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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새 정권의 출발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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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2-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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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최병수

달라이 라마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 정신적 투사(投射) 때문이라고 합니다. 투사는 마음을 어지럽히는 본능으로, 우리 자신과 대상의 강렬한 상호작용에서 비롯한다고 합니다. 최고급 노트북만 있으면 온갖 문제가 풀리고 글이 술술 써질 것으로 착각하거나, 며느리가 밉다고 발뒤꿈치까지 미운 것이 그런 예입니다.

정신적 투사를 걷어내고 보면 청와대의 새 주인은 불안한 과격분자도, 전지적 해결사도 아닙니다. 그는 신중하게 판단하고, 옳다고 여기면 추진하는 전형적 리더라는 편이 옳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돼서도 많은 얘기를 듣고 최적의 해답을 찾아 행동하려고 애쓸 것입니다.

새 정권의 운명은 그렇다면 명료합니다. 성패는 대통령보다 대통령의 손발, 곧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에 달려 있습니다. 정권 담당자들이 공직을 자기희생이 따르는 봉사로 여기면 정권은 성공합니다. 거꾸로 권력을 달콤한 유혹으로 향유하면 정권은 실패합니다. 노무현 정권은 그 진정한 과도기에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 담당자들은 봉사하려는 자세가 돼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권력의 끝없는 유혹을 받을 것입니다.

성공의 첫 번째 조건은 도덕성입니다. 도덕성에 허점이 생기면 만사 도로아미타불입니다. 참모들은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지만 이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권력 주변의 유혹은 너무 커, 도덕성을 결의와 개인의 덕성에만 맡기는 것은 위험합니다.

권력이 향유에서 봉사로 대전환을 이루려면, 그래서 국민의 정부니 참여 정부니 하는 수식어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새 정부가 되려면, 대기권을 벗어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추진체가 요구됩니다. 토론·열정과 함께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강력한 감시장치가 그것입니다.


미국 건물의 화장실에서 짧은 세 문장의 경고표지를 본 적이 있습니다. ‘노 스모킹. 벌금 1천달러. 담배연기 감지기 작동 중’.

담배에 코박고 사는 사람도, 어떤 강심장도 담배 피울 엄두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흡연을 삼가주십시오’라고 쓰인 우리나라 경고문은 이에 비하면 정말 인간적입니다. 그러나 인간적 경고문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금연빌딩을 어딘가에 흡연실이 있는 반쪽 금연빌딩에 불과하게끔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금연빌딩의 예외지대는 권력 핵심부였습니다. 새 정부는 순항을 바란다면 먼저 스스로를 ‘담배 1대에 벌금 1천달러’라는 가혹한 감시장치에 얽어매야 할 것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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