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폐·관폐로 먹고사는 일부 지방 기자실… 취재 경쟁은 없고 협박·갈취만 난무
“이제는 벗어나고 싶어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살고 있는 권아무개씨가 지난 3월19일 파주시청 게시판에 올린 글의 제목이다. “저는 사업가이자 젊은 주부예요. … 남편이 공장을 하는 관계로 몇몇 기자들을 알고 있습니다. 별일도 아닌 것 같은데 남편은 납작 엎드리기 일쑤고요….” 이 글은 파주시청 인터넷게시판이 시청 기자실에 대한 특혜시비로 연일 달아오를 때 실명으로 오른 글이다. 시민들의 정보공개 요구가 빗발치자 시장은 시가 주기적으로 제공하는 광고비와 계도지구입비, 기자실운영비 등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청 기자실은 명예훼손을 내세우며 극도의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카더라’ 통신을 팔고 다니는 기자들
이 파주시청 기자실의 ‘기자실장’인 ㅇ일보 지아무개 기자는 지금 쇠고랑을 차고 있다. 뇌물사건에 대한 검찰수사 확대를 막아준다는 명목으로 공무원한테 돈을 받은 혐의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지난 3월21일 밤 고양시 한 일식집에서 지 기자와 기자실 간사인 ㄱ일보 김아무개 기자가 파주시청의 김아무개 건설국장을 만났다. 두 사람은 국장으로부터 “인천지검 수사담당자에게 청탁하여 그곳에서 진행중인 파주시청 공무원에 대한 사건 수사가 확대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ㄱ일보 인천지검 출입기자인 조아무개 기자를 전화로 소개해줬다. 그리고 청탁비용으로 1500만원을 요구해 다음날 받아 셋이서 나눠가졌다. 기자들은 9월9일 변호사법위반혐의로 모두 기소됐다. 파주시청 기자실의 한 기자는 “두 사람은 국장을 만나기 전 ‘뇌물사건에 파주시청 공무원들도 연루돼 있다더라’는 소문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일에 대해 파주시민들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런 비리는 워낙 낯익은 것이기 때문이다. 전임 기자실 실장과 간사도 98년 말 한 아파트 건설업체에 광고를 빌미로 공갈협박을 한 사실이 드러나 처벌받은 일이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들이 연이어 터진 것일까. “요즘에도 전화를 하면 ‘어디 신문 기자’라고 하지 않고, ‘시청 기자실입니다’ 이래요. 그리고는 ‘내가 당신 사업분야를 좀 아는데…’하면서 말을 꺼내죠. 백이면 백 광고이야기예요.” 기자실 ‘기’자만 들어도 노이로제에 걸리겠다는 파주시 한 업체 사장의 이야기다. 그는 “따지고 싶어도 뒷날을 생각해 참죠. 이름 내고 광고 압력 받느니 조용히 장사만 하는 편이 좋아요. 광고를 하려면 시청 기자실 모두에게 줘야 하거든요”라고 말했다. 10월14일 토요일 낮 파주시청 기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32평 공간이 넓게 펼쳐졌다. 맞은편 벽에 한자로 “양정발사’(揚正發邪)라고 쓰여져 있다. 올바른 것은 찬양하고 그릇된 것은 세상에 널리 알려 막는다는 뜻이다. 파주시청 출입기자들은 요즘 두패로 나뉘어져 있다. 지난 봄 관내 한 아파트업체의 광고를 둘러싸고 다툼이 일었기 때문이다. 분양공고를 내는 업체가 있으면 기자단 대표인 실장과 간사가 업주를 만나 대여섯 군데 신문에 광고를 내도록 협상한 뒤 출입기자 순서대로 게재하는 게 룰인데, 업체 사정이 안 좋아 두 군데 이상 게재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 광고가 기자단으로 들어온 광고냐, 아니면 개인적으로 찾은 광고냐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고 결국 기자단 실장과 간사는 기자 세명과 함께 시청 앞의 한 건물에 따로 기자실을 차렸다. 두 그룹은 제각각 사진을 박아넣은 출입기자단 명단표를 만들어 지역 유지들에게 돌리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나간’ 실장과 간사가 덜컥 구속된 것이다. 기자실 못을 박아주는 시청 공무원
속사정을 잘 아는 한 지역의 인사는 “기자실 세력 균형이 깨지면 꼭 사건이 터져나오더군요. 이탈 그룹의 보스와 행동대장이 잡혀갔으니 평정은 됐고, 어차피 한배를 탄 운명공동체니까 다시 똘똘 뭉칠 것입니다”라고 내다봤다. 파주시청에서 기자실 실장은 보스, 간사는 행동대장으로 불린다고 한다.
중앙일간지가 시장을 많이 점유한 대도시보다 파주시처럼 중소도시일수록 기자실 문턱은 더욱 높다.
기자실이 시청의 부속기관처럼 행세하다보니 피곤한 사람은 누구보다 공보실 직원들이다. 5년여간 한 중소도시 공보계에서 일했던 한 공무원은 최근 업무를 바꾼 뒤 처음 일주일 내내 웃고 다녔다고 말한다. “공보계 일을 하는 동안 한번도 존댓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물론 기자들 중에 일흔이 넘은 분들도 있고 대부분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이 자식아 그거 보도자료 왜 안 넣는 거야’하고 호통을 치기 일쑤지요. 또 볼펜 다섯 자루 가져다달라, 복사용지 떨어졌다, 커피가 맛이 없다, 심지어는 벽에 못이 빠졌다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매일매일 잔심부름에 시달렸죠.” 그는 때로 자기가 쓴 보도자료가 토씨 하나 안 틀리게 신문에 실리는 일도 많았다고 귀띔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 기자실은 손쉽게 쌈짓돈을 벌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하다. 감사패를 준다, 축하모임을 갖는다는 명목으로 기자실이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이다. 한 지역 인사는 “지역업체 대표들을 ‘물주’로 불러앉히고 시청 간부들을 불러 대대적인 술자리를 벌이는 방식이죠. 간단한 식사자리인 줄 알고 온 간부가 당황한 나머지 경비를 계산하면, 각 업체에서 받은 접대비조의 봉투는 고스란히 기자단 호주머니로 들어갑니다”라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기자단은 지역 유지들 모임에서 하나의 ‘기관’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는 것이다.
출입기자단이 각종 인허가에 간섭하거나 공무원 인사에까지 개입하는 행태도 뿌리뽑히지 않고 있다. 쉽게 노출되지 않을 뿐이다. 또 알려져도 대부분 개인비리로 끝난다. ‘사이비 기자 적발’ 등의 제목을 단 짧은 언론보도를 통해서다.
올 봄 김해시청은 ㄱ일보 기자의 시청출입을 거부한 일이 있다. 전력이 의심스러운 한 기자가 시청을 출입하면서 공무원들에게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이자 시청쪽이 그를 거부한 것이다. 이 때문에 ㄱ일보와 시청 사이에는 한때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으나 해당 기자가 지난 6월 부산지검에 공갈혐의로 붙잡혀 가면서 시청의 승리로 끝났다. 6월 사건을 겪으며 비리기자를 조사하던 진주의 지역시민사회단체는 95년 상습도박으로 실형을 받았던 한 기자가 버젖이 같은 신문사에 재채용돼 있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냈다. 구설에 오르자 그는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ㅇ시의 경우 출입기자 11명 중 4명은 사기, 공갈협박 전과가 있는 이들이다. 채용은 회사가, 기자단 등록은 기자실에서 전적으로 정하니 시로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구악에 해당하는 기자실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데에는 해당 관청의 이해도 한몫 한다. ㅇ시의 공보실 직원은 “기자실이 있어서 편리한 점도 많다. 시의 입장에서는 홍보가 원활하고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는 입막음도 된다”고 말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시민을 상대로 한 기사는 아무래도 뒷전으로 밀리고 공무원이나 업체를 상대로 한 기사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광고수입에 대한 과다한 의존, 그리고 관청이 ‘계도지’로 대량구입해주지 않으면 경영을 유지하기 어려운 형편 때문이다. 경남지역의 한 기자는 이런 경우를 두고 “시민의 세금으로 아무도 읽지 않는 행정용 신문만 대량 찍어대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공무원·업체 기사들이 지방지 도배
출입기자들의 배타적인 정보독점욕도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지난 8월30일 파주시 소재 미군2사단의 정문 앞에서는 시민단체 활동가와 기자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이날은 미군 탱크 기름유출을 현장조사하기로 한 날. 시민단체와 대안매체 기자들이 줄곧 전문성이 있는 이들과 함께 가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시청 기자실은 4명의 소속 기자들만 들어가도록 사단쪽과 합의해 놓은 것이다. 모인 사람들이 항의하자 기자단은 이미 방문객 명단을 넣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만 했다. 결국 그 자리에서 시위를 벌인 덕분에 사단쪽이 문을 열었고, 활동가들과 주민들은 현장조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조사결과 기름유출은 장기적으로 이루어졌고 토양오염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한 활동가는 “기자단이 이 사안의 심각성을 미리 알았다면 자기들이 나서서 전문가를 대동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자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탓에, 소신있는 기자들은 이중삼중으로 마음고생을 하기도 한다. 광주의 한 일간지 기자는 “열악한 임금과 강도가 센 노동에 치이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고, 기사가 회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잘리는 게 두 번째 고통이며, 비리기자인 양 도매금으로 눈총을 받는 것이 세 번째 고통이다. 이럴 때마다 한계를 절감한다”고 말한다. 광주지역 대안매체로 급부상하고 있는 인터넷신문 ‘뉴스통’(www.newstong.com)은 지역신문 기자로서 답답함을 느껴온 광주지역 전현직 기자들의 모임이다. 뉴스통에 참여하는 한 기자는 “7개 지방일간지가 시장을 분할하고 있는 광주지역에서는 건설브로커들이 기자를 끼고 활개치는 일들이 가장 많다”고 전한다. “지자체 공사를 보면 5천만원 이하짜리 수의계약 공사 비율이 70∼80%쯤 돼요. 공사 리스트가 나오면 브로커들이 해당 공무원과 출입기자에게 접근하죠. 특정 공사를 콕 짚고는 이걸 단체장에게 이야기해서 나한테 주시오, 몇 퍼센트 주겠소 하는 식이죠. 제 경우도 그런 브로커가 접근해 와 애먹은 일이 있습니다.”
비리가지 뒤에는 비리사주가 있다
기자실이 비리의 사슬에 얽히는 이유는 자질이 의심되는 일부 기자의 탓만이 아니다. 특정 기자실, 특정 지역만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나라 지방언론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 메이저급 지방일간지들을 빼고는 대부분의 신문은 재정압박에 시달린다. 그러면서도 문을 닫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비용 대비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 회사는 소속사의 세불리기나 광고영업을 위해 전천후 게릴라로 뛸 수 있는 이들을 선호한다. 사주나 모기업의 방패막이로 창간된 신문들일 경우 이런 사정은 더 심하다. 비리기자의 뒤에는 비리사주가 있다는 말이 지나친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전국에는 100개 이상의 종합일간지가 있다.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김창룡 교수는 10월14일 기자협회에서 마련한 ‘지방언론 활로’ 포럼에서 이 문제를 다시 거론했다. “지방지들의 근본문제는 너무 많은 신문사들이 난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법, 편법, 탈법이 동원되지 않으면 서로 못 사는 구조다. 자발적인 통폐합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또 김 교수는 “많은 사주가 명패걸이 용도로 신문을 만들어 놓고 꿈많은 젊은 기자들을 비참하게 만든다”고 지적하며 “언론비리의 80% 이상은 사주한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자본과 사주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소속사는 기자들에게 별다른 힘이 되지 않는다. 기자들이 믿는 것은 강한 결속력을 가진 출입처 기자실이다. 파주시청 기자실의 한 출입기자는 “나는 월급을 65만원가량 받는다. 출입기자들 중 나를 포함해 네명 정도만 그나마 본사에서 기본급을 받는 걸로 알고 있다. 민망한 이야기지만 광고를 따내 회사와 60 대 40가량 나누어 리베이트를 챙기지 않으면 벌이가 한푼도 없는 이들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민선자치시대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몇몇 지자체에서는 의미있는 실험들이 있었다. 지난해 1월 인천시 강화군에서는 출입기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기자실을 폐쇄해 연간 2천만원 이상의 예산을 줄였고, 올해 5월 강원도 원주시는 연간 3억원을 웃돌던 계도지 구입을 중단했다. 올해 경남에서는 11개 시·군 자치단체에서 계도지 구입 예산을 세우지 않았다. 계도지 구입을 중단한 한 지자체 공보관은 “내놓고 좋아하지는 못했지만, 시민단체와 의회가 계도지 문제를 거론해 반가웠다”고 말했다.
서울의 정부부처가 온라인-오프라인 기자들의 신경전으로 뜨겁다면 지방 행정관청의 기자실은 지역일간지-대안매체 기자들의 갈등으로 바람잘 날 없다. 특히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이 활발한 지역일수록 지자체 기자실 문제는 자주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다.
기자단 해체의 노림수… 기자실을 감시하라
안산시 출입기자들은 지난해 7월 기자단을 해체하고 기자실을 없앴다. 관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한 출입기자는 “실상은 광고 분배를 둘러싸고 기자단 내부에 갈등이 생겨 잠시 개점휴업을 한 것이었다”고 귀띔했다. 갈등이 잠잠해진 올 2월 기자단은 다시 꾸려졌고 기자단의 요청으로 시는 전보다 훨씬 넓어진 기자실을 마련해주었다. 안산시청 기자실은 지난 봄 시의원의 기자회견이 거부된 일이 알려져 네티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뒤로도 기자실 운영에서 달라진 것은 없다. 시청 별관 2층에 있는 기자실은 외부인이 곧바로 들어갈 수가 없다. 직원이 쓰는 사무실에서 일단 용무를 확인한 뒤에야 들어갈 수 있다. 기자단 소속이 아닌 지역주간지와 젊은 기자들은 자치홍보전문위원의 방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안산지역의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일부 지방일간지의 영업창구 역할을 하는 폐쇄적인 기자실이라면 폐쇄돼야 마땅하다. 그렇게 되면 관언유착이든 경언유착이든 지방언론의 구조적인 문제들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파주시의 한 공무원은 “고인 물은 썩는다. 기자실 역시 시민들의 비판과 감시를 받을 때만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소한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위엄을 부리는 공간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김소희 기자sohee@hani.co.kr

(사진/지자체 기자실은 지역유지모임에서 '기관'대우를 받기도 한다.어울리지 않는 향토부대장의 감사장이 눈에 띄는 파주시청 기자실)
이 파주시청 기자실의 ‘기자실장’인 ㅇ일보 지아무개 기자는 지금 쇠고랑을 차고 있다. 뇌물사건에 대한 검찰수사 확대를 막아준다는 명목으로 공무원한테 돈을 받은 혐의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지난 3월21일 밤 고양시 한 일식집에서 지 기자와 기자실 간사인 ㄱ일보 김아무개 기자가 파주시청의 김아무개 건설국장을 만났다. 두 사람은 국장으로부터 “인천지검 수사담당자에게 청탁하여 그곳에서 진행중인 파주시청 공무원에 대한 사건 수사가 확대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ㄱ일보 인천지검 출입기자인 조아무개 기자를 전화로 소개해줬다. 그리고 청탁비용으로 1500만원을 요구해 다음날 받아 셋이서 나눠가졌다. 기자들은 9월9일 변호사법위반혐의로 모두 기소됐다. 파주시청 기자실의 한 기자는 “두 사람은 국장을 만나기 전 ‘뇌물사건에 파주시청 공무원들도 연루돼 있다더라’는 소문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일에 대해 파주시민들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런 비리는 워낙 낯익은 것이기 때문이다. 전임 기자실 실장과 간사도 98년 말 한 아파트 건설업체에 광고를 빌미로 공갈협박을 한 사실이 드러나 처벌받은 일이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들이 연이어 터진 것일까. “요즘에도 전화를 하면 ‘어디 신문 기자’라고 하지 않고, ‘시청 기자실입니다’ 이래요. 그리고는 ‘내가 당신 사업분야를 좀 아는데…’하면서 말을 꺼내죠. 백이면 백 광고이야기예요.” 기자실 ‘기’자만 들어도 노이로제에 걸리겠다는 파주시 한 업체 사장의 이야기다. 그는 “따지고 싶어도 뒷날을 생각해 참죠. 이름 내고 광고 압력 받느니 조용히 장사만 하는 편이 좋아요. 광고를 하려면 시청 기자실 모두에게 줘야 하거든요”라고 말했다. 10월14일 토요일 낮 파주시청 기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32평 공간이 넓게 펼쳐졌다. 맞은편 벽에 한자로 “양정발사’(揚正發邪)라고 쓰여져 있다. 올바른 것은 찬양하고 그릇된 것은 세상에 널리 알려 막는다는 뜻이다. 파주시청 출입기자들은 요즘 두패로 나뉘어져 있다. 지난 봄 관내 한 아파트업체의 광고를 둘러싸고 다툼이 일었기 때문이다. 분양공고를 내는 업체가 있으면 기자단 대표인 실장과 간사가 업주를 만나 대여섯 군데 신문에 광고를 내도록 협상한 뒤 출입기자 순서대로 게재하는 게 룰인데, 업체 사정이 안 좋아 두 군데 이상 게재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 광고가 기자단으로 들어온 광고냐, 아니면 개인적으로 찾은 광고냐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고 결국 기자단 실장과 간사는 기자 세명과 함께 시청 앞의 한 건물에 따로 기자실을 차렸다. 두 그룹은 제각각 사진을 박아넣은 출입기자단 명단표를 만들어 지역 유지들에게 돌리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나간’ 실장과 간사가 덜컥 구속된 것이다. 기자실 못을 박아주는 시청 공무원

(사진/파주시청 기자실에는 금박테두리의 명패까지 있었다. 명패는 98년 말에,책상은 올 여름에 사라졌다)

(사진/올바른 것은 찬양하고 그릇된 것은 널리 알려 막고 있는가.파주시청 기자실 기자들이 공개브리핑을 받고 있다)

(사진/“언론비리의 80%이상은 사주한테 책임이 있다.”지난 10월14일 기자협회가 마련한 '지방언론 활로'기자포럼)

(사진/눈 가리고 아웅? 관폐를 끼치지 않겠다며 기자실을 폐쇄했던 안산시청 출입기자들은 6개월 만에 더 널찍한 장소에 기자실을 마련했다.기자실 부활을 다룬 안산의 한 지역주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