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재 전 인수위 행정관, 8년 동안 멀쩡하게 사회생활하다 ‘보안법 위반’ 전격 구속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공안당국에 쫓기는 사람은 피를 말리는 도피생활을 한다. 더구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조직사건의 핵심 구성원이라면, 공안기관의 집중적인 추격을 받게 마련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월28일 전격 구속된 이범재(41)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행정관을 둘러싼 논란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찰 전산망에는 수배사실 빠져있어
2월27일 일부 언론을 통해 “반국가단체 대원이 인수위 근무 중에 검거됐다”는 보도가 나온 뒤 때아닌 ‘색깔론’이 득세하고 있다. “반국가단체 조직원으로 수배된 인물이 정권의 핵심까지 아무 제재 없이 들어가 참여할 수 있는 오늘의 현실”을 걱정하며, “차제에 정권 주변인물을 점검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반국가단체에 몸담았던 사람이 노무현 정부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라며 연일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배용수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논평을 내어 “인수위 구성시부터 ‘좌파색깔이 많다’는 우려가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이런 성향의 사람이 인수위에 있었으니,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과격하다는 지적이 나온 것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가 선전이론책임자로 활동했다는 ‘구국전위’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건 1994년 6월이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는 조선노동당의 남한 내 지하당인 ‘구국전위’ 사건과 관련해 조직총책인 안재구씨 등 조직원 23명을 국가보안법 위반(간첩·반국가단체 구성 등)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 안기부는 당시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이씨를 수배대상에 올렸다.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당시 1년여의 도피생활을 한 이씨가 95년 말부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해왔다는 점이다. 이씨는 2월28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서 “94년 6월 이후 1년 동안 피신했다가 95년 말부터 학원강사로 일하는 등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했다. 미국·중국 등 외국여행도 다녔고, 불심검문까지 받았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씨는 99년 새로 여권을 발급받았다. 그가 반국가단체 간부로 주요 수배대상이었다면, 정밀한 신원조회를 하는 여권 재발급 과정에서 당연히 문제가 돼야 했다. 검찰은 “이씨는 분명 94년 8월1일자로 기소중지돼 검찰 전상망에도 올라 있다”고 말했지만, 당연히 함께 올라 있어야 할 경찰 전산망에는 수배사실이 빠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무리한 수사 물의 빚었던 ‘구국전위’
이와 관련해 검찰 안팎에서는 구국전위 사건 당시 잠적한 이씨의 이후 행적을 국정원이 애초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씨도 실질심사 과정에서 “95년 이후 정보기관의 미행을 당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국정원이 이씨의 다른 조직사건 연루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관찰해오다 인수위에서 활동하면서 신원조회가 불가피해지자 수사를 재개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구국전위 사건은 94년 중반 불어닥친 이른바 ‘신공안정국’ 아래서 발표됐다. 박홍 당시 서강대 총장의 이른바 ‘주사파 발언’이 나오며 불기 시작한 공안바람이 ‘김일성 조문 파동’으로 이어지면서 공안사건이 잇따라 터져나왔다. 그러나 구국전위 사건을 비롯해 김일성청년동맹·성남노동자회·한누리노동청년회 사건 등에 연루돼 당시 구속기소된 51명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12명에 지나지 않았다. 당연히 공안기관의 무리한 수사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구국전위 사건의 1심 재판부도 구속된 23명 가운데 16명은 구국전위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로 판단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희생양’. 이범재씨는 심지어 검찰이 주장하는 기소중지 기간에 여권까지 새로 발급받았다. (오마이뉴스 제공)

사진/ ‘구국전위 사건을 보도한 1994년 7월 3일치<한겨레>사회면. 수배자 명단에 이씨의 이름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