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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림자 인간’에게 이름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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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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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운반에서 관장까지’ 병원에서 절대 없으면 안 되지만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들

(사진/환자이송은 숙련노동이다.'오더리'로 불리는 고씨와 그의 동료들은 병원 안 응급업무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싶어한다)
10월6일 정오. 서울 이대 목동병원에서 일하는 고재형(36)씨는 2층에 있는 벽장만한 휴식처에 들러 잠깐 다리를 뻗어본다. 아침 7시부터 담배 한대 피울 짬이 없이 움직였다. 삐삐 신호음이 울린다. ‘오더’가 떨어졌다. 부리나케 7층 병실로 올라가 한 할아버지 환자를 지하 방사선과로 데려간다. 몸을 못 가누는 이라 아예 침대째 끌고갔다. 예전에는 환자를 운반기구에서 침대로 옮기는 일까지 했지만 요즘에는 그 몫은 덜어졌다. 가끔 대기시간이 길어진 환자들이 불평할 때면 의료진의 눈치를 봐가며 옮겨주기도 한다.

간호보조원도 조무사도 아닌…

흰색 상의, 흰색 바지, 흰색 운동화. 이것이 고씨의 복장이다. 질문 하나. 고씨는 무얼하는 사람일까. 그의 직종은 뭘까. 정답을 아는 사람은 아마도 병원에 입원했거나, 응급실 신세를 져본 경험이 있는 이들일 것이다.


정확하게 말해 고씨에게는 이름이 없다. 병원의 그림자 인간. 무슨 미스터리 공포물 제목이 아니다. 고씨와 그의 동료들이 의료계의 소수자인 자신들을 일컫는 말이다. 행정적으로는 간호부에 속해 있지만 간호보조원도 조무사도 아니다. 그렇다고 용역원이나 잡역부도 아니다. 이들은 어느 병원에나 꼭 있고, 있어야 하지만, 이름이 없어 존재가치를 인정 못 받는다. 당연히 정확한 통계도 잡히지 않는다. 온갖 직종의 교집합인 병원의 근무자 중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없다는 건, 참 난처하고 섭섭한 노릇이다. 반면 업무는 다양하다. 큰 병원에서는 환자이송이 주된 업무이고 병원 규모가 작을수록 일의 범위는 넓어진다. 단순 운반은 물론 응급처치, 관장을 비롯해 위세척 고무관을 넣는 일, 석고 붕대 감는 일까지. 심지어 작은 개인병원에서는 상처 소독이나 꿰매기 등 무면허 의료행위에 걸릴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고씨와 그의 동료들을 일컫는 말로, 영어에는 오더리(orderly: 오더를 받는 사람, 순종하는 사람이라는 뜻)란 호칭이 있긴 하다. 하지만 전령, 연락병 등으로도 통하는 이 단어는 적절하지 않다. 언뜻 보아 모욕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병원에 따라 화이트가운, 옐로가운으로 부르거나 기능보조원, 남자간호부로 부르기도 한다. 근무 연차가 많은 이들에게는 주임, 계장, 과장 등 직함을 붙여 임의적으로 ‘대접’해주기도 한다. “화이트가운하고 화이트칼라하고는 달라요. 아시죠? 우리는 블루칼라요.”

고씨와 그의 동료들은 스스로의 직종을 화이트가운이라 한단다. 병원 개원멤버인 고씨의 직함은 주임. “하지만 아저씨로 더 많이 불려요. 솔직히 섭섭하죠.”

의료계 3차 총파업이 시작된 날이라 그런지 병원이 조금 한가해 보였다. 그렇다고 고씨의 일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환자에게 훨씬 더 신경이 쓰인다. 의사, 간호사의 신경이 날카로울 땐 더욱 그렇다. 다행히 오늘은 응급실 근무가 아니다. 응급실에선 교통사고 환자 서너명만 한꺼번에 들이닥쳐도 정신없이 동동거려야 한다. 병상 600석이 넘는 이대 목동병원에서는 고씨와 같은 이들 30여명이 3교대로 일한다.

그는 주로 서 있다. 앉을 자리도 마땅치 않지만 시간도 없다. 밥을 빨리 먹는 것도 습관이 됐다. 그가 병원 복도에 서 있자 오가던 환자와 보호자들이 반갑게 아는 척을 해온다. 잘 웃고 친절해서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제일 인기가 많다는 게 동료들의 귀띔이다. 그의 별명은 스마일 아저씨. 야구 해설가 하일성을 닮았다고 해서 가짜 하일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전문적인 재교육 필요하다

(사진/환자를 이송하는 이대 목동병원 고재형씨. 그와 같은 이들은 어느 병원에나 꼭 있고 있어야 하지만, 이름이 없어 존재가치를 인정 못 받는다)
몇년만 일해도 허리가 망가지지만, 고씨는 자신의 일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병원에서 환자를 이동시키는 역할은 우리 몸에 비춰볼 때 피돌기에 해당할 만큼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그런 만큼 조심스러운 일이다. “병원에 오기 전까지 꼽으면 열두개도 넘는 직업을 가져봤지만 이 일만큼 보람있는 일은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많이 우울해요. 동료들이 하나둘 떠나도 붙잡을 명분이 점점 약해집니다.” 병원 카스트제도는 가혹하고 냉정하기 때문이다. 특히 의료계 문제로 시끌벅적했던 올해엔 더욱 그랬다.

그의 일은 숙련된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단순 운반이라 해도 예를 들어 골다공증에 걸린 노인을 움직일 때 세심하게 주의하지 않으면 뼈가 부러질 위험도 있다. 또한 응급환자 이동은 신속하고 안전해야 한다. 위급한 상황이 생겨도 침착해야 한다. 그래서 수십년씩 일한 ‘오더리’한테 현장 경험이 없는 인턴들이 되레 배우는 일도 많다.

하지만 병원은 고씨와 같은 이들을 양성화하고 교육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궁여지책으로 고씨는 97년 응급구조사 2급 자격증을 자기 돈 들여 땄다. 국가는 인정을 했지만 병원은 여전히 그의 자격을 인정 안 해준다. 재교육을 받으려 해도 야근 뒤 쉬는 날이나 연월차를 내서 다녀와야 한다. “작은 병원에서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치료에도 투입된다고 들었는데 그건 분명히 잘못된 일입니다. 치료는 고급 의료행위입니다. 마찬가지로 의사와 간호사 등 고급 의료인력이 우리 일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봐요. 인력 낭비죠. 따라서 전문 응급기사들을 키우고 거기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는 게 필요합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에요. 기꺼이 병원의 밑바닥 일을 하겠다는 겁니다. 대신 직종 이름을 붙여주는 것, 그것부터 시작했으면 해요.”

이름이 없어 답답한 건 한두개가 아니다. 무엇보다 업무 범위가 분명치 않다. 그래서 종종 간호사들과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위급한 사람을 볼 때 할 수 있는 한 돕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닌가. “어쩔 때에는 환자가 흘린 피를 닦아주고 싶은데 망설일 때도 있어요. 이거 내 일 아닌데 하면서. 자꾸 이러다 보니 내 자신이 치사해지는 것도 같고…. 예전에는 위세척도 했는데 요즘은 업무가 엄격해졌어요. 참 꼭 하나 하는 게 있어요. 관장. 그건 더러워서 그런지 제가 해도 뭐라고 나무라지 않더군요. 하하.”

그는 서울의 보훈병원에서는 공익요원을 응급실에 투입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혀를 찼다.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지만, 우리 일 역시 중요해요. 우리는 환자를 제일 먼저 접하고, 환자와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따라서 친절교육만이 아니라 전문적인 재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응급의학전문의인 울산 동강병원 김승렬씨는 인터넷에 올린 칼럼에서 이들을 ‘치료기사’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석고기사들이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해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처럼 이들에게도 경험과 능력에 따라 치료기사 혹은 응급기사 대접을 해주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거기에 맞는 자격증을 만들거나 적절한 양성기관을 두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의료영역에서 이들이 맡고 있는 일의 중요성을 의사들부터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에서도 이들의 처지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이주호 정책실장은 “직종 위원회를 통해 정확한 업무범위, 처우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논의가 마무리되면 이들이 전문성을 기르고 의료노동자로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내올 것”이라고 말했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고,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인간사가 고스란히 압축돼 있는 병원 공간에서 근무자의 첫째 덕목은 뭘까. 고씨에게 그것은 안전하고 친절하게 환자를 대하는 일이다. 그 일만큼은 자신있다. 고씨는 이 일을 평색 직업으로 삼고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어한다. 그러려면 먼저 꼬마환자들이 검사실로 데려다준 그에게 고마움을 담은 눈빛으로 “아저씨는 누구세요?”라고 물을 때 정확하게 대답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소희 기자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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