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증가·임금 축소가 가족의 시간을 위협, 여가소비 위한 과잉노동을 다시 부르는 악순환
한 카드회사의 광고카피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외친다. 광고는, 열심히 일했으므로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굳이 광고카피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국인은 일에 충분히 지쳐 있기 때문에 여가를 그만큼 잘 누릴 필요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신용카드로 여가를 미리 소비한 노동자는 더 열심히 노동에 헌신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스태판 린더는 <유린당한 여가계급>이라는 책에서 여가시간이 늘어도 사람들은 더 바빠진다고 했다. 소비주의의 열망이 높아지면서 여가시간마저 만족을 최대화하기 위해 낭비될 수 없기 때문이다. 더 긴 여가 추구가 소비주의와 결합되어 역설적으로 사람들을 ‘더 많은 노동’으로 내몬다는 얘기다.
노동과 여가 둘러싼 흥미로운 조사결과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전국 15살 이상 남녀 2500여명에게 ‘노동과 여가, 가족’을 물은 결과 가족 지향성은 높아지고 일 지향성은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외 근무를 할 수 있다”는 대답은 1차조사(1998년)에서 2.97(4점 척도)이었으나 2차조사(2002)에서는 2.93으로 줄었다. “업무 중 집안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대답은 2.79(98년)에서 2.83(2002년)으로 높아졌다. 그런데 이런 ‘지향성’과 별개로 실제 한국인의 노동시간은 줄어들고 대신 가족시간은 늘고 있는가
안정옥(38·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씨의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현대미국에서 시간을 둘러싼 투쟁과 소비적 현대성: 노동, 시간과 일상생활’(2002)은 1970년대 이후 미국의 가족이 역사상 최초로 여가시간의 쇠퇴와 축소를 경험한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에서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됐으나 점차 ‘노동과 여가의 균형’이 깨지고 오히려 ‘더 많은 노동시간’으로 이행하고 있으며, 이것이 가족의 불안정과 위기를 깊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가의 축소’라는 뜻밖의 분석은 주5일제 도입을 앞에 둔 우리의 눈길을 잡아끈다. 논문은 노동과 가족의 일상생활의 사회적·시간적 연결망 구조의 변화를 통해 노동의 시간표가 어떻게 가족의 시간표를 침식하고 위협하는지 드러낸다. 미국의 주5일제는 2차 대전 이후 완전고용과 포드주의로 대표되는 고임금 체제와 맞물려 뿌리내릴 수 있었다. 20세기 자본주의를 지배한 포드주의는 단순한 ‘생산’체제가 아니라 대량소비를 기반으로 한 ‘축적’체제로서, 생산뿐 아니라 소비를 통해 자본을 축적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특히 미국에서 정상노동(9시~17시 근무제), 주5일제 그리고 이틀의 주말과 휴일·휴가와 같은 ‘긴 자락의 여가’는 ‘소비’에 의해 매개된 노동과 여가의 균형을 뒷받침했다. 이런 사회적 시간체계는 남성 단독 부양노동자의 가족임금 보장이라는 고임금을 기초로 가능했다. 그러나 “넉넉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는 않은” 최저가구예산으로서의 가족임금을 버는 노동자의 비율은 실질임금 하락과 함께 점차 감소했다. 백인남성 평균소득은 50년에 가족임금의 90%에 이르렀지만 67년 83%, 76년 87%로 낮아졌다. 남성 부양자는 실질임금 하락을 상쇄하려고 노동시간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가족과 노동연구소’에 따르면 주당 20시간 이상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77년 43.6시간에서 97년 47.1시간으로 증가했다. 18살 미만 자녀를 둔 아버지들은 노동시간이 50.9시간으로 다른 남성들(48시간)보다 더 많이 일했다. 이윤추구의 시간으로 변한 밤
“가족임금의 위기”를 배경으로 가족 여가시간은 노동시간으로 더욱 빠져나갔다. 70년대 들어 본격화된 가족임금의 해체는 그동안 가정에서 소비를 관리하던 여성을 임금노동으로 이끌어냈고, 이는 부부 공동부양자(맞벌이) 가족으로의 이행을 촉진했다. 70년대 이후 미국에서 부부 공동부양자 가족은 지배적 가족형태가 되었다. 90년대 말에 전체 가족의 47%, 부부 가족의 60%가량이 공동부양자 가족이었다. 여성의 공동부양노동 없이는 대다수 가족이 ‘미국적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가족 구성원의 총 유급노동시간은 크게 늘어났고, 그 결과 미국의 가족은 역사상 최초로 여가시간의 쇠퇴와 축소를 경험했다. 여성 취업은 평등한 성적 권리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지만 가족의 소비경제를 위해 여성 취업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가족의 노동패턴 변화는 가족과 노동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새롭게 부각시켰다. 공동부양은 가족의 소득 유지와 증가에 기여했지만 ‘비시장적 활동’, 즉 가족을 위한 시간을 줄였다. ‘가족의 시간표’와 ‘노동의 시간표’가 점점 양립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노동시간의 증가와 공동부양 가족의 증가, 즉 가족의 총노동시간 증가는 2차 대전 이후 형성된 노동과 여가의 이상적 균형을 깨뜨렸다.
비정규직 확산을 비롯한 노동시간의 신축화(불규칙한 노동시간 배치) 역시 가족시간과 가족생활의 안정을 위협하고, 노동과 여가의 리듬(9~17시제와 월~금요일 노동)을 허물고 있다. 노동시간의 신축적 재배치로 교대근무·야간작업과 함께 주말노동도 확산되고 있다. 80년대 중반 노동자 4명 가운데 1명이 토요일에, 8명 가운데 1명은 일요일에 정규적으로 노동을 했다. 전통적인 주5일 근무자는 97년에 모든 노동자의 54.4%에 지나지 않았다. 하루 노동시간도 9~17시제에서 벗어나 새벽 이른 아침시간과 저녁시간 이후로 분산되었다. 97년에 14살 미만의 자녀를 둔 공동부양자의 31.1%가 저녁·야간 또는 순환 교대근무하고, 46.8%가 주말에 일했다. 이러한 24시간제 사회(24시간 슈퍼마켓·백화점 등)와 24시간제 교대근무 체계(3교대 근무 등)는 밤을 ‘식민화’하며 비인간적인 삶의 지대를 만들어냈다. 안 박사는 “밤이란 생체시계 리듬으로 보아서도 쉬어야 하는 시간이다. 교대근무 체계는 밤이 이윤추구의 시간으로 변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밤에 일한다는 점에서 노동자들이 시간주권을 빼앗긴 것이다”고 말했다.
이런 경향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경남대 이은진 교수(사회학)가 한국방송과 통계청의 생활시간 조사자료(1985∼99)를 토대로 분석한 ‘직업별 노동시간의 변화’를 보면, 90년대 후반 들어 정상근무 노동자 비중은 계속 줄고, 거꾸로 밤·새벽·주말 노동이 뚜렷이 확대되고 있다. 밤 9시에 일하는 노동자는 6.7%(85년)에서 14.2%(99년)로, 밤 12시 노동자는 1.7%(85년)에서 5.2%(99년)로, 새벽 2시 노동자는 1.1%(85년)에서 3.2%(99년)로 늘었다. 반면 낮 11시에 일하는 노동자는 71%(85년)에서 62.3%(99년)로 줄었다. 특히 사무기술직과 경영·전문직을 중심으로 토·일요일 노동시간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취업자의 토요일 노동시간은 5시간 58분(85년)에서 6시간 37분(99년)으로, 일요일 노동은 3시간 22분(85년)에서 4시간(99년)으로 늘었다.
가족생활 스피드 업!
노동시간 증가는 가족의 여가시간을 빨아들였는데, 가족 구성원이 서로 다른 노동시간표를 갖고 있을 경우 더 그랬다. 80년대 중반 미국의 공동부양자 가족의 3분의 1은 한쪽이 낮에 일하고 다른 쪽이 저녁 또는 야간 교대근무를 하는 서로 다른 작업시간표를 갖고 있었다. 이런 노동시간 신축화는 가족의 안락과 유대를 위한 시간을 축소시켰다. 가족 구성원의 노동시간이 헝클어지면서 여가의 질도 악화되었는데, 가족 여가시간을 빼앗긴 미국의 노동자 가족은 더 적은 시간에 더 많은 만족을 얻기 위해 가족생활을 ‘스피드 업’해야 했다. 시간압박을 해결하기 위해 맞벌이 여성은 억척 어머니가 되거나 가사와 육아 서비스를 시장에서 구매했고, 이는 가정의 많은 일이 외주화(가사·가족 서비스산업)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 박사는 “가족의 짧은 여가시간은 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게 만들고, 놀이공원을 찾고 외식이라도 해야 겨우 부모 노릇을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소비주의의 고도화로 가족생활과 노동이 재편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모성적·가족적 서비스와 재화를 판매하는 ‘상업화된 시간산업’의 번성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바쁜 가족을 위해 가족 서비스를 제공하는 각종 육아·어린이 산업, 시간을 절약해주는 음식료업의 급속 성장이 대표적이다. 마치 직장의 노동시간처럼 가족생활의 스피드 업이 일어난 것인데, 맞벌이 여성에게는 직장이 오히려 가족생활의 시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식처 같은 공간이 되었다. 미국의 주5일제가 70년대까지 자리잡은 배경에는 남성 단독부양자의 가족임금 확보와 집안에서 이를 뒷받침한 주부의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질병’ 즉, 사회적 고립이 있었다. 그러나 실질임금 하락으로 노동시간이 가족 여가시간을 흡수하면서 맞벌이 여성에게 가정은 ‘피곤한 직장’처럼 변했다.
격렬한 스포츠를 즐기게 되는 이유
가족생활의 스피드 업과 함께 개별 노동자들도 짧은 여가시간에 노동의 피로를 풀기 위해 격렬한 스포츠를 즐긴다. 번지점프·행글라이딩·인라인스케이트·래프팅 등과 같은 스포츠는 짧은 시간 안에 짜릿함과 쾌감을 맛보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준다. 게다가 주5일제 아래서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강도와 맞교환될 공산이 크다. 여기에 경쟁을 부추기는 성과주의가 더욱 고도화될수록 서바이벌 게임처럼 스릴을 즐기는 사람은 더 늘어날 것이다.
주5일제가 보편화되더라도 사회적 임금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한국에서 늘어나는 가족생계비·주거비용·자녀교육비 그리고 소비의 고도화를 감당하기 위해 가족 노동시간은 더 늘어나고 여가시간은 그만큼 축소될 공산이 크다. 여가비용 조달을 위해서도 과잉노동은 증가하고, 이 때문에 미국처럼 여가가 오히려 줄어드는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도 있다. 가정은 대중 소비사회의 최전선이다. 말로는 노동보다는 여가를 선호한다지만 소비 열망을 충족시키려고, 줄어든 임금 또는 더 적은 임금을 받기 위해 ‘더 긴 시간’을 일해야 한다. 이럴 경우 온 가족이 아침·점심·저녁 식사를 같이 먹는 일은 더욱 드물어진다. 노동의 세계가 가족의 세계를 침범하면서 주5일제가 ‘가족적 가치’의 훼손과 불편하게 공존하는 양상이 되는 셈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여가비용 조달을 위해서도 과잉노동은 증가하고, 이 때문에 미국처럼 여가가 오히려 줄어드는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도 있다. 여가를 즐기는 직장인들과(오른쪽) 밤에도 환히 불켜진 서울 중심가의 빌딩.
안정옥(38·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씨의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현대미국에서 시간을 둘러싼 투쟁과 소비적 현대성: 노동, 시간과 일상생활’(2002)은 1970년대 이후 미국의 가족이 역사상 최초로 여가시간의 쇠퇴와 축소를 경험한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에서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됐으나 점차 ‘노동과 여가의 균형’이 깨지고 오히려 ‘더 많은 노동시간’으로 이행하고 있으며, 이것이 가족의 불안정과 위기를 깊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가의 축소’라는 뜻밖의 분석은 주5일제 도입을 앞에 둔 우리의 눈길을 잡아끈다. 논문은 노동과 가족의 일상생활의 사회적·시간적 연결망 구조의 변화를 통해 노동의 시간표가 어떻게 가족의 시간표를 침식하고 위협하는지 드러낸다. 미국의 주5일제는 2차 대전 이후 완전고용과 포드주의로 대표되는 고임금 체제와 맞물려 뿌리내릴 수 있었다. 20세기 자본주의를 지배한 포드주의는 단순한 ‘생산’체제가 아니라 대량소비를 기반으로 한 ‘축적’체제로서, 생산뿐 아니라 소비를 통해 자본을 축적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특히 미국에서 정상노동(9시~17시 근무제), 주5일제 그리고 이틀의 주말과 휴일·휴가와 같은 ‘긴 자락의 여가’는 ‘소비’에 의해 매개된 노동과 여가의 균형을 뒷받침했다. 이런 사회적 시간체계는 남성 단독 부양노동자의 가족임금 보장이라는 고임금을 기초로 가능했다. 그러나 “넉넉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는 않은” 최저가구예산으로서의 가족임금을 버는 노동자의 비율은 실질임금 하락과 함께 점차 감소했다. 백인남성 평균소득은 50년에 가족임금의 90%에 이르렀지만 67년 83%, 76년 87%로 낮아졌다. 남성 부양자는 실질임금 하락을 상쇄하려고 노동시간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가족과 노동연구소’에 따르면 주당 20시간 이상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77년 43.6시간에서 97년 47.1시간으로 증가했다. 18살 미만 자녀를 둔 아버지들은 노동시간이 50.9시간으로 다른 남성들(48시간)보다 더 많이 일했다. 이윤추구의 시간으로 변한 밤

사진/ 떠나면 끝이 아니다. 떠나고 돌아오면 더 일해야 하는 부담이 기다린다. (한겨레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