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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평화랑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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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3-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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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GAMMA)
전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되풀이되는 일요일 저녁, 밥을 먹다가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가정을 해서 우리가 이라크 사람들이고 지금 우리 가족이 바그다드에 살고 있다면 어떤 심정일까. 텔레비전을 보니 시가지는 그냥 보통 때와 다름없다는데. 잠시 침묵이 흐르고 고등학교, 중학교 다니는 두 아이 거의 동시에 심경의 일단을 드러냈습니다. “거지같겠지.”

바그다드의 중딩·고딩 친구들에게 마음을 한마디 전한다면 “정말 안됐어,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 “무슨 말을 하겠어, 잘 살거나 잘 죽거나…”.

다시 이라크처럼 북한도 ‘악의 축’으로 미국의 표적이라는 설명을 하고 물었습니다. “만에 하나 미국이 북한을 공격해서 서울이 바그다드처럼 된다면” 전쟁영화와 컴퓨터 워게임에 익숙한 아이들이지만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결론은 아이엄마가 내렸습니다. “전쟁을 왜 해. 전쟁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지.”

얘기는 여기서 멈췄습니다. 그런데 미처 못한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얘기를 더해주고 싶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끔찍하다는 것은 잘 알겠지. 이라크는 9·11 테러와 관련이 없는데 미국은 석유가 많이 나는 전략적 요충지를 손에 넣을 속셈으로 밀어붙이고 있어. 전쟁이 벌어지면 이라크에서 많게는 50만명이 죽고, 300만명이 굶주릴 것이라고 유엔 보고서는 예측한다. 피해자 대다수는 어린이와 여성이 될 것이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질병·굶주림 같은 비참은 이어지겠지.

주인공이 사건 발생 전으로 돌아가 살인을 막으려 하지만 실패하는 스토리의 영화를 보고 마음을 졸인 적이 있지. 영화의 주인공처럼 비극의 진행을 보고도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안타깝게도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있다. 전쟁반대, 평화를 가장 소중한 가치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했다. 1236년 몽고 침략군을 물리칠 요량으로 16년의 대역사를 벌인 대장경을 보라. 염원이 오죽했으면 무려 8만개의 목판에 불교경전을 다 새겼겠느냐. 거꾸로 새긴 5200여만자에 틀린 글자가 하나도 없단다. 대장경은 몽고군을 물리치지 못했지만 온갖 난리통에도 소실되지 않고 보존돼 평화의 염원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가 평화를 염원하면 한반도 전쟁은 막을 수 있다. 한국 사람 열에 아홉이 아니라 열에 열이 평화를 바라면 막가는 미국이라도 북한을 칠 수 없다.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인간성을 파괴하는 인류의 적이라고 베트남 전쟁을 치른 작가 반레는 말했다. 이라크 전쟁이 옳으니 그르니, 한국의 파병이 이로우니 이롭지 않느니 따질 일이 아니다. 전쟁 자체가 단호히 반대하고 물리쳐야 할 ‘악의 축’이다. 우리 평화랑 놀자.”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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