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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중국 동포는 죄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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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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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감에 떨다 귀국하는 동포·유학생을 사스 환자 취급하는 언론과 정부의 태도에 대하여

한달 전부터 베이징은 사스 공포 분위기가 감돌았다. 초기에 한국 동포들은 중국 사람들에게 ‘호들갑을 떤다’는 핀잔까지 들어가며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베이징시 당국의 늑장 조처에 분노를 터뜨려보았지만 외국인으로선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뒤늦게 중국 정부와 언론은 사스에 대한 방역체계를 마련하느라 부산한 모습이다. 그런데 최근 베이징의 학원 거리라는 우다오커우 지역에 사스 공포가 밀려오면서 한국 동포들은 불안심리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안부를 물어도 부족할 텐데…

사진/ 지난 3월 말 홍콩 주재원과 가족들이 귀국할 때부터 귀에 거슬리는 풍문이 동포사회에 나돌았다. 정부가 마치 심문하듯 동포들을 대한다는 소식이다.(한겨레 이종근 기자)
베이징대 경제학과 교수가 감염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베이징대는 사실상 휴교에 들어갔다. 학원거리인 중관춘 소재 3개의 초등학교도 감염된 학생이 나타나면서 휴교에 들어갔고, 인근 대학들도 하나둘씩 휴강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약 1만5천명의 한국 유학생이 밀집해 살고 있는 학원가는 술렁이기 시작했고, 귀국을 서두르는 유학생이 늘어나고 있다.


베이징의 한국 동포들은 하루하루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놓고도 하루 종일 마음을 놓지 못하는 학부모들, 학교에 다니면서도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학생들…. 직장에 나가도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귀국하는 중국 유학생들로 인해 사스가 전파될 것을 우려하는 한국 언론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중국 생활을 하고 있는 동포들에게 눈물이 핑도는 서글픔을 안겨준다.

한 인터넷 언론은 “중국 유학생이 사스를 몰고온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내 동포들에게 고국은 늘 찬밥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했다. 중국에 살고 있는 대다수 동포와 유학생들은 해외로 외유를 나온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현재 한국의 최대 수출대상국이라는 중국에서, 철저하게 실리를 따지는 중국 사람들에게 한국 물건을 팔고 있는 경제 일꾼들이다. 그리고 미래의 한국을 짊어질 유학생들이다. 이들이 사스 공포에서 떨고 있을 때 안부를 묻기 전에 그들의 귀국이 국내 사스 상륙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다는 사실에 동포들은 고국에 대해 실망을 넘어 절망을 느낀다.

지난 3월 말 홍콩 주재원과 가족들이 급거 귀국할 때부터 귀에 거슬리는 풍문이 동포사회에 나돌았다. 중국에서 왔다고 하면 친지들조차 만나기를 꺼린다거나 중국에서 온 비행기는 승객들을 마치 심문하듯 하거나 사스 보균자인 것처럼 대한다는 등의 소문이다. 그때까지 동포들은 안전에 대한 철저한 대비라고 해석하며 웃어넘겼다. 그러나 최근 베이징에 사스 확산이 심각해지자 급히 귀국하는 유학생들을 향해 사스를 몰고오는 전염병 환자 취급을 하는 것에는 분노를 터뜨릴 수밖에 없다.

중국과 한국, 이중의 박대

‘우리나라만 안전하면 최고다’는 이기적 발상이 경제성장을 위해 사스의 심각성을 알리지 않은 중국 정부의 태도와 무엇이 다르냐는 반문을 하게 된다. 내가 사는 곳만 안전하면 된다는 생각은 곧 내 가족만, 나만 안전하면 된다는 극단적 이기주의를 낳을 수 있다.

“한국 사람은 김치를 먹어 안전하다, 사스 진단법이 개발되었다”면서 한국이 안전하다는 점을 내세우는 언론에 대해 중국 동포들의 안전을 걱정해달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였을까. 갑자기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외국민 참정권을 보장해달라는 동포들의 목소리가 허공으로 날아가버린 사실이 떠오른다. 그때도 스스로 선택한 해외생활인데, 한국 정부가 왜 돈을 써가며 참정권을 보장해줘야 하는가 하고 따지는 듯한 태도에 싸늘함을 느꼈다. 중국 정부에게는 그저 돈벌이 대상으로, 한국 정부에게는 사스 보균자로 홀대받는 한국 동포들. 지금 그들은 죽음으로 이어지는 사스 공포보다 한국 정부와 언론의 냉정함이 더 무섭다.

베이징=황훈영 전문위원 kkccjjh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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