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를 ‘찾는’ 젊은 장인의 뚝심
등록 : 2000-10-18 00:00 수정 :
옹기와 에스프레소. 서로 등을 맞대고 좀처럼 눈을 마주칠 것 같지 않은 두 단어의 고집을 그들보다 더 고집스런 옹기장이가 꺾었다. 올해로 10년째 옹기를 찾아온(그는 ‘굽는다’, 또는 ‘빚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현배(38)씨가 에스프레소잔으로 만든 작은 옹기그릇에는 ‘엄지’라는 이름이 있다.
“커피는 우리 삶의 한 부분이 됐는데 아직까지 커피를 담을 만한 옹기그릇은 없었습니다. 역한 기운을 밖으로 밀어내며 스스로 맛을 고를 줄 아는 옹기에 삶과 커피를 담아보자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게 이 커피잔입니다”
‘엄지’라는 이름은 애교로 붙인 게 아니다. 옹기는 사기에 비해서 열전도율이 높기 때문에 보통 손잡이처럼 만들면 금방 잡은 손가락이 뜨거워진다. 그래서 이씨의 작품은 다른 커피잔과 달리 손잡이가 손가락을 거는 게 아니라 손가락으로 붙잡아야 하는 엄지모양이다. 잔을 잡은 손이 미끄러지지 말라고 긴 엄지 손톱으로 손잡이에 빗살무늬를 냈다.
“옹기장이는 엄지손가락의 손톱을 길게 기릅니다. 그릇 빚을 때 전(그릇 주둥이의 입이 닿는 부분)을 잡기 위해서지요. 전이 잘 잡혀야 그릇이 입술에 닿을 때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이 커피잔을 잡는 것은 옹기장이의 손을 잡는 거라고 생각해요.”
커피잔뿐 아니라 그의 손을 통해 스프와 샐러드를 오롯이 담는 양식기 옹기세트도 태어났다. 항아리 뚜껑을 변형해서 만든 그의 양식용 옹기는 질박한 느낌이 오히려 화려한 접시들보다 한층 높은 품위로 느껴진다.
“한때는 저도 옹기는 이런 것, 이래야만 하는 것이라고 고집을 세웠었죠. 그렇지만 사람들의 평균 신장에 맞춰 장독의 키도 커져야 하는 만큼 옹기도 우리네 삶의 변화에 스며들어야 진정한 우리의 그릇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케이크 한 조각을 담고 싶은 질그릇, 장미꽃 한 송이를 꽂고 싶은 옹기화병을 만들면서 생활 속의 옹기문화를 빚는 것, 젊은 옹기장이의 포기할 수 없는 고집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