아다>의 힘찬 공연을 봤느냐”, “거기 나오는 여배우들의 우람한 장딴지가 왜 그렇게 멋있어 보이는지 모르겠다”며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여성단체에 대한 선입견을 깨다
처음 백지영씨를 봤을 때 긴장하고 맥빠진 모습에 다소 당황했다. 이내 활기를 되찾은 그를 보니 2년 전 기자회견장에서 마주쳤던 때가 떠올랐다. 생각지도 않았던 비디오 파문. ‘눈물의 기자회견’이라는 말은 상업주의 언론의 ‘창작’이었다. 정작 그는 기자회견 내내 놀라우리만치 당당했다. 눈물을 흘린 건 기실 찰나에 불과했다. 자신을 향해 내리꽂히는 관음의 시선들을 오롯이 받아내며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잊지 않았다. 기획사와 합의한 ‘대본’에는 없었던 말이다.
“무대를 사랑하고, 무엇보다 저 자신을 사랑합니다.”
내밀한 비디오를 악의적으로 공개한 공범 가운데 붙잡힌 한명은 ‘2년 징역’의 실형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2년이 흘렀지만, 세상은 지금껏 피해자인 백씨를 ‘사면’하지 않고 있다. “나는 사랑을 했을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전국투어 콘서트나 새 앨범 발매 등 재기의 노력을 기울여도 “더 자숙하라”는 싸늘한 반응은 여전했다.
칩거하고 살아오던 그가 최근 용기를 냈다. 오는 5월10일,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에서 주최하는 <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에 참가하기로 한 것이다. 미인대회와 여성의 상품화를 반대하는 이 행사의 올해 주제는 ‘오 피스 코리아’(Oh! Peace Korea)다. 백씨는 이날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을 반대하는 평화의 메신저로 무대에 선다. 공연 개런티는 전액 이라크 여성돕기에 내놓을 작정이다.
“지금 가장 불행한 이들이 바로 이라크 여성들이잖아요. 가족을 잃고 생명을 위협받는 힘든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제 일에 제가 나설 순 없지만, 남을 돕는 일엔 언제든지 오케이예요.”
비디오 파문을 겪으면서 그는 “아, 이러다가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절망했다. 그 시절에도 유일하게 자신의 편을 들던 이들은 여성단체뿐이었다. 언론의 관음증과 폭력을 고발하고 나선 여성들은 꼭 자신의 일처럼 바쁘게 움직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백씨는 ‘여성운동가들은 과격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성단체를 방문하고는 퍼뜩 깨달았다. 어느 만삭의 간사를 본 순간 그는 ‘아, 나도 저들과 똑같은 여성이지’ 하고 생각했다. “사람이 어떤 싸움에서 격렬해지는 건, 자신의 권익을 위해 싸울 때가 아니라 남들을 위해서 싸울 때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오히려 더 열을 내기도 해요.”
든든한 버팀목, 아버지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넌 남자라서 그렇지”라고 말하는 일이 잦아졌다. 지금은 자신으로 인해 ‘성폭력’, ‘사이버 테러’ 등 여성문제에 사회적 관심이 쏟아진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사회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졌다. 백씨는 벌써 1년 넘게 동티모르와 아프리카 등 분쟁지역 어린이 지원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 사건’ 직후부터 대한사회복지회 서울영아임시보호소에서 버려진 아기들을 돌보기도 했다.
“봉사정신이 투철하다기보다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워낙 애들을 좋아하거든요. 버려진 아기를 돌보려고 하니까 저희 집 앞에 영아보호소가 있더라고요. 단순하게 시작한 거예요.” 실은 이런 얘기조차 조심스럽다. 재기를 위한 홍보전략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그래서 그는 “이런 얘기를 너무 많이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유독 아이들이나 강아지처럼 약하고 어린 것들에 눈이 갔다. 주위에선 “집착이 강하다”고 말할 정도다.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를 돌보는 일엔 인이 박였어요. 사춘기 시절에 할아버지 병수발을 오래 했어요. 엄마 아버지가 모두 직장에 다니셨거든요. 10대 때는 괜히 불만이 가득하잖아요. 그래서 힘들었죠.” 예나 지금이나 ‘집안일’은 언제나 맏딸 몫이다. 타고난 생기발랄함을 접고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할아버지 곁에서 몇년의 어두운 시간을 보냈지만, ‘누군가 해야만 할 일’에 대한 책임감이 길러진 것도 같다. 지금껏 그때 일을 미안해하는 아버지는 누구보다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당당한 백지영’의 태도는 바로 아버지한테서 배운 것이다. 2000년 12월31일 사건 직후의 ‘고별 콘서트’에서도 아버지는 딸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앉아 처음부터 끝까지 자릴 지켰다.
아버지 외에 지원군을 찾자면, 자신의 컴백을 바라는 팬들이다. 지난 4월12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사이버테러 편’이 방영된 뒤 소리 없이 자신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도 “정말로, 너무 큰 도움”이 된다. 오는 6월엔 홈페이지를 만들어 ‘백지영의 상담코너’도 운영할 생각이다. 자신을 믿고 이메일로 상담해오는 여성들과 청소년들의 고민을 들어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4집 앨범을 만드는 일이다. 예전보다 음악적 욕심이 많아져 이번 앨범 작업 땐 작사까지 직접 하게 됐다.
6월부턴 ‘백지영의 상담코너’도 운영
“슬프지만 희망적인 유재하씨 노래가 좋아요. <가리워진 길> 아세요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아득하기만 한데…. 단순하잖아요. 하지만 그런 가사가 진짜 같아요.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움직이잖아요. <델라구아다> 공연처럼 꿈틀거리는, 강렬하면서도 힘이 있고 열정적인 무대도 만들어보고 싶고….”
자신이 꿈꾸는 무대를 설명하면서 눈빛이 강렬해졌다. 그런 그에게, 무대가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저는 무대를 사랑해서 노래하는 가수가 아니에요. 무대에 서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에요. 죽는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는 노 화가의 심정이 이해가 돼요.”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알고 실천하는 사람. 세상이 자신을 버려도 자신이 세상을 사랑한 만큼 살아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여성’이며 ‘가수’인 백지영씨다.
이김유진 기자/ 〈한겨레〉스카이라이프부 frog@hani.co.kr

사진/ 자신에 대한 사랑과 함께 남을 위한 싸움을 준비하는 백지영씨. 4월 햇살을 머금은 그의 미소가 싱그럽다.(스카이라이프 정용일)

사진/ 스카이라이프 정용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