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기수…
등록 : 2003-03-06 00:00 수정 :
동창 몇명이 모인 자리에서 한 친구가 농을 겁니다. “남들은 장관도 하는데 뭣들 하냐”
44살 행자부 장관과 단지 동갑내기란 연유로 나온 얘기입니다. 오동잎 한잎 떨어지는 것 보고 가을을 노래하는 격이지만, 나이에 대해 젓가락을 한번씩 갖다댑니다.
벌써 중년인가. 45살이 정년이라는 ‘사오정’이란 말이 회자된 지 얼마라고 56살까지 붙어 있으면 도둑이라는 ‘오륙도’란 말까지 나돌던데, 우리 시대도 이렇게 가나
44살 행자부 장관, 46살 법무부 장관이 불편하거나 불안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들이 살아온 이력을 살펴보면 적절하고 신선한 인사입니다. 인물 보고 일을 맡겼지 나이 보고 맡기지는 않았을 터이니까 기실 나이 갖고 왈가왈부할 일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멀리 여파가 나잇살에 미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 또래가 이럴진댄 40 후반이나 50대, 60대가 받아들이는 느낌은 또 다를 것입니다. 20~30대는 거꾸로 나이 파괴를 하는 김에 더 하라고 주문할지 모릅니다.
나이 충격이 처음은 아닙니다. 새파란 군인들이 총칼로 국권을 탈취하고 지도자를 자처하거나, 재벌 2세가 젊은 나이에 그룹을 호령하는 전복을 익히 보아왔습니다. 이번에 체감지수가 높은 것은, 그런 예외가 아니라 보편적 기준이 연공서열에서 능력과 경험으로 확 바뀌는 전환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변화는 약간은 두렵고 불편하지만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불편함이 나이 탓이라면 우리의 나이는 거추장스런 굴레입니다. “내 나이가 38살이고 그때 대의를 따르지 않았다면, 내가 90을 살아도 나는 38살에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한 마틴 루서 킹의 기준을 따르지 않더라도, 생물학적 나이로 사람을 재단하는 관습은 버려야 할 세상입니다.
나이보다 테가 두꺼운 조직 내 나이가 기수입니다. 검찰 일각이 기수의 전복으로 경악한다고 합니다. 출발을 같이했다 뿐이지 경험과 능력이 같을 수 없는데 기수 서열로 가야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봉체조 하면서 가겠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국내 기업을 컨설팅한 외국 회사들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 기수(Kisu)였다고 합니다.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이, 기수 따지다가는 조선시대냐는 소리 듣기 알맞습니다. 장유유서의 조선시대에도 후학천거의 발탁인사가 행해졌으며, 연공서열은 일제의 유물이라고 합니다. 우리 검찰을 컨설팅시키면 외국 컨설턴트들이 기수란 이런 대단한 거였구나, 원더풀 할까요?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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