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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시장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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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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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사람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폭격으로 애꿎은 민간인들이 살상되는 장면을 안방에 앉아 실시간으로 감상하면서도 이라크군이 좀더 버텨주길 바랐다. 베트남에서와 같은 기적이 일어나 오만한 제국의 콧대를 꺾어주길 바랐다. 그러나 생화학무기는커녕 제대로 된 저항조차 없이 허망하게도() 전쟁은 끝나버렸다. 얼굴에 성조기를 뒤집어쓰고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동상의 모습 위로, 우리의 독재자가 총 맞아 죽던 날 ‘각하의 유고’를 발표하며 눈물범벅이 된 채 말을 잇지 못하던 어느 고위 관료의 얼굴을 담은 흑백화면이 겹쳐지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재벌의 자업자득

한편으로, 어느 영화에서나 항상 좋은 나라이고 우리 편이던 미국이 왜 광주학살을 구경만 했는지, 군사정권을 지지해주는지 섭섭했던 내 어린 날의 아스라한 기억도 되살아났다. 소련의 체첸 침공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안 하더니 부자끼리 나라 말아먹는 독재정권 무너뜨리는 정당한 전쟁 앞에 반전·반미의 목소리를 드높이는 ‘진보꼴통들’을 준엄하게 꾸짖는 ‘민주주의자’의 인터넷 게시글을 읽으면서, 하나의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위험한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완전히 다른 영역의 주제를 섣부른 유비로 해석하는 것은 외견상 갖는 설득력만큼이나 논리적으로는 취약한 것임을 알지만,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보면서 나는 새삼스레 재벌개혁을 둘러싼 작금의 논란을 떠올린다.

사실 그다지 새로울 것도, 놀라울 것도 없는 분식회계로부터 시작된 사단은, 막강 재벌그룹의 알짜배기 회사가 정체조차 불분명한 외국계 펀드에게 어이없는 헐값에 경영권을 빼앗길 위기로까지 비화하였다. 따지고 보면, 부실경영에 부자세습, 편법상속이나 정경유착 따위를 통해 오랜 세월 누려온 절대권력이 세계화의 물결 앞에 허망하게 무너지는 형국이니, 인과응보요 자업자득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재벌들은 출자총액제한제도니 뭐니 하는 개혁조치들이 국부의 유출을 가져왔다고 볼멘소리로 외쳐댄다. 사실 재벌이 투자를 위축시키고 나아가 경제를 죽인다는 협박으로 개혁의 칼날을 무디게 만든 것이 한두번도 아닐진대 레퍼토리만 약간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은 전혀 없는 듯하다. 해서 소액주주운동과 편법상속에 대한 끈질긴 문제제기를 통해 재벌개혁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던 시민단체쪽에서는 여전히 중단 없는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예의 그 논란이건만, 이번에는 다소 희한한 편가르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복잡해진 것은, 같은 개혁진영에 속하는 일단의 전문가들이 결과적으로는 재벌의 편에 서는 듯한 주장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주주가치의 극대화라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결코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다른 한편으로는 외국계 자본에 국민경제 또는 민족경제의 기반을 송두리째 내어줄 수 없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글쎄, 자본에게는 국적이 없을지언정 자본가에게는 국적이 있으며, 노동자에게도 때로는 조국이 필요하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임을 인정한다면, 국민기업이니 바이 코리아니 하는 식의 얼토당토않은 선동으로 자본의 논리를 뒷받침할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초국적 금융자본의 무차별 공격으로부터 우리의 기업을 지키는 것이 무의미한 일은 아닌 듯싶다.

진정한 해방이란…

어쨌든 항상 시장논리를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그것을 밥먹듯이 짓밟던 재벌이 제대로 ‘시장의 복수’에 걸려들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결국 어제까지 시민단체를 사회주의적이라 매도하던 그들은 오늘 새삼 민족주의자가 되어, 그 사회주의자들이 실상은 외국자본과 협잡하여 국부를 유출하려는 첩자였다는 선전선동으로 위기를 돌파하려 한다. 한때는 민족이란 말만 들어도 비분강개했거니와 또 한때는 좌우를 막론하고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부조리한 현실을 감상적으로 덮어버리려는 시도에 진저리친 적도 있었건만, 이번에는 어찌된 일인지 한두 가지 잣대만으로는 명쾌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 무너지는 독재자의 동상을 보면서 해방이 왔다고 기뻐할 수도 없되, 그렇다고 목숨 걸고 침략자와의 성전에 나서라고 독려할 수도 없는 꼴이라고나 할까

‘우리’와 ‘그들’을 제대로 구별하기도 어려울 만큼 뒤얽힌 전선 속에서 그저 무기력하게 독재자의 개과천선이나 침략자의 선의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독재자 일가를 보호해주는 것이 진정한 주권의 옹호일 수 없듯이,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하지 못한 해방이 진정한 해방일 수는 없다는 점이리라.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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