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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구호만 있고 학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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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1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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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장 자살 사건에 상처받는 학생들… 교장단·전교조의 극단적 대립에 학부모 가세

사진/ 학부모들은 방문수업을 거부하고 자율학습을 하기로 결정했다. 학생들이 등교거부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교실 안은 텅 비어 있다.(연합)
4월10일 오전 충남 예산군 삽교읍 목리 보성초등학교를 찾아가는 길목에는 벚꽃과 목련이 활짝 피어 있었다. 봄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쬐는 보성초등학교는 전교생 65명, 교장과 교감을 합쳐 교사가 9명인 아담한 시골학교다. 이 학교가 지난 4일 서아무개 교장의 불행한 죽음으로 학생 등교거부란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이날은 보성초등학교의 개교 30주년 기념일이었다. 이맘때면 농촌에서는 못자리 내기에 한창 바쁠 때지만 이날 목리에는 어른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어른들은 이날 오전 예산군교육청에 항의시위를 하러 동네를 비웠기 때문이다. 개교기념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은 아이들은 봄 햇살 아래 숨바꼭질을 하며 동네에서 뛰어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학교 이야기를 꺼내자 활달하던 아이들의 얼굴이 금새 어두워졌다. “부모님은 학교에 가지 말라는데…. 언제까지 학교에 가지 말아야 하나요” 답답한지 한 남자 아이가 되물었다.

“언제까지 학교에 가지 말아야 하나요”


목리에 사는 5학년 김예진(11)양은 이날 오전 집에서 4km 떨어진 수촌리의 박민수군 집으로 갔다. 민수네 집에는 같은 반 친구들이 여러 명 모여 있었다. 이들은 함께 모여 언제 학교에 갈 수 있을지 이야기했다. 김양은 “친구들끼리 놀기도 하지만 선생님도 보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머리가 굵어지기 시작한 5, 6학년 아이들은 이번 사건에서 누가 잘못했는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교육현장의 대립이 결국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이다.

사진/ 전교조 교사는 학교를 떠나라? 지난 4월10일 보성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예산교육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10일 오후 학부모들이 집회를 열고 있는 예산교육청 앞에는 30여명의 동네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학부모들은 4월5일 오후 학교에서 긴급 학부모회의를 열고 “차 시중 논란을 빚은 기간제 교사뿐 아니라 전교조에 가입한 2명의 교사가 이 학교에서 근무하는 한 아이들을 등교시키지 않겠다”고 결의한 뒤 7일 이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있다. 학부모들은 11일 교사들이 학생들의 집을 방문해 학습을 지도해온 것도 받아들이지 않고 학교앞 한 교회에 임시교실을 마련해 학부모들의 지도 아래 자율학습을 실시하기로 했다.

‘간접살인마 교사 ㅇㅇㅇ ㅇㅇㅇ ㅇㅇㅇ을 처벌하고 교체하라’란 피켓을 든 주민들이 교육청 입구를 가로막고 선 경찰들 앞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간접살인마는 좀 심한 표현 아니냐”는 질문에 한 40대 여성은 “이게 동방예의지국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냐. 우리는 누구를 믿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느냐”고 대답했다. 옆에 있던 다른 여성은 “아니 기간제 교사가 교장선생님에게 차 한잔 대접하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그 난리를 쳐서 교장선생님을 죽게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들은 “한울타리 안에서 한솥밥을 먹는 직장 상사요 동료를 무참히 짓밟은 행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교장선생님은 교사 3명의 막무가내식 행동 때문에 죽었다”고 단정한 이들에게 “교장 선생님의 죽음과 문제가 된 교사 3명이 직접 연관이 있다는 증거가 있느냐”는 질문은 무의미해보였다.

“기간제 교사말고 전교조 교사 2명은 왜 문제가 되느냐”는 물음에 학부모들은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거짓말로 조퇴하고 학교장의 서면사과를 요구하는 전교조 집회에 참석해 한 사람을 죽음의 벼랑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학부모 김정도(42)씨는 “이런 교사 밑에서 교육을 받은 어린이가 부모에게 대들고 협박하고 신의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교사로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학교에 계속 남아 있는 한, 자식을 학교에 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번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인데도 교육청이나 학교 모두 이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교육청과 학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한 학부모는 “8일 교장선생님 영결식 때 전국에서 교장선생님만 500명이 넘게 참석했지만 누구 하나 아이들 교육이나 보성초등학교를 걱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조그마한 촌 학교 아이들라고 이렇게 무시해도 되느냐”고 말했다.

누구도 학생들을 돌보지 않고 있다

충남 예산에서 서산으로 가는 길에 ‘예산군 초등교장 장학협의회 회원 일동’ 명의로 ‘고 ㅇㅇㅇ교장의 사망동기 철저히 규명하여 단위학교 책임경영 실현하자’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들이 요구하는 ‘단위학교 책임경영 실현’과 서 교장의 죽음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충남도 교육청 강복환 교육감은 11일 예산군의 보성초등학교 교장 자살사건과 관련해 “앞으로 단위학교에서 경륜을 바탕으로 한 교육철학을 펼치는 학교장의 권위에 도전하는 어떤 단체나 행위에 대해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학교장의 권위를 강조했다.

교장선생님은 자살하고 선생님들은 온갖 험한 욕을 먹는 것을 지켜보며 보성초교 아이들은 이미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교장단과 전교조는 모두 ‘참교육’을 부르짖지만 이런 아이들의 사정을 얼마나 고민하고 염려하는지 겉으론 알기 힘들다. 나만 옳고 상대는 잘못됐다는 극단적 대립과 반목, 투쟁 속에서는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교육을 실현할 수 없고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예산=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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