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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만성질환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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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3-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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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혈관 질환으로 쓰러지거나 치매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공포, 암 발병에 대한 불안감 등이 만연되어 있다. 그러나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예방이나 조기 발견을 위한 구체적 행동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것 같다.

장호균/ 신경정신과 전문의

사진/ 강재훈 기자
“병이 나을 수 있느냐”는 할머니의 되풀이되는 질문으로 진료실의 하루가 시작된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염병과 같은 급성질환의 시대는 가고, 지금은 고혈압·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의 유병률이 높아진 시대기 때문이다. 질병도 유행을 따라간다고 해야 할까.

“고혈압·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은 완치될 수 없고, 평생 관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의사의 대답은 할머니 내면의 두려움을 더욱 자극한다. 할머니는 팔다리가 마비되어 자식들에게 짐이 될 것이 무엇보다 걱정이다. 진료를 마치고 나가던 할머니는 진료실 문에 주름진 얼굴을 내밀고 “무슨 음식을 피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조기 발견 어려워

귀가 얇아진 할머니는 치료를 중단하고 얄팍한 상술에 넘어갈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사교육비가 공교육비를 초과하듯이 아마 비공식적인 민간의료 시장의 규모가 공식적인 의료재정보다 크지 않을까 싶다.

의료계에서는 잘 알려진 일이지만, 일반적으로 의사의 장기적 처방과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는 경우는 전체의 절반을 넘지 못한다. 노골적이기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형태가 대부분인 비순응(noncompliance)은, 질병에 대한 몰이해와 두려움, 부작용에 대한 우려, 의사에 대한 불신, 경제적 어려움, 복잡한 처방 등이 그 원인의 하나일 수 있다. 임상 경험이 적거나 행동과학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 의사들조차 이런 환자의 비순응 행동에 지쳐 이 말 안 듣는 ‘고약한’ 환자에게 야단을 치거나 으름장부터 놓기 십상이다.

2001년 10월 ‘국민 고혈압 사업단’과 ‘암 조기검진사업 지원평가단’이 발족하였다. 우리나라 만성질환 중 유병률이 가장 높고, 뇌졸중·심장병·신장병 등 치명적 합병증을 일으키는 고혈압과 사망원인 제1위를 차지하는 암에 대해 본격적으로 국가적 관리를 시작한 것이다. 고혈압과 암 조기검진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관심을 높이는 획기적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아직까지 그 영향력은 일반 국민과 진료실 말단에까지 미치지 못하는 듯싶다.

대한고혈압학회에 따르면, 성인 인구 3명 중 1명에 해당하는 약 700만명 이상이 고혈압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중 75%는 자신이 고혈압인지 알지 못하며, 5%만이 치료를 통해 정상 혈압을 유지하고 있다니 다소 충격적이다.

대단위 연구에서 수축기 혈압을 10~14mmHg, 확장기 혈압을 5~6mmHg 감소시키면 뇌졸중 발생률을 적어도 40%가량 줄일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혈관성 치매와 노인성 치매(알츠하이머병)의 상대적 빈도가 1985년 2 대 1에서 1992년 1 대 1 정도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에서, 적극적인 뇌졸중 예방을 통해 혈관성 치매의 발현 빈도를 뚜렷하게 감소시킬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만성질환은 치명적인 합병증을 상당부분 예방할 수 있으나, 장기적 관리가 요구되기 때문에 질병에 대한 구체적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혈압의 경우처럼 합병증이 발생하기 전까지 일반 상식과는 달리 대부분 ‘무증상’이기 때문에 인식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전반적인 생활개혁 필요

위에서 이미 의료계에서는 상식이 된 사실과 통계수치를 인용하면서 새로운 사실인 것처럼 강조한 이유는 만성질환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관리와 여론 환기가 절실함에도 일반적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우리 국민 내면에서 뇌혈관 질환으로 쓰러지거나 치매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공포, 암 발병에 대한 불안감 등이 만연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친구 등 주위 사람들도 내게 건강에 대해 문의나 상담을 많이 해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작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예방이나 조기 발견을 위한 구체적 행동으로 바로 연결되지 못하는 것 같다.

늘 앉아서 생활하는 현대인의 생활방식과 운동부족, 영양과잉의 문제는 현대의 만성질환 증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운동과 체중조절을 위한 생활수칙을 포괄하는 전반적인 생활의 개혁- 치료적 생활양식의 변화(TLC·Therapeutic Lifestyle Change)- 만이 증가하는 만성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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