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열찬 배수지 반대투쟁이 만들어낸 밴드 ‘마포스’… 열의 하나로 뭉친 초보자들 ‘연주’가 되더라
“이 나무 뽑아버리면 죽을 줄 알아!”
지난 3월30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 꼭대기에서 벚나무 묘목을 심던 최아무개(68·마포구 서교동) 할머니는 허공에다 대고 독한 말을 내뱉었다. “이 산은 종합병원이야.” 할머니는 의사도 두 손 든 병을 성미산이 낫게 해줬다고 했다. 1995년 골다공증이 악화돼 걷기조차 불편한 할머니는 날마다 성미산을 산책하며 꾸준히 치료를 계속했다. 3년 정도 운동을 계속하자 어느덧 다리 힘이 올랐다. “내 소문을 듣고 중풍 맞은 노인들도 산에 올랐지. 돈 있는 사람들이야 차 타고 멀리들 나가지만 서민들은 동네 뒷산말고는 갈 곳이 없어.” 할머니는 묘목 가장자리 흙을 꼭꼭 눌러 다진 뒤 물을 함빡 붓고 나서야 허리를 폈다. 할머니 손가락이 가리킨 건너쪽 야산을 바라봤다. “저기가 와우산이야. 예전에 배수지가 있던 곳이지. 배수지 때문에 나무가 안 자라 산책할 맛이 도통 안 나.” 할머니가 성미산 배수지 건설 반대를 주장하는 논리는 정연했다. “배수지 짓고 나면 아파트 허가 내주는 건 수순이지. 아파트 들어와봐. 금세 음식점이다 노래방이다 고깃집이다 비집고 들어올 게지. 그러면 정말 조용하던 동네 분위기 다 망칠 거야.” 할머니는 지난 겨울 서울시가 베어버려 시커멓게 말라버린 나무더미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산이 좋기에 사람도 좋다
이날 나무심기 행사는 파괴의 현장을 치유하고 다시 산을 살리겠다는 주민들의 간절한 의지와 염원 속에 이뤄졌다. 행사에 참여한 주민들은 이름표를 받아서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적은 뒤 어린 나무에 달았다. 상수리나무·소나무 등 어린 묘목 500여그루는 “우리 아이와 함께 씩씩하게 자라달라”는 엄마·아빠의 소망을 담고 봄바람에 살랑거렸다. 주민들은 벌목한 나무를 깎아 만든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 장승을 세우고 성미산을 개발로부터 영원히 지켜달라고 기원했다. 아이들은 죽은 나무를 조각조각 잘라 알록달록 그림물감을 칠하고 끈을 묶어 목걸이를 만들었다.
서울시가 마포구 일대에 수돗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이유로 성미산에 배수지를 짓겠다고 나선 것이 2년 전. 그동안 성미산 일대 서교동·성산동·연남동 주민들은 시를 상대로 가열찬 저지 투쟁을 벌여왔다. 시청·구청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지하철역 등에서 활발한 홍보도 펼쳤다. 그럼에도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지난 1월29일 용역업체 직원들을 동원해 6천여평에서 자라던 나무 2400그루를 기습적으로 베어냈다. 주민들은 칼바람 속에서 텐트를 치고 농성을 벌였지만 시는 포클레인을 앞세우고 들이닥쳤다. 주민들이 ‘3·13대첩’이라 이름붙인 이날, 성미산을 지키려고 달려온 주민들은 용역업체 직원들과 격한 몸싸움을 벌였다. 이 와중에 주민 10여명은 중경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가야 했다.
행정당국이 이처럼 성미산에 호락호락 삽을 들이댈 수 없었던 것은 이 산이야말로 마을 주민들과 하루 일과를 같이하는 산이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이면 할아버지·할머니 수백명이 모여 체조를 하고, 낮에는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바글거리며 뛰논다. 산이 마을과 맞붙어 있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산에 자주 오른다. 연립·단독 주택 등 5층 이하 저층주택들이 대부분이라 특정 건물이 조망을 해치는 일이 없다. 낮지만 쓸모가 많은 ‘공평한’ 산이다.
산이 좋기에 사람도 좋은 걸까. 성미산 주변 동네는 몇해 전부터 생활협동조합을 중심으로 마을공동체가 탄탄히 자리잡아온 곳이다. 성산·연남·망원동 일대에 미취학 어린이와 초등학생을 위한 공동육아 시설이 5곳이나 된다. 먹을거리를 공동으로 구입하고 서로 아이를 돌봐주며 일상의 자잘한 고민을 함께 나누기에 도시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마을’이 저절로 이뤄졌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마을학교에 보내는 주창복(감정평가사)씨는 “아이들 교육 문제를 비롯해 공감대가 있어 성미산 문제에서도 똘똘 뭉쳐 싸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날 성미산에서 만난 건축가 박명협씨는 ‘순전히 동네가 좋아’ 5년 전 서초 반포동에서 서교동으로 이사왔다. 지난 ‘포클레인 항쟁’ 때 용역업체 직원들과 맞붙어 싸워 아직도 가슴이 뻐근하다는 그는 “끈끈한 사람 냄새 나는 동네”라고 자랑했다. “이 동네에 먼저 와 살면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 동생이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더군요. 딸 둘을 좀더 인간적 환경에서 키우고 싶어 이사왔는데, 와보니 요즘 세상에 이런 동네가 있을까 싶습니다.”
단박에 눈이 맞은 왕년의 ‘선수들’
성미산보존운동은 주민들을 억센 투사로만 만들지는 않았다. 성미산을 지켜야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이들 가운데 “왕년에 한가락씩 하던” 사람들끼리 눈이 맞았다. “나무심기 행사를 마친 뒤 우리가 직접 음악을 들려주자”고 했더니 드럼·기타·키보드·보컬을 자원하며 10명이 금세 모였다. 황신혜밴드 전 멤버인 베이스주자 조윤석씨도 가세했다. 밴드 ‘마포스’의 탄생이었다.
D-데이 2주 전부터 연습에 돌입했다. 회사원·택견강사·한문선생님·주부 등 다양한 직업을 지닌 이들은 일주일에 세번씩 밤마다 연습실에 모여 호흡을 맞췄다. 드러머 신상열(44·회사원)씨는 군악대에서 작은북을 치다 이번에 처음으로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 “2년 전부터 성미산에선 음악인들을 초청해 숲 속 작은 음악회를 열어왔다. 음악회에 참가하다 보니 우리가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수지 문제를 두고 힘겹게 싸울 뿐 아니라 놀기도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린 직업적인 싸움꾼이 아니니까 투쟁도 생활 속에서 풀어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보컬을 맡은 박미현(40·회사원)씨는 “몇년 전부터 동네어른끼리 밴드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돌았는데 이번에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 낮에 일하고 밤에 연습하는 게 힘들지만 너무 재미있다”고 즐거워했다. 순수한 아마추어들 모임이었기에 처음엔 공연이 가능할까도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마포스’의 ‘대의’를 이해한 연습실 주인들은 뜻밖에 호의를 보였다. 악기를 빌려주고 악보에 운지표를 적어주며 키보드 주자에겐 따로 ‘초단기 특별 과외’도 시켰다. 연습실 스튜디오 앨리를 운영하는 송기정씨는 마포엔 녹지가 별로 없는데 이곳을 지키자는 분들을 보니 정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맘이 들었다고 했다. “초보라도 먼저 시범을 보여주고 시작과 끝부분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더니 ‘연주’가 되더라.”
사람을 묶고, 웃음을 만들고…
3월30일 데뷔 무대에서 ‘마포스’는 <분홍 립스틱> <연> 등을 연주해 분위기를 흥겹게 했다. 보컬들은 리듬에 맞춰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며 연습실에선 볼 수 없는 여유와 자신감을 보였다. 벌써부터 다른 곳에서 공연을 해달라는 섭외가 들어온다는 ‘마포스’는 이후 목요일마다 모여 연습을 계속할 계획이다. 정말, 성미산은 사람을 묶고 웃음을 만들고 노래를 퍼뜨린다.
즐거운 노래로 가득한 것은
성산동에 성미산이 자라고 있어서다
그 산이 노래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모를 거야. 성미산이 해인 것을
하지만 금방이라도
알 수 있지. 알 수 있어.
성미산이 잠시 없다면
성미산이 잠시 없다면
나나나나나나나
낮도 밤인 것을
노랫소리 들리지 않는 것을
- <성미산이>

사진/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밴드 ‘마포스’가 흥겨운 연주를 펼치자(위) 구경하던 이들도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사진/ ‘성미산아, 살아나라.’ 서울시가 나무를 베어버린 배수지 터에 주민들이 다시 묘목을 심고 있다.
성산동이 이렇게 밝은 것은
즐거운 노래로 가득한 것은
성산동에 성미산이 자라고 있어서다
그 산이 노래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모를 거야. 성미산이 해인 것을
하지만 금방이라도
알 수 있지. 알 수 있어.
성미산이 잠시 없다면
성미산이 잠시 없다면
나나나나나나나
낮도 밤인 것을
노랫소리 들리지 않는 것을
- <성미산이>
글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사진 류우종 wjryu@orgio.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