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보험사, 너 딱 걸렸어”

454
등록 : 2003-04-10 00:00 수정 :

크게 작게

보험계약자들의 권리를 위해 공룡들과의 싸움을 준비하는 설계사 출신 김미숙씨

중장비수출업을 하는 이아무개씨는 지난해 한 생명보험사의 종신보험에 가입했다. 그리고 월 414만원씩 10개월간 보험료를 냈다. 그는 자신이 든 보험상품이 목돈 마련에 도움이 되고 돈이 필요할 때 대출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았다고 했다. 모집인이 그렇게 설명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업이 어려워져 보험사에 대출을 받아보려고 찾아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동안 4천만원 넘게 보험료를 냈는데 해약할 경우 받을 수 있는 돈이 채 50만원이 안 됐다. 대출가능액은 해약환급금의 90%니까 대출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씨는 애초 얘기와 다르다며 원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회사쪽이 거부하자 금융감독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약관에 적힌 아주 작은 글씨들

김아무개씨는 지난해 여름 임신 4개월인 태아를 위해 보험을 하나 들었다. 월 5만원씩 내고 태아 때부터 병원에 입원하거나 사망할 경우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었다. 불행하게도 출산 1주일을 남겨두고 부인은 사산을 했다. 하지만 사망보험금을 받지는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약관에 작은 글씨로 ‘15살 이전 사망시에는 보험금 지급이 안 됨’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김씨는 “만기가 18살까지인데 15살까지는 사망에 대해 보장을 못 받으면 3년간 보험혜택을 보자고 보험을 든단 말이냐”면서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고 따졌다. 하지만 김씨도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보험분쟁은 아주 흔한 일이다. 그러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보험가입자가 구제를 받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우선 보험용어부터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해서 어지간한 지식을 갖고는 보험에 대해 알기가 어렵다. 예정이율·공시이율·배당률·해약환급금·책임준비금…. 가입자만이 아니다. 보험모집인조차 상품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입을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 보험사의 모집인 교육자료를 보면 상품의 장점을 교묘하게 설명하는 방법만 잔뜩 싣고 있고, 소비자가 알면 보험가입을 꺼릴 만한 내용은 없다. 정작 분쟁이 벌어졌을 때 거대한 보험사를 상대로 싸워 이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녹음해두지 않는 이상 모집인이 약관과 다른 설명을 했다는 점을 가입자가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보험시장에 요즘 ‘싸움닭’이 떴다.

사진/ 보험소비자협회의 김미숙 사무국장. 그는 거대 보험사에 대항할 수 있는 소비자 모임을 제안한다.(류우종 기자)
“나는 싸움밖에 할 줄 몰라요.” 보험소비자협회(준비위원회·가칭) 사무국장 김미숙(37)씨는 대놓고 말한다. 보험사들에게 눈엣가시로 등장한 그가 보험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5년 한 생명보험사의 설계사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단지 며칠 교육받고 시작한 일이라 보험을 팔 줄만 알았지 보험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도 빌딩 꼭대기층에서부터 아래층까지 돌며 자리마다 사탕과 껌, 명함을 돌린 뒤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영업방식으로 일했다.

김씨가 보험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은 2000년 7월 한 신문에 난 ‘개인연금보험 약속금액 20년 후엔 반토막될 수도’란 기사를 읽고부터였다. 당시 그도 아는 사람에게 월 18만원 가까이 내는 개인연금보험 가입을 권유해 이미 10여 차례 수금을 한 상황이었다. 연금이 반토막이 된다니, 어째서 그렇다는 것일까 그는 회사에 확인을 해보고서야 배당률 1%의 차이가 나중에 연금액 몇억원의 차이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설계사로 일한 지 5년 만의 일이었다.

그는 2001년 초 컴퓨터를 사 인터넷을 뒤져가며 보험 공부를 시작했다. 알면 알수록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보험계약자는 보험사의 ‘봉’이었다. 마침 전국보험모집인노조가 만들어지던 때였다. 그도 함께 뛰었다. 하지만 생각하는 바가 조금은 달랐다. “모집인에 대한 권리주장은 많았는데, 계약자 권리 얘기는 없었어요. 소비자 문제와 함께 풀지 않으면 모집인 권리 문제도 풀리기 어렵다고 생각했지요.” 그는 보험회사와 모집인, 그리고 소비자는 서로 이익이 상충하는 부분이 많다고 보고, 결국 혼자서 보험계약자 권리 문제에 덤벼들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인터넷에 보험소비자협회(cafe.daum.net/bosohub) 사이트를 열고, 보험사와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섰다.

“보험을 바꾸는 일은 바보짓”

그가 요즘 매달리고 있는 것은 보험사가 고객에게 기존 보험을 다른 보험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문제다. 그가 보기에 보험을 해약하고 다른 보험에 드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바보짓이다. 특히 금리가 높을 때 가입한 보험을, 지금처럼 금리가 낮을 때 새 상품으로 바꾸는 것은 보험사에 돈을 갖다바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똑같은 보장을 받을 경우 보험료가 엄청나게 비싸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이제 보험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기존 계약을 해지하고 새 상품을 파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지난해 삼성생명은 7만여건의 고금리 기존보험을 해약시키고 새 보험으로 전환을 유도했다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리콜 조처를 받았다.

삼성생명은 그 뒤 전환전용으로 설계한 새 종신보험을 내놓았다. 새 상품은 주계약의 보험료를 10%가량 싸게 해주고 있다. 교보생명도 이런 상품을 3월부터 팔고 있다. 그러나 김씨는 “이런 상품으로 바꾸면 문제가 없도록 한 금감원의 조처는 보험사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이라고 말한다. 보험금을 10% 깎아준다고 해도, 기존보험과 비교하면 보험료가 많이 올라 계약자들로서는 엄청나게 손해라는 것이다. 그는 금감원이 ‘부당하게 계약전환한 보험을 모두 원래의 보험으로 바꿔주라’고 해야 옳았다고 말했다.

보험소비자협회는 요즘 보험사가 부당하게 계약전환한 보험을 원상태로 되돌리려는 계약자들을 돕고 있다. 20여명의 소비자가 협회에 도움을 요청했고 5~6명은 이미 해결을 봤다. 나머지는 현재 보험사와 협상 중이다. “부당한 계약전환은 보험업법 위반이에요. 원상회복을 해주지 않는 경우는 고발까지 하려고 합니다.” 다행히 보험소비자협회쪽에서 함께 움직이면 보험사들이 쉽게 원상회복을 해주는 편이다.

그는 보험소비자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험회사뿐 아니에요. 논리를 계발하는 보험학계 사람들도 대부분 보험회사 편이에요.” 실제로, 고금리 역마진 때문에 망할지 모른다고 엄살을 떨던 생보사들은 지난해 4~12월 사이 계약자 배당 전 당기순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무려 101.6% 늘었다. 그는 “보험사들이 사업에 드는 비용은 보험료의 10%도 안 되는데, 고객에게 보험료를 받을 때는 많이 받는다. 2001년에는 25.9%나 됐어요. 실제 쓴 사업비와의 차액이 모두 보험사 주주들의 수익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보험소비자협회는 소비자들을 모아 그것을 되돌려받기 위한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유배당상품의 배당금 예시 믿지 말라

그는 설계사들이 보여주는 유배당상품의 배당금 예시도 절대 믿지 말라고 충고한다. 고객들은 배당금이 확정돼 있는 것처럼 믿기 쉽다. 배당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이야기는 상품설명서에 아주 작은 글씨로 쓰여 있다. 그러나 예시는 어디까지나 예시일 뿐, 앞으로 금리가 더 떨어지면 배당금이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험사들은 유배당상품의 경우 보험료를 무배당상품보다 15%가량 더 받는데, 나중에 보면 배당금이 더 낸 보험료만도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김씨는 보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의 가족도 4명이 현재 9건의 보험에 들어 있다. 월 보험료 지출도 60만원이나 된다. 물론 모두가 보장성보험이고, 금리(예정이율)가 높을 때 들어 보장에 비하면 보험료가 싼 것들이다. “보험사가 돈 벌라고 해약할 생각은 없어요.” 거대한 보험사와 싸우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그에게 물었더니 대답이 의외로 시원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건드리는 것마다 다 불법이니까요.” 보험소비자협회 02-847-4553.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