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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나는 안 산다, 성을 안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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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2-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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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거절 10만 남성 서약운동… 접대문화 개혁 위해 기업들과 접촉도

사진/ 하이패밀리는 지난 2월 20일 서울 탑골공원 앞에서 ‘성매매 거절 10만 남성 서명운동’을 벌였다. (김종수 기자)

“당신은 성매매 행위를 해본 적이 있는가 그것이 사창가이거나, 룸살롱, 안마시술소, 퇴폐이발소, 전화방, 티켓다방 또는 원조교제든 관계없이, 돈을 주고 성행위를 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는가”라는 물음을 받고 ‘없다’고 대답할 대한민국의 성인 남성은 얼마나 될까

“성적 순결주의”한계 비판도

군대 가기 전에 사창가에 들러 총각딱지를 떼는 것이 관행으로 돼 있는 나라에서, 거래처를 접대할 때 저녁식사나 술자리가 끝난 뒤 ‘마무리’로 성접대까지 해야 제대로 대접했다(이른바 풀코스)라고 평가받는 나라에서 이런 물음을 던진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 모른다.


기독교시민단체 하이패밀리(대표 송길원 목사)가 최근 시작한 ‘성매매 거절 10만 남성 서약운동’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지금까지의 성매매 근절운동은 여성들의 자기 방어적인 운동이었습니다. 이제 결자해지 차원에서 남성들이 나서야 합니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어지지 않겠습니까”(송길원 목사)

하이패밀리는 밸런타인데이인 2월14일부터 화이트데이인 3월14일까지 서울 신촌·고속버스터미널 등 전국 7곳에서 10만명을 목표로 서명운동을 벌인다. 이 기간에 젊은 남성들이 성에 가장 많이 노출된다는 판단에 따라서다. 남성들 스스로 성매매가 나쁜 행위라는 것을 깨우치는 게 중요하므로, 철저히 자발적 의사에 따라 서명을 받을 계획이다. 이와 함께 성매매의 주요 수요처가 되는 기업의 접대문화를 개혁하기 위해 몇몇 기업들과도 접촉을 하고 있다. 기업들로 하여금 ‘2차 접대, 이제는 노’, ‘성 접대, 하지도 받지도 않기’ 등의 선언을 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하이패밀리는 앞으로 교회, 사찰, 성당 등 교계를 비롯해 대학 총학생회, 각 직능별 단체와 연계해 서명운동을 확산시킬 계획이다.

지금까지 서명에 참여한 사람은 김우식 연세대 총장, 어윤대 고려대 총장(이상 교육계),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정대철 의원, 이재정 의원, 김근태 의원, 김덕룡 의원 (이상 정계), 손석춘 <한겨레> 논설위원, 안국정 SBS 전무(이상 언론계), 가수 하덕규씨 등을 포함해 수백명에 이른다.

사진/ 성매매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여성은 빚더미에 올라앉고, 포주는 거액의 자산가가 되는 게 현실이다. (한겨레 이정용 기자)
이 단체가 성매매 근절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우리나라 성매매 산업의 규모가 한해 24조원에 이르며,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이 33만명에 이른다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결과였다. 박명철 하이패밀리 미디어팀장은 “여성계에서는 이런 수치가 현실을 지나치게 축소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성매매 거절운동을 통해 남성들 스스로 일그러진 성의식을 바로잡고,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 접근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나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성계 한편에서는 이 운동에 대해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외국인여성노동자센터 대표 한국염 목사는 “남성들의 성매매 근절운동이라는 새로운 시도의 참신성은 높이 사지만, 종교단체의 특성상 자칫 ‘성적 순결주의’에 머물 수 있다. 이는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더럽다고 치부하거나 회개 대상으로 보는 등 잘못된 접근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성단체들과의 연대를 통해 여성인권 보호와 왜곡된 성문화 추방이라는 목표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운동이나 노숙자운동과도 연계

이에 대해 박 팀장은 “하이패밀리가 추구하고 있는 가정문화운동이라는 게 중산층 위주의 가족이기주의를 부추기는 운동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노동운동이나 노숙자운동 등 다른 운동단체와 적극 연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민주노동당 최현숙 여성위원장이 이 운동 발대식에 참여해 연대사를 했다. 최 위원장은 “우리 사회 남성들의 이중적인 성관념과 가부장적 인식 그리고 여성들을 끊임없이 주변화·성상품화하는 물질 만능의 사회구조 아래서 여성들만의 활동으로 성매매를 근절하기는 어렵다. 성매매 현장에서 ‘가진 자’의 자리에 있는 남성들 스스로 자신의 양심에 따라 성매매를 거절하겠다는 자발적 의사표명은 여성 억압적 사회구조와 가부장적 문화를 극복하는 활동에 여성들과 연대해 동참할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성매매 문제에 관해 우리 사회는 매우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 때 만든 윤락행위방지법을 통해 명목상으로는 성매매 행위를 금지하지만, 실제로는 대규모의 사창가들이 온존하고 있고, 각종 형태의 변형된 성매매 업종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 법에 근거해 이뤄지는 간헐적이고 부분적인 단속마저 남성들이 아닌 여성들을 잡아가두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 사회에서 성매매는 가부장적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사회를 통제하는 적절한 장치로 기능해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남성의 성욕은 절제할 수 없는 것이라는 남성 편의적 사고에서 비롯한다. 최근 개그우먼 이경실씨 사건으로 사회문제가 된 아내폭력 문제에 대해서도 ‘아내가 맞을 짓을 했겠지’ 하는 식의 정서가 우리 사회에 팽배한 것 역시 이런 남성 위주의 사고가 만연한 까닭이다.

성매매 여성은 범죄자 아닌 피해자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여성은 범죄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성산업의 굴레에 얽매여 성매매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여성은 빚더미에 올라앉고 포주는 재산가가 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2000년 9월19일 전북 군산시 대명동, 2001년 2월14일 부산시 완월동, 2002년 1월29일 또다시 군산시 개복동 업소에서 불이 나서 감금돼 있던 성매매 여성 23명이 잇달아 숨진 사건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성매매 여성을 착취하는 거대한 범죄조직의 존재, 범죄조직과 관련 공무원·경찰의 유착관계, 성매매 업소를 통해 벌어들이는 엄청난 이득, 직업소개소를 통한 인신매매·감금·협박과 같은 일상적 폭력의 심각성 등이 적나라하게 폭로됐고, 이를 통해 성매매의 억압적 구조와 착취적 본성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15개 시민사회단체들은 군산 화재참사에 책임 있는 포주와 관련 공무원들을 형사고발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우리나라 여성단체들은 2001년부터 성매매 방지법(성매매알선등범죄의처벌및방지에관한법률) 제정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운동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앞에서 언급한 군산에서의 두 차례 화재참사였다. 그러나 성매매 방지법은 아직도 제정되지 않았고, 대신 2003년 벽두인 1월5일, 전라북도 장수군의 한 업소에서 불이나 여성 4명이 또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와 같은 대형 안전사고를 늘 잉태하고 있었다면, 우리 사회 남성들의 도덕불감증이 이 여성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아닌지 반성이 필요한 때다.

이재성 기자 firi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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