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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죽자사자 일하세, 내일이면 늦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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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3-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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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근무가 무색하도록 잔업·특근 자청하는 노동자들… “일할 수 있을 때 벌어먹자”가 대세

사진/ 주5일근무제 확산에도 아랑곳없이 대다수 제조업 노동자들은 잔업·특근을 매일같이 하고 있다. 안산 반월공단의 한 중소업체. (김종수 기자)

최근 큰 파문을 불러일으킨 두산중공업 노동자 사찰문건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이 하나 있다. 친노조 성향의 노동자는 잔업과 특근에서 철저히 배제한다는 회사 방침이 그것이다. 잔업·특근에 대한 불이익은 돈을 무기로 노동자들을 회유·포섭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이었다. 잔업·특근 불이익이 잘 먹힐 것이라고 회사쪽이 판단한 데는 나름의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한달 100시간 넘기도 하는 잔업·특근

두산중공업이 노린 건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 회사쪽 방침은 우리나라의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임금 가운데 상당부분을 잔업·특근에 기대고 있는 현실을 거꾸로 보여준다. 한국의 노동시간이 세계 최장인 이유는 법정노동시간이 아직 주44시간인 탓도 있지만, 잔업·특근 등 초과노동시간이 유례없이 길기 때문이다. 물론 저임금 때문이다. 저임금구조 속에서 초과노동(잔업·야간·휴일 노동)은 대다수 제조업 노동자들이 생계임금을 보충하는 수단이다. 그만큼 잔업·특근 박탈은 저임금 육체노동자한테 생존을 위협하는 치명타로 다가온다. 회사쪽이 겨냥한 지점도 여기다.


3월6일 안산 반월공단에 있는 중소 자동차부품업체 SJM. 공장 생산라인 기계에 붙어선 노동자들은 옆에 지나가는 사람을 볼 겨를조차 없이 일에 빠져 있었다. 이 회사는 노사합의로 이미 주5일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1월치 급여명세서를 보면 주5일근무가 무색할 지경이다. 일감이 많은 제1사업부 노동자들의 잔업·특근 시간이 거의 한달 100시간을 넘는다. 초과노동이 무려 월 150시간에 이른 사람도 눈에 띈다. 정규노동시간(주40시간)에 맞먹는 시간만큼을 잔업·특근하고 있는 셈이다. 주어진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은데 사무직 노동자들보다 곱절을 더 일하면서도 몸이 견뎌낸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하루 8시간 노동이며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주5일제는 사실상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입사 10년차인 ㅂ씨의 경우 1월 기본급은 105만원, 잔업 80시간(잔업수당 56만2천원), 특근 48시간(특근수당 33만7천원)이다. 한달 128시간에 이르는 잔업·특근에 기대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입사 13년차인 ㄱ씨의 잔업시간은 79.5시간, 특근시간은 36시간이다. 기본급은 122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그 역시 115.5시간의 잔업·특근 덕에 그나마 한달 250만원 안팎의 임금을 받고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잔업(39시간)·특근(12시간)이 적은 한아무개(50)씨 얼굴에 걱정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1주일씩 돌아가는 주·야간 교대근무만으로는 도저히 가족생계비를 댈 수 없어요. 날마다 연장근로도 하고, 한달에 휴일특근을 두개 정도는 해야 하는데…. 지난달에 특근을 하나도 못했어요. 이번에 특근하겠다고 회사에 말해놓았는데 또 밀릴지 몰라요.”

인력감축 불안감이 잔업 부추겨

사진/ 한 중소 제조업체의 월급명세서. 잔업시간과 특근시간을 합쳐 100시간이 넘는다.

금속노조 SJM지회 김삼부 부지회장은 “조합원들의 평균 잔업·특근이 월 61시간인데 생산현장 노동자들만 보면 한달 80시간 넘게 초과노동을 하고 있다. 본인이 원치 않으면 잔업·특근을 안 해도 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다들 특근을 하나라도 더 하려 든다. 장시간 노동으로 산재·과로사 등이 우려되지만 저임금구조 때문에 먹고살기 위해 앞다퉈 잔업·특근하는 판이라 노조가 나서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쯤되면 실노동시간을 줄이려고 도입한 주5일제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SJM노조가 최근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하루 노동을 마치고 나서 느끼는 피로를 조사한 결과 “상당히 피곤하다”가 26.3%, “쓰러질 정도로 피곤하다”는 대답이 1.8%였다. 대부분은 “피곤하지만 견딜 만하다”(65.8%)고 말했다.

주5일근무제가 사업장마다 확산되고 있는 중에도 제조업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세계는 전혀 딴판이다. 정규노동시간 외에 잔업·특근을 밥먹듯 한다. 물론 회사쪽이 사람을 더 고용하지 않고 대신 기존 노동자들한테 야간·휴일 노동을 시키는 면도 있지만, 주목할 점은 회사쪽이 강요해서라기보다는 노동자들 스스로 잔업·특근을 원한다는 사실이다. 서로 앞다퉈 잔업·특근을 1시간이라도 더 하려는 분위기마저 팽배해있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기본급이 워낙 적은 저임금구조 때문에 가족생계비를 벌려면 어쩔 수 없이 잔업·특근에 매달려야 한다. 또 정규노동시간 외에 잔업·야간·휴일 노동을 하면 정상임금의 50%를 할증임금으로 더 받고, 3시간 일해도 단체협약에 따라 3.5시간이나 4시간 일한 것으로 쳐준다. 똑같은 시간을 일해도 정규시간보다 많은 시간당 임금을 벌 수 있다는 유혹도 작용하는 것이다. 두 가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제조업 노동자들을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고 있는 원인 가운데 요즘 나타난 현상은 경기불안·구조조정·인력감축에 대한 불안감이다. 한마디로 “아직 회사에 붙어 있을 때, 일감이 있을 때 밤낮 없이 죽자사자 벌어먹자”는 분위기가 생산현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반월공단에 있는 자동차부품업체인 창화공업의 정규노동시간은 주42시간(토요 격주휴무)이다. 그러나 하루도 빠짐없이 잔업을 한다. 주간에 8시간 일한 뒤 저녁 5시30분부터 3시간 동안 연장근로에 들어간다. 단협에 따라 회사쪽은 잔업 3시간분을 3.5시간 일한 것으로 달아준다. 이 회사의 용접공 한아무개(47)씨는 “원청인 기아자동차쪽 사정으로 이틀에 하루꼴로 쉬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면 월급봉투가 아주 얇아진다. 일감이 줄어들면 또 쉬어야 할지 모른다. 일거리 있을 때 잔업·특근 많이 해서 충분히 벌어놓아야 한다. 쉬는 날이 곧 임금이다. 일요일이라고 쉬면 엄청난 손해를 본다”고 말했다. 물가는 뛰는데 정한 시간만 딱 일하고 퇴근하거나 휴일을 가족과 보내다 보면 쥐꼬리월급으로 어떻게 생활할 수 있겠느냐고 그가 덧붙였다.

40대 이후 중고령 노동자일수록 심해

사진/ (김종수 기자)

옆에서 듣고 있던 프레스공 강아무개(48)씨가 한마디 보탰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고달프지만 한달 50∼60시간에 이르는 OT(Overtime·시간외노동) 없이 정상시간만 일해서는 도저히 먹고살 수 없다. 회사 사정에 따라 앞으로 내가 얼마나 더 일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금속노조 창화공업지회 전규식 부지회장은 “경제위기 이후 희망퇴직도 받고 사람도 많이 줄었다. 앞으로 일부 생산라인은 일거리가 줄어들고 구조조정을 할지 모른다. 힘들어도 지금 많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한달 100∼120시간을 잔업·특근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심각한 불황이 닥쳐 일감이 뚝 끊기고, 구조조정 바람이 다시 불어 회사를 떠나야 할 처지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회사에 붙어 있을 때 밤샘노동이든 휴일노동이든 가리지 말고 벌어야 한다”는 의식으로 이어진다. 생산현장마다 깔린 이런 의식은 40대 중반 이후 중고령 노동자일수록 더 강하게 퍼져 있다. 정년퇴직은 이미 옛말이고, 45살 정년을 일컫는 ‘사오정’에 이어 ‘오륙도’란 말까지 입에 오르내리는 판이다. 56살까지 회사에서 버티겠다면 도둑이란 얘기다. 일하는 회사가 앞으로 몇년간 생존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이승규 부장은 “중고령 노동자들이 많은 사업장인데, 일감이 줄어드는 곳이 있다. 거기서는 잔업을 안 하면 현장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그래서 잔업도 서로 나눠갖는다. 잔업·특근을 안 하면 먹고살기 힘든 건 자기 옆 동료도 마찬가지란 걸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몸을 사리지 않고 일해야만 생계임금을 벌 수 있는 중고령 제조업노동자들의 처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두 가지 자료가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분석(한국노동패널자료, 98∼2001년) 결과 남성 노동자 평균임금은 40대 중반에 정점(월 162만4천원)에 올랐다가 50대(월 136만3천원)에 떨어지는 포물선형을 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노동연구원 장지연 박사는 “그동안 임금수준이 높은 고령자는 퇴직압력을 받고 실제 대부분 퇴출되었다. 반면 임금이 낮은 중고령 노동자들만 아직 노동시장에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중고령 노동자일수록 소득을 연장근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노동부 조사(임금구조기본통계, 2001)에 따르면, 전 산업에 걸쳐 노동자(월 150만원)의 평균노동시간은 한달 207시간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45살 이상 제조업 노동자들만 보면 노동시간이 확 늘어난다. 45∼49살 제조업 노동자(월 120만원)는 월 229시간, 50∼54살 노동자(월 140만원)는 236시간, 55∼59살 노동자(월 150만원)는 239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늙어갈수록 노동시간은 점점 더 늘어나고, 똑같은 150만원을 벌기 위해 다른 노동자들보다 한달 평균 32시간을 더 일해야 한다. 자연히 가족과 함께 있을 시간도 없고,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노릇할 권리도 빼앗기고 있다.

“휴일은 일하지 않는다”에 오히려 반발

사진/ 두산중공업은 노동자의 저임금 현실을 교묘히 악용해 잔업·특근 통제를 시도했다. 노조가 회사의 조합원 사찰을 폭로하고 있다. (연합)

죽자사자 일한 뒤 직장을 떠나면 노후라도 편안히 즐겨야 하는데, 장시간 노동으로 몸은 이미 병든 환자가 되기 일쑤다. 과로로 병든 몸은 주5일제 뒤에 가려진 중고령 노동자의 그늘을 그대로 보여준다. 현대자동차노조는 조합원들의 건강을 위해 휴일은 일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지난해 6명이 과로사 판정을 받고, 16명한테서 과로성 질환이 발병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런데 40대 중반 이후의 나이든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이 방침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와 곤혹스러운 처지다. 현대자동차노조 박을락 부장은 “일요일 특근을 노조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거부할 게 아니라 개인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저임금 때문에 정규노동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어 한달 임금의 40% 정도를 잔업·야간·휴일 노동 등으로 벌고 있는데, 휴일특근을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막막하다는 불평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는 지난해 1년 365일 중 명절 때 10일 정도만 쉬고 날마다 일한 사람까지 있다. “특근 하면 쌀 한 가마 생긴다”는 말도 오래 전부터 현장에 넓게 퍼져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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