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교도소 순례 고난의 행진 100km를 3일 동안 걸은 뒤 감옥 안의 당신께 보내는 편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스스로 목표로 삼았던 3박4일 동안의 ‘고난의 행진’을 마무리했다는 성취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도보순례단에서 빠지는 ‘이탈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탈자라는 ‘낙인’을 찍으면서도 따뜻하게 보내는 순례단원들이 나를 더욱 부끄럽게 했습니다. 그들은 행복한 난쟁이들의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이었는지 모릅니다. 어떤 이유로도 누군가를 탓하지 않았던 그들입니다. 가평에서 춘천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 뒤, 이내 왼쪽 무릎에 통증을 느껴 뒤로 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앞선 단원들은 전체 발걸음을 늦춰 내가 함께할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끝까지 함께한다는 ‘의리’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직 무릎의 통증이 가시지 않은 지금, 당신을 떠올리며 여기에 있습니다.
이탈자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낸 사람들
나는 생면부지의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당신은 스스로의 신념에 따라 행동했을 뿐 누구의 이익도 침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지금 시퍼런 청춘을 철문에 저당잡힌 채 수의에 갇혀 지내고 있습니다.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7년형을 선고받고 4년9개월째 복역 중인 박경순씨는 중증 간경화 환자로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벌였습니다. 7기 한총련 조국통일위원회 정책실장을 지낸 이창호씨는 지난해 10월 감옥에서 폐결핵 진단을 받았습니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을 드나들어야 하는 야만의 시대. 양심수 출신 대통령을 뽑아도 감옥 밖에 당신의 자리는 아직 없나 봅니다. 당신의 자리를 참여정부가 마련하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나설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감옥을 거처로 삼을 수밖에 없는 당신. 그것이 어디 당신만의 고통이겠습니까. ‘양심수 석방과 수배해제를 위한 전국 교도소 도보순례단’ 체험은 ‘고행전문 기자’로 자리를 다져가는 나에게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일정을 잡기 위해 서울구치소 앞에서 27일째 가족농성을 벌이던 김소중씨에게 연락했습니다. 김소중씨는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으로 8년형을 선고받고 3년7개월째 복역 중인 하영옥씨(국제사면위원회에서 발표한 세계 최장기 양심수)의 부인입니다. 대략 일정을 확인하고 다시 3월26일 순례단 합류를 위해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때 놀랍게도 김소중씨는 순례단 출발 전날 자궁암 선고를 받은 뒤 국립암센터에서 수술을 앞두고 각종 검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다 차량 전복사고를 겪기도 한 그였습니다. 결국 김소중씨는 걷고 싶은 바람마저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수술을 마친 뒤 병실에 있을 것입니다.
가까스로 26일 오후 4시 무렵 순례단이 있는 의정부교도소 앞 천막 ‘농성장’에 도착했습니다. 낮 시간임에도 순례단은 길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틀 전 도착해 다음날 춘천교도소로 출발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집시법 위반으로 복역 중인 박용진(민주노동당 강북을지구당 위원장)씨 면회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져 순례단이 이동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법무부 규칙에 따르면, 교도소장의 재량으로 교정교화를 위해 접견을 허가하는 ‘특별면회’(교화접견)라는 게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도를 보통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특별’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나 봅니다. 천막을 철거하면 허용하겠다던 교도소쪽은 다음날에 가능하다더니 다시 법무부 교정국의 불허 방침을 들먹여 특별면회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서울구치소에서 75km를 걸어 도착한 순례단은 그곳의 당신과 손인사조차 나누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떠나지 못한 순례단… 한끼 식비 1천원 논쟁
촌음을 다투는 속도와 경쟁의 쟁투 속에 내몰려 살아가는 사람들. 혁명을 꿈꾸던 이들의 화려한 변신이 이제는 더 이상 놀랍지 않습니다. 부당하고 비인간적인 현실은 여전합니다. 그래서 순례단은 고난의 행군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림잡아 3평 남짓한 천막 안에서 변하지 않은 열망을 읽었고, 자연스러운 분노와 희망을 보았습니다. 순례단을 이끄는 최진수 단장도 당신처럼 ‘양심수’로 2년6개월을 보냈습니다. 이미 정리된 활동에 대한 가혹한 대가를 치르고 출소한 게 지난 2월17일. 그는 바로 그날부터 감옥 안과 밖을 이으려 했습니다. 늦겨울 찬바람이 부는 서울구치소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였습니다. 처음 3일 동안은 천막도 없이 그야말로 노숙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철의 신념에 따른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뒤돌아서 사람을 바라보는 너른 마음이 있었을 뿐입니다.
순례단은 의정부교도소 앞 천막에 머물러 있어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시 100여km를 떠나기 위해 부산히 몸을 움직였습니다. 먹을거리를 장만하려고 할인점에 갔고, 사이버순례단(www.yangsimsu.net)에 일지를 올리려고 PC방에 갔습니다. 천막 안에서는 웃음과 긴장이 흐르기도 합니다. 장보기팀이 돌아왔을 때 일입니다. 무려 7만5500원어치나 장을 본 게 화근이었습니다. 모두 8명이 3끼씩 3일 동안 먹는 것으로 계산하면 한 사람이 한끼에 1048원어치를 먹는 셈입니다(사실 3일이 지난 뒤에도 식료품은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 단장이 “수감자 1인당 하루 식비는 1천원이라며 한끼에 330원 한다”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러자 저소득 실질가정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분당푸른학교 대표이자 성남시의회 의원으로 일주일 동안 참여한 김미라씨가 “결식아동 한끼 식비가 2천원으로 책정됐다”며 분위기를 진정시켰습니다.
걷는 게 고통이라는 것은 오래 걸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고통을 껴안는 고난의 행진은 지난 3월22일부터 시작됐습니다. 도보순례단의 걷기는 단순히 육체적 고통을 체험하는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농민조직을 결성한 케사르 차베스의 ‘정의를 위한 행진’, 소금을 만들어 영국의 세제법을 누른 마하트마 간디의 ‘소금행진’, 마틴 루터 킹 암살사건 30주년에 이뤄진 추모행진 등처럼 내면의 투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도보순례단의 걷기는 감옥 안에서 잊혀지며 생명이 시들어가는 당신을 향한 연대의 발걸음입니다. 감옥 안의 묶인 당신과 감옥 밖의 묶이지 않은 사람들이 뜻을 모으고, 함께 걷는 사람들은 서로 보조를 맞추면서 정서적 연대감을 확장하는 것입니다. 나 역시 그랬습니다. 뒤늦게 짧은 일정을 함께하기에 서먹한 분위기가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양심수 전원석방’, ‘하영옥을 석방하라’는 문구가 새겨진 조끼를 걸치는 순간부터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서로를 배려하는 ‘우리’가 된 것입니다.
당신을 불의의 정부에 맡길 수 없다
우리는 무작정 걸었습니다. 전국 20여개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은 참으로 험난했습니다. 도로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때론 채 1m도 되지 않는 국도의 갓길에서 우리는 곡예사가 되어야 했습니다. 시속 80km 안팎의 속도가 그렇게 빠른 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첫날 한 시간쯤 걸었을 때 휴식을 기대했건만 최 단장은 “아직 걸을 만하지. 한 시간 더 가서 쉬자”고 하며 애간장을 태웠습니다. 설령 쉬고 싶어도 좁은 도로가에서의 휴식은 위험한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 주유소 한켠에서 잠시 쉴지라도 갈 길이 멀기에 언제나 오래 머물 수는 없었습니다. 걷기는 당신을 떠올리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도착만을 ‘생산’하는 육체적 노동이었습니다. 그 노동을 당신과 함께하고자 하는 바람이 언제까지 희망사항이어야 하는 것입니까.
현실의 모순이 첨예할수록 꿈은 깊어지고, 현실이 비관적일수록 꿈은 왕성해진다고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당신을 감옥에 두는 불의의 정부에 맡길 수 없다는 게 순례단의 원초적 동인일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28일 오후에 도로가의 한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순례단원들이 찬바람을 맞고 있는 게 안쓰러웠는지 직원이 안에서 쉬라고 했습니다. 이날 사상 처음으로 열린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 청문회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교도소에 양심수가 있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송광수 후보는 “양심에 따라 행동했더라도 외부적 행위를 판단해 처벌했다. 법무부와 검찰 판단으로 양심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순례단원과 수많은 사회단체에서 석방을 촉구하는 당신이 교도소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유령이고 순례단은 미망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까.
의정부교도소에서 춘천까지 100여km. 먼 길을 걸어온 순례단원의 몸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습니다. 진보영상 ‘전야’ 회원으로 비디오 카메라에 순례단의 이모저모를 담던 막내둥이 류춘신씨는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들었습니다. 발바닥에 물집이 이중삼중으로 잡혀 발가락 뼈가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작은 실천이 아니라면 누군들 그런 고통을 감내하겠습니까. 그래도 우리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도심에서 소음으로 느껴지던 클랙슨 소리가 순례단을 향했을 때는 응원가로 들렸습니다. 28일 도착지로 ‘강원민중대회’가 열리는 춘천시청까지 6km가량 남았을 때였습니다. 우리 맞은편에서 대여섯명이 ‘열렬히 환영합니다’라는 문구를 새긴 널빤지를 들고 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분들은 춘천 들머리의 농민주유소를 운영하는 춘천시 농민회 회원들이었습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양심수 전원석방은 순례단원들만의 공허한 외침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전자우편을 주고받고 싶다
아직도 겨울이 남아 있었습니다. 산등성이에 녹지 않은 흰 눈이 있었고, 새벽녘의 차가운 공기는 한겨울처럼 매서웠습니다. 그래도 자연의 계절은 푸르른 봄날을 향해 가고 있는데 당신의 계절은 여전히 겨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을 겨울로 내몬 우리 역시 동토의 시대를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법률적 잣대로 재단할 수 없는 양심을 이유로 갇힌 당신도 이제는 철창 밖에서 봄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인권을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의 올가미에 갇힌 당신, 정치적 신념이 실정법에 묶인 당신, 종교적 확신을 굽힐 수 없었던 당신 등 모두가 말입니다. 그래야만 사회 진출을 앞두고 50여일에 이르는 고난의 행진 3천리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청년 이명원씨도 웃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것은 당신에게 전자우편을 보내고 싶은 나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합니다.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는 당신의 석방으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글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3월26일 16:44 예정에 없던 천막 농성. 의정부교도소는 순례단의 양심수 특별면회를 둘러싸고 여러 차례 말을 바꾸어 순례를 가로막았다.
3월26일 19:42 내일을 여는 천막 회의. 순례단은 천막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저녁회의에서 역할 분담과 일정 수립 등을 논의했다.
3월27일 10:03 오랜 기다림, 짧은 휴식. 의정부교도소를 출발한 순례단은 길을 잘못 들어 수km를 돌아간 끝에 2시간여 만에 첫 번째 휴식을 취했다.
3월27일 15:33 휴식 시간에는 발바닥 마사지. 도로가에서 휴식을 취하며 발바닥을 살피기 위해 등산화를 벗고 있다.
3월28일 10:03 붕대로 발바닥을 칭칭 감고. 순례단의 막내둥이로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이동하는 류춘신씨가 발바닥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 붕대를 감고 있다.
3월28일 13:03 순례 노선 변경 회의. 순례단이 청평을 앞두고 점심을 먹은 뒤 지도를 보며 원주교도소 이후의 노선을 수정하는 회의를 하고 있다.
3월29일 08:09 순례단 인원 대거 보강. 대학생 기행연합 회원 등 6명이 순례단에 합류한 가운데 28일 출발을 앞두고 자리를 함께했다.
3월29일 08:55 경춘가도 풍광을 즐기며. 순례단은 경춘가도의 풍광에 빠져 걷는 고통을 잠시 잊기도 했다.
3월29일 14:17 양심수를 위한 행복한 조우. 춘천시 농민회 회원들이 춘천시청을 향하는 순례단을 환영하기 위해 춘천 들머리로 나왔다.

순례단이 현리 삼거리를 향해 지친 모습으로 걷고 있다. 아침 8시부터 8시간 가량 걸은 뒤 천막 야영지를 5km 가량 앞둔 상태이다.

첫날 38km를 걸은 뒤 마을회관에 설치한 천막 안에서 물집 하나 잡히지 않은 발바닥을 다행스럽게 바라보고 있다(왼쪽). 순례단이 춘천시청 앞에서 열린 ‘강원민중대회’에 참가한 뒤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오른쪽).

3월26일 19:42 내일을 여는 천막 회의. 순례단은 천막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저녁회의에서 역할 분담과 일정 수립 등을 논의했다.
3월27일 10:03 오랜 기다림, 짧은 휴식. 의정부교도소를 출발한 순례단은 길을 잘못 들어 수km를 돌아간 끝에 2시간여 만에 첫 번째 휴식을 취했다.

3월28일 10:03 붕대로 발바닥을 칭칭 감고. 순례단의 막내둥이로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이동하는 류춘신씨가 발바닥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 붕대를 감고 있다.
3월28일 13:03 순례 노선 변경 회의. 순례단이 청평을 앞두고 점심을 먹은 뒤 지도를 보며 원주교도소 이후의 노선을 수정하는 회의를 하고 있다.

3월29일 08:55 경춘가도 풍광을 즐기며. 순례단은 경춘가도의 풍광에 빠져 걷는 고통을 잠시 잊기도 했다.
3월29일 14:17 양심수를 위한 행복한 조우. 춘천시 농민회 회원들이 춘천시청을 향하는 순례단을 환영하기 위해 춘천 들머리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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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수 석방과 정치수배 해제를 위한 고난의 행진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50여일 동안 이뤄지는 고난의 행진은 의정부, 춘천 원주교도소를 지났고 4월3일 아침 귀래를 출발해 청주 교도소를 향해 행진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30km 안팎 걷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가운데 참여를 희망하시는 분은 도보순례단 최진수 단장(018-222-0322)에게 연락해 안내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참가 기간은 자유롭습니다. 참가비는 하루 1만원, 일주일 5만원, 전체 일정은 10만원입니다. 참가비가 부담스럽다면 그냥 오셔도 됩니다. 참가가 어려우시다면 고난의 행진 홈페이지(www.yangsimsu.net)에 격려의 글이라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차량 이동 중에 고난의 행진 순례단을 발견하시면 잠시 가던 길을 멈추시고 박수라도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양심수 석방을 위한 전국 교도소 도보순례단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 도보순례단 주간 일정 4월3일 충주 → 4월4일 상당 2리 → 4월5일 내수 → 4월6일 2시 청주교도소 → 4월7일 홍대 조치원 → 4월8일 전의면 행정리 → 4월9일 3시 천안 교도소 → 4월10일 광정리 → 4월11일 공주 → 4월12일 대전교도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