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을 풀어라
등록 : 2003-04-23 00:00 수정 :
‘새만금 갯벌을 살려달라’고 삼보일배단이 엎드려 절하며 해창갯벌에서 서울로 향한 지 어느덧 25일째다. ‘탐진치’ 3독을 넘어 상생의 세상을 끌어당기자는 의지의 발현이다. 방조제 33.5km가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것처럼 “그런 결정을 내린 우리 모두 참회하자”고 엎드려 절하는 800리길 대장정은 가히 초인적이고 세계적인 일이다. 카일라스 성산(聖山)을 향해 오체투지하는 티베탄들은 개인적 업장해소를 위해서지만, 이들은 우리 시대 모두의 업장을 풀겠다는 면에서 티베탄들의 일보일배보다 더 감동적이다.
삼보일배 장정의 가혹함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도, 땡볕이 내리쬐는 날도 있었다. 노천의 잠자리는 봄이라지만 을씨년스럽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린다. 어떤 할머니는 속곳에서 꼬깃꼬깃 접은 1만원짜리를 꺼낸다. “저러면 뭐해? 이제껏 새만금에 처들인 돈이 얼만데…!”라고 혀를 차는 이도 있다. 수경 스님은 무릎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의사의 우려에 스님은 “이 방법밖에 할 일이 없어”라고 대꾸한다. 반전 몸짓으로 유명한 문정현 신부는 아우 문규현 신부가 삼보일배 길을 떠나기 전에 “차라리 출발일자가 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철 같은 영혼을 가진 ‘쌈쟁이 신부님’에게서 그런 처연한 말이 흘러나온 것이다. 이 장정의 가혹함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땅바닥에 고개를 조아리며 떠올릴 ‘우리 현실’이 가슴을 친다.
전북 군산과 부안을 방조제로 연결해 여의도 140배나 되는 땅을 얻겠다는 새만금사업은 알려져 있듯 91년, 당시 신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요구에 의해 비롯되었다. 갯벌의 환경적·경제적 가치를 알 리 없던 김대중씨가 생각한 것은 오로지 ‘전북지역 발전’이라는 정치적 목적이었다. 당시에도 ‘사업 타당성에 문제 있다’는 소리가 나왔지만, 완강한 정치논리에 묵살된 채 ‘공사 중단-재개’라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12년에 걸쳐 갯벌을 살리려는 노력과 천문학적 돈을 들여 갯벌을 죽이려는 강집 사이에서 낭비되고 있는 국민 에너지는 아깝기 그지없다. 처음에는 ‘농지조성’을, 뒤에는 ‘산업단지를 만든다’고 하더니, 최근(2월) 노무현 대통령은 ‘사업을 계속하되 농지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 말은 방조제 공사를 중단한다는 전제로 언표됐어야 했다. 농림부는 ‘농지조성’을 목적으로 공유수면매립면허를 취득했으므로 농지목적이 증발했다면, 공유수면매립법(32조)에 의해 매립면허가 취소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방조제 공사는 계속 강행되고 있다.
어차피 정치논리로 비롯된 새만금은 최고권력자의 의지에 의해 삼보일배 같은 극한의 고행이 단박에 중지될 수 있다. 권력 앞에서는 국립공원 해체도 받아들여야 하는 환경부 장관의 힘으로는 ‘택도 없다’. 무지갯빛 환상으로 지역정서를 호도한 지역언론, 표밭과 떡고물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지역 정치가들이 새만금과 관련해 바른 판단을 하기에는 시화호의 썩은 물처럼 오염되어 있어 믿기 힘들다. 생명경시와 갯벌가치에 대한 무지, 돈되는 짓이라면 뭐든 달려드는 토목범죄의 냄새가 ‘새만금’에는 깊고도 짙다. 물론 그자들은 극히 소수다. 만약 새만금 사업의 허구성이 적실하게 드러나면 전북 주민들도 큰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일찍이 국책사업이 현지인에게 이익으로 돌아갔던 적은 대한민국 개발시대 30년을 통틀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제때에 필요한 권력을 휘두르라
‘노 대통령, 환경의식이 없어 큰 걱정이다’라는 소리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지난주 한 인터뷰를 통해 노 대통령은 “시간을 더 달라. 자연친화적으로 사업내용이 변경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분은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 방조제 공사하면서 ‘자연친화적’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는 사실을. “경기활성화를 위해 상류층이 솔선해 골프치는 모습을 보이자”는 한심한 말을 받아들이는 그분에게 갯벌의 생명가치를 요구하는 게 연목구어일까 파병까지 결정한 노무현 대통령이 뭘 두려워한단 말인가. 그가 ‘새만금’의 결자(結者)는 아니지만, 멋진 해지자(解之者)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갯벌을 살린다고 그가 말했듯 ‘대통령의 권위와 능력이 소진’되지는 않는다. ‘제때’에 ‘필요한 권력’을 그가 휘두르기 바란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최성각/ 소설가·풀꽃평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