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그리 정신으로 승부하는 ‘깡순이’
등록 : 2003-02-20 00:00 수정 :
사진/ 가이드이자 감시원인 머피트(왼쪽)와 김영미 피디. 머피트는 보안을 위해 차안에서 사진을 찍자고 했다.
김영미 피디가 6mm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포연이 자욱한 동티모르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탄 것은 지난 1999년 말. 5년간의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있던 그때, 시체가 즐비한 동티모르 내전 사진과 운명처럼 마주친 것이다. 그때만 해도 그는 그 카메라가 8mm인 줄 아는 무지렁이였다. 당연히 촬영기술이나 다큐멘터리 작법 같은 것도, 동티모르어도 알 턱이 없었다. 돈도 없었다. 다큐멘터리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찍어보겠다는 엄두는 한번도 내본 적이 없었다.
“처음엔 그냥 동티모르 여인들과 함께 살았어요. 바다와 들판이 있고, 무엇보다 순박한 사람들이 있어서 좋았어요. 그들과 함께 살다 보니 제 상처가 자연스레 치료가 되더라고요.”
그렇게 동티모르 여인들로부터 동티모르어를 배웠고, 외신기자들에게서는 촬영기술을 배웠다. 먼저 같이 살던 동티모르 여인들의 삶을 찍었고, 그것이 그의 첫 작품이 됐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분쟁지역을 넘나들며 현지인들의 삶에 밀착한 다큐멘터리를 찍어내 우리나라와 일본의 방송계를 놀라게 했다. 그 비결은 취재대상과 혼연일체가 되는 완벽한 감정이입, 그리고 ‘깡’으로 무장한 헝그리 정신이다.
“내가 찍었던 사람들이 다 나처럼 밑바닥까지 갔던 사람들이거든요. 아이와 단둘이 세상에 남겨졌는데, 할 줄 아는 것은 하나도 없고, 돈도 없고…. 정말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었어요. 죽더라도 해보고 싶은 일 한번 해보고 죽자는 식이었죠.”
그의 작품이 일본에서도 방송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헝그리 정신 덕분이다. 그는 지난해 외주 피디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 진출을 꾀했다. 하지만 일본어를 전혀 몰랐고,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그는 완전히 ‘독립군’이었다. 일단 부딪쳐보기로 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한 굴지의 방송사를 찾아갔다.
“(아프간 관련) 작품을 보여주니까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불러서 하는 말이 한국에서 ‘스페셜’(한국방송 <일요스페셜>을 말함)을 했다고 일본에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뒤도 안 돌아보고 짐 싸서 나왔어요. 그리고 일본 방송사 수만큼 복사본을 떴죠. 그 방송사를 제외하고 모든 방송사에 다 간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해서 처음 간 곳이 채널4, <니혼TV>였다. 그는 일부러 처음부터 까다로운 조건을 들이댔는데, 뜻밖에 모두 순순히 받아들였다. 황금시간대에 방영됐는데, 인기 드라마를 제치고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나는 전쟁 전문 피디가 아니에요. 총소리가 너무 무서운걸요.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사람이에요. 전쟁은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담을 수 있는 공간일 뿐이죠.”
그는 앞으로 오스트레일리아처럼 청정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 얘기, 그리고 장애를 극복하는 장애인들의 얘기를 다루고 싶다고 했다.
이재성 기자
firi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