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대표로 베트남 다녀온 안정애씨, <한겨레21> 기고내용 문제돼 강의 중단 요구받아
베트남전에 대한 다른 시각은 용납될 수 없는가.
<한겨레21> 독자대표 자격으로 지난 1월21일 ‘한-베 평화공원’ 준공식에 참석한 안정애(44·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 연구원·육군사관학교 출강)씨가 출강 중이던 육군사관학교쪽으로부터 남은 강의의 중단을 요구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안씨는 “2월4일 8시30분께 육사 정치사회학과 주임교수 방에서 학과장과 주임교수로부터 ‘<한겨레21>에 실린 글이 학교 안팎에서 물의를 빚어 강의를 계속하기 힘들게 됐다’는 통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2월17일 육사 교장을 상대로 공식 해명을 요청하는 내용증명 우편을 발송했다.
강의 위해 출근했다 그냥 귀가
육사 정훈공보실 관계자는 “안씨가 <한겨레21> 443호(2003년 1월23일치)에 독자대표 공모글로 기고한 ‘생도들에게 올바른 역사를’이라는 글이 문제가 돼 학과 차원에서 이런 결정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월4일 아침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육사교정으로 출근한 안씨는 이런 조치에 따라 당일 오전·오후에 예정돼 있던 4시간치 정치사회학과 강의에 들어가지 못하고 귀가했다. 육사쪽은 이를 ‘일신상의 이유에 따른 유고’로 처리하고 다른 교수의 강의로 대체했다. 안씨는 또 2월6일, 11일, 13일에 잡혀 있던 총 8시간 분량의 강의도 하지 못했다. 육사쪽은 “안씨가 다음 학기에 강의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안정애씨는 <한겨레21>이 지난해 12월 베트남 독자성금 캠페인을 기념하며 공모한 ‘한-베 평화공원’ 준공식 독자대표선발에 응모해 당선자로 뽑힌 바 있다. 당선자를 발표하는 <한겨레21> 443호에 응모글이 실렸고, 베트남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엔 ‘아이들아, 전쟁을 미워하렴’이라는 제목의 방문기를 <한겨레21> 445호(2003년 2월13일치)에 기고했다. 국제정치 전공인 안씨는 2002년 10월15일부터 육사 2학년 2개 교반(각 15명)을 대상으로 ‘국제관계론’을 주 6시간 강의해왔으며, 1988~89년에도 육사에 출강한 경력이 있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방부 산하 국방군사연구소(현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사건의 발단은 육군사관학교 인터넷 홈페이지(www.kma.ac.kr)에 띄운 익명의 글이었다. ‘caesar’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 네티즌은 2월1일 이곳의 방명록에서 <한겨레21> 443호에 실린 ‘생도들에게 올바른 역사를’이라는 글을 언급하며 필자 안정애씨를 “우매한 반미주의적 역사학자”로 비난했다. “전후복구에 지대한 도움을 준 미국의 고마움을 무시한 채 극히 예외적인 노근리 사건… 미군이 극도로 혼란한 상황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을 우등한 미국인이 열등종자인 우리를 멸시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만행이라 해석하는… 이런 자가 육군사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니 가슴을 치고 통탄할 일이다.”
육군사관학교 인터넷 홈페이지 운영자는 이틀 뒤인 2월3일 이 글을 삭제했다. 대신 댓글을 달아 “학교 차원에서 해당 사안의 자초지종과 강사 본인에 대한 확인을 거쳐 교육방침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안씨가 도중하차했으므로, 결과적으로 육사는 ‘교육방침에 어긋나는 부분에 대한 필요한 조치’를 취한 셈이 됐다. 육사 정훈공보실 관계자는 “‘caesar’의 글이 오른 뒤 졸업생들의 항의전화를 많이 받았다”며 “공보실에서 이에 대한 진상을 교수부장에게 문의했고, 교수부장이 다시 해당 학과장에게 확인하는 과정에서 안씨에게 강의 중단을 요청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육사 내부에서 안씨의 글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은 “베트남전은 생도 선배들이 개입된 것이므로 될 수 있으면 과거에서 교훈을 얻고 다시는 오욕의 행위를 하지 않도록 거울로 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라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정치사회학과 학과장 황아무개 교수는 “학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가능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국비 교육기관인 육사 생도를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곤란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어쨌든 정훈공보실의 관계자는 “학과장과 주임교수가 안씨를 보호하려는 차원에서 수업을 그만하자는 오퍼를 했고, 이를 본인이 받아들여 이뤄진 일”이라고 강조했다. 안씨에게 수업 중단을 통고한 황아무개 학과장도 “당사자와 합의된 문제”라고 말했다. “안씨 본인이 이의 없이 받아들였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거다.
여기저기 불려다녀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안씨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육사쪽의 설명은 ‘자의적 해석’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합의”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펄쩍 뛰었다. “수업 중단과 출석부 인계를 요구받았지만, 누구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 내 글을 비난한 네티즌의 글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듣지 못했다. 교수들과의 인간관계 때문에 즉각 거부를 못했을 뿐이다.” 그는 “이 문제가 위로 더 확대되면 안씨가 여기저기 불려다니면서 조사받아야 할지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현재 육사 교장에게 공식 해명을 요청한 안씨는 “생도들에게 정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할 기회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가 된 내 글의 내용이 옳고 그른가는 부차적 문제다. 일단 팩트조차 엉터리인 익명의 비난글과 관련해, 본인의 반론조차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일을 처리한 것을 묵과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대학 강사가 공공매체에 기고한 글로 트집잡혀 학기 중 강의 중단을 요구당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육사가 군의 핵심리더이자 엘리트를 키우는 교육기관이라 할 때, 이곳에서 최소한의 토론기회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개혁되지 않은 군사문화’의 상징적 사건으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육사 정훈공보실 관계자는 “특정 사관이나 시각을 문제삼은 것이 아니다. 안씨의 글이 매스컴에 공개돼 물의를 빚은 게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지만 설득력이 별로 없다. 특정 시각을 비난하는 익명의 네티즌 때문에 촉발된 사안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군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육사 내부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은 그 반대의 논거로 사람들 입길에 오르기에 충분해 보인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사진/ 문제가 된 <한겨레21> 기고글.
육사 정훈공보실 관계자는 “안씨가 <한겨레21> 443호(2003년 1월23일치)에 독자대표 공모글로 기고한 ‘생도들에게 올바른 역사를’이라는 글이 문제가 돼 학과 차원에서 이런 결정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월4일 아침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육사교정으로 출근한 안씨는 이런 조치에 따라 당일 오전·오후에 예정돼 있던 4시간치 정치사회학과 강의에 들어가지 못하고 귀가했다. 육사쪽은 이를 ‘일신상의 이유에 따른 유고’로 처리하고 다른 교수의 강의로 대체했다. 안씨는 또 2월6일, 11일, 13일에 잡혀 있던 총 8시간 분량의 강의도 하지 못했다. 육사쪽은 “안씨가 다음 학기에 강의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안정애씨는 <한겨레21>이 지난해 12월 베트남 독자성금 캠페인을 기념하며 공모한 ‘한-베 평화공원’ 준공식 독자대표선발에 응모해 당선자로 뽑힌 바 있다. 당선자를 발표하는 <한겨레21> 443호에 응모글이 실렸고, 베트남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엔 ‘아이들아, 전쟁을 미워하렴’이라는 제목의 방문기를 <한겨레21> 445호(2003년 2월13일치)에 기고했다. 국제정치 전공인 안씨는 2002년 10월15일부터 육사 2학년 2개 교반(각 15명)을 대상으로 ‘국제관계론’을 주 6시간 강의해왔으며, 1988~89년에도 육사에 출강한 경력이 있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방부 산하 국방군사연구소(현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사건의 발단은 육군사관학교 인터넷 홈페이지(www.kma.ac.kr)에 띄운 익명의 글이었다. ‘caesar’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 네티즌은 2월1일 이곳의 방명록에서 <한겨레21> 443호에 실린 ‘생도들에게 올바른 역사를’이라는 글을 언급하며 필자 안정애씨를 “우매한 반미주의적 역사학자”로 비난했다. “전후복구에 지대한 도움을 준 미국의 고마움을 무시한 채 극히 예외적인 노근리 사건… 미군이 극도로 혼란한 상황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을 우등한 미국인이 열등종자인 우리를 멸시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만행이라 해석하는… 이런 자가 육군사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니 가슴을 치고 통탄할 일이다.”

사진/ ‘한-베 평화공원’준공식에서 인사말 하는 안정애 씨. (이용호 기자)

사진/ 육사생도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려주는 일은 과연 위험한가. (박승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