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비극’을 경계한다
등록 : 2003-04-16 00:00 수정 :
“스탈린 시대 선전술을 쓰는 북한의 포스터 디자인은 ‘유치’하더군요. 속이 들여다보이는 듯한 이런 선전기법은 다른 곳에선 과거의 역사가 되었는데 북한에서만 아직 생명력을 지닌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정치적 메시지와 글씨체 디자인(타이포그래피)을 결합한 작업들로 세계 디자인 동네의 이단아로 떠오른 영국의 젊은 디자인 작가
조너선 반브룩(37)은 북한 디자인을 이렇게 평한다. 지난 2000년부터 북한 선전 디자인을 그래픽 디자인 작업에 응용해온 특이한 이력 탓에 국내에도 ‘팬’들이 많은 그가 최근 강연을 위해 방한했다. 어린이가 등장하는 북한 정치선전물에 “왜 독재자들은 어린이를 사랑하는가”라는 문구를 넣거나 한반도 통일은 맥도널드·나이키 등의 기업이 협찬했다는 풍자적 포스터를 제작한 이 괴짜 디자이너는 이념적 비판과는 전혀 다른 층위에서 북한을 해석했을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인간의 구체적 현실과 욕구를 싸잡아 통제하려는 독재가 디자인을 통해 어떻게 반영되는가에 대한 관심의 결과라는 말이었다.
반브룩은 “공산-자본주의 진영이 각기 서로의 다름을 설명하지만 그 다름은 결국 디자인의 화두인 인간 휴머니티와 욕망에 대한 관점”이라며 “디자인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 프로파간다(선전)의 본질은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그가 이라크 해방전쟁을 그래픽으로 치장한 부시나 세계정세를 기업전략 차원으로 이해하는 다국적 대기업들에 대해서도 ‘똥침’ 날리는 디자인 작업을 계속해온 까닭이기도 하다.
영국 왕립예술학교에서 수학한 이래 ‘메이슨’ 등의 독특한 서체와 정치성 문구를 주물러 넣은 포스터·카탈로그 등을 만들어온 그는 모든 삶과 소통하는 디자인이 왜 정치와 떨어져야 하느냐는 반문도 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근본은 사랑이지요. 의미 있는 인간적 교류로서 존재하는 그래픽 디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업적 이유로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자기 표현을 억제하는 것은 비극이죠. 자기 느낌과 영혼에 충실하기 바랍니다.” 4월12일 일본으로 날아간 반브룩이 ‘차고 넘치는’ 국내 디자이너들에게 남긴 쓴소리다.
노형석 기자/ 한겨레 문화생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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