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선택
등록 : 2003-04-03 00:00 수정 :
병법의 기본책략 가운데 하나가 협공입니다. 양쪽에서 한꺼번에 공격하면 이기기 쉽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이라크를 아래위 양쪽에서 공격할 계획이었습니다. 남쪽 쿠웨이트에서 밀고 올라가고, 북쪽 터키에서 밀고 내려와 속전속결로 바그다드를 접수할 요량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계획은 심각한 차질을 빚습니다. 북쪽 공격루트가 막혔기 때문입니다.
미군이 고전하는 이유는 이라크군을 과소평가한 탓도 있지만 계획한 협공작전을 처음부터 펼치지 못한 데 있습니다. 터키 의회가 미국의 기대와 예상을 깨고 지상군 주둔을 불허했기 때문입니다.
터키 정부가 지상군 주둔을 허용하기로 하고 의회가 이를 심의하고 있을 때, 미국은 군수장비를 실은 수십척의 수송선을 터키 남부 항구에 정박시킨 채 하역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한편으로 6만2천명의 병력을 주둔시켜주면 150억달러의 경제원조를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미국도 터키도 더없이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집권당이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터키 의회는 동의안을 부결시켰습니다. 미국과 나토 동맹국이지만 이슬람권인 국내의 반전여론이 너무 높아 미군 주둔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결정이었습니다.
미국은 경악했지만 비난을 자제했습니다. 그리고 끈질기게 회유와 협박을 해 나중에 영공 통과를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영공을 통과해 병력을 공수하는 작전은 지상군 투입에 비하면 궁여지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파병동의안의 국회 처리와 관련해 터키 의회의 결정을 돌아봅니다. 터키 의회가 우리 국회보다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습니다. 다만 절박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참고할 만합니다.
터키 의회는 민의를 반영했고, 정부와 미국의 압박 속에서도 자주적 결정을 했으며, 도의와 실리 사이에서 도덕적 선택을 했습니다. 의회는 ‘전략적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무게 있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터키 사람들은 “미국은 이번 전쟁의 목적으로 중동지역의 민주화를 꼽았다. 우리의 표결이야말로 민주화의 산 증거가 아니냐”고 자랑스러워했답니다.
저는 이제 편집장직을 물러납니다. 꼭 2년 만입니다. 지난 2년간 독자라는 애인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새로운 진용으로 짜이는 <한겨레21>을 더욱 아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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