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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환자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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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3-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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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를 건강한 대한민국으로, 닫힌 사회를 열린 사회로 만들기 위해 벌써부터 했어야 하는 일이 있다고 본다. 바로 기초질서 회복이다. 기초질서 회복은 원칙에 대한 존중에서부터 시작된다. 원칙에 대한 존중의 기본에는 인간존중이 자리잡고 있다.

박의경/ 성균관대학교·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최근에 많은 젊은 세대의 희망을 안고 새 정부가 출발했다. 동시에 사회의 불안한 의식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대구지하철 참사로 많은 사람들이 허탈한 가운데 우리 사회를 위기로 진단하고 있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고, 시작과 함께 위기를 맞은 셈이다. 새 정부는 소수정권이라는 태생적 한계와 함께 사회적 다원성 제고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사실상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현재 우리 사회의 위기에 대한 근본과제는 건강한 사회의 정립이다. 수년 전 일어난 막가파 사건부터 최근의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은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이, 사회의 환부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도, 환자를 방치한 결과는 소중한 생명의 손실이다. 막가파 사건도, 대구지하철 방화사건도 사회에서 방치된 환자로 인한 자연발생적 사건이었다고 하면 너무 자조적 평가일까

사회적 환자에게 치유의 손길을


문제가 인식되고 원인진단이 되었다면, 다음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해결책일 테고 이를 위해 결정적인 것은 해결로 가는 방법을 찾는 일일 것이다. 사회는 일거에 생기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아니기에, 지속적인 인식, 진단, 치유로의 체계적 접근이 건강한 사회로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권위주의적 행태에 눌려온 결과, 유형·무형의 많은 사회적 자산이 소수에 집중된 것이 사실이다. 사회적 권력과 자산의 집중은 이에 속하지 못한 다수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현상을 불러왔고, 박탈감과 소외의 극단적 탈출구로 자살이나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 등이 있어 왔다. 최근 들어 자살이 빈발하고 대구지하철 방화사건과 같은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빈발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사회적 환자도 육체적 환자처럼 치료받아야 한다. 환자의 발생원인이 일부 사회에 있기에, 치유도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소수에게 권력과 자산이 집중되어 있고, 이로 인한 분배의 불평등이 만연한 상태에서 계층적 차별이 발생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결과다. 최근 들어선 새 정부는 5년 동안의 주요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차별철폐를 들고 있다. 여기에는 성적 차별, 장애인 차별, 학력 차별 등 그동안 소외돼온 많은 문제들이 포괄되어 있다. 결코 간과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과제고, 어쩌면 너무 늦은 과제 설정인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모든 과제에 앞서 더 중요한 선결과제가 있다고 본다. 환자 대한민국을 건강한 대한민국으로, 닫힌 사회를 열린 사회로 만들기 위해 벌써부터 했어야 하는 일이 있다고 본다. 바로 기초질서 회복이다. 기초질서 회복은 원칙에 대한 존중에서부터 시작된다. 원칙에 대한 존중의 기본에는 인간존중이 자리잡고 있다. 대구지하철 참사사건에서 필자는 인간존중에 기초한 존중이 작동하는 기초질서가 제대로 자리잡혀 있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기초질서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아직 우리는 한국의 근대 30년의 악몽인 성장과 개발 패러다임에서 정신적으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하여 일상에서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소한 것을 간과하고, 일반적으로 더 크고, 더 빠르고, 더 중요한 일에 관심을 가져왔다. 사회적 기초를 무시하고 목표에만 매달려왔다. 그러나 실제로 나의 삶을 규정하는 것은 사소한 일상사다. 사소한 일상사의 총합이 나의 삶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렇게 사소함이나 일상사가 중요함이라든가 국가대사로 대체돼버린 데서 현재 한국 위기상황의 존재근거를 발견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political)라는 명제는 여성운동만의 몫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열린 사회로 나가기 위해서는 건강해져야 하고,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개인의 사소함이 중요함으로 들어서야 한다. 개인의 일상사가 정치적 과제로 등장하고, 삶의 불편이 해소되는 현장에는 인간존중이 들어선다. 이러한 인간존중을 기반으로 해 사회적 원칙들을 규정해나가면, 앞서 말한 그러한 참사가 발생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사회적 제어장치가 된다. 이를 위해 기초부터 다져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박의경/ 성균관대학교·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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