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선생님 같은 정권은 사람들 머리 속에 파시즘의 구조물을 들어앉혀 놓았다. 식민시대가 만들어내고 군사정권이 계승한 파시즘 이데올로기의 파편들을 다 끄집어내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
지난 1월 말 중국의 윈난성(雲南省)을 여행했다. 이 여행에서 나는 리장(麗江)이라는 옛 도시에 매혹되었다. ‘리장구청’(麗江古城)이는 이곳은 나시족(納西族)이라는 소수민족이 13세기에 건설해 지금껏 살고 있는데, 해발 5590m 설산의 만년설에서 녹아내린 개울물로 겹겹의 수로를 만들고 그 수로를 따라 집을 짓고 길을 낸 철저한 계획도시다. 모든 길은 오랜 세월 사람들 발길에 반질반질 닳아버린 돌길이고, 집은 대개 나무나 돌로 지은 정갈한 2층 기와집들이며, 수로 옆으로는 고목들이 늘어서 있고, 도시 어디서나 석벽 사이로 맑은 물이 콸콸 흘러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도시 한가운데는 ‘쓰팡제’(四方街)라는 광장이 있는데, 모든 길들은 결국 여덟 갈래가 되어 이 광장으로 모이도록 돼 있다.
우리 유전자에 박힌 권위주의
내 호기심을 자극한 건, 도대체 나시족이 어떤 문화를 가졌기에, 또 당시의 권력이 어떠했기에, 그 전제왕정과 정복전쟁의 시대에 이런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 도시는 설계부터 수평적인 권력구조와 공동체적인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세운 앙코르와트는 전제군주의 위엄과 신에의 경배를 보여줄 뿐 사람살이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없다. 예컨대 리장구청에서 물은 집집마다 현관문 앞으로 흐르지만 앙코르와트에선 성 밖의 해자에 고여 있다.
결국 상상력의 문제다. 리장이라는 도시를 800년 세월을 넘어 지금도 아름답게 하는 그 상상력은 지금 우리 시대에는 어떤 것일까. 그것을 하나의 탈권위주의의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권위주의의 시대는 물러가는데, 그 그림자는 여전히 한국사회에 깊숙히 드리워 있다. 우리는 한동안 국민을 호되게 가르치는 정권 아래 살았고, 그 때문에 어떤 숙제들은 쾌속으로 풀어내기도 했다. 가령, 한국이 중국 이전까지는 가장 단시간 내에 국가 주도의 가족계획 정책에 성공한 사례로 꼽혔다는 것도 그렇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제한의 캐치프레이즈는 한때 일세를 풍미했다. 또 내가 보기에 지금 한국인의 교통질서 의식은 세계 최고다. 우리 세대는 “교통질서를 잘 지켜야 선진시민이 될 수 있다”는 훈시를 들으면서 어른이 됐다. 하지만 내가 20대 후반, 처음 파리에 갔을 때 사람들이 찻길을 무시로 건너다니는 걸 보고 어떤 배신감 같은 걸 맛보았다. 뉴욕도 마찬가지였다. 이 분야에서 미국이나 프랑스가 선진 한국을 따라오려면 멀었다. 하지만 무서운 선생님 같은 정권은 사람들 머리 속에 파시즘의 구조물을 들어앉혀 놓았다. 최근 나이 마흔쯤의 어떤 남자가 “한국 사람은 때려야 말을 듣는 게 문제”라고 말해서 나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식민시대가 만들어내고 군사정권이 계승한 파시즘 이데올로기의 파편들을 사람들 머리 속에서 다 끄집어내려면 얼마나 더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 이제, 우리 유전자 안에 박혀 있는 권위주의의 형질이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해볼 때가 됐다. 에리히 프롬이 분류한 권위주의적 성격의 특징이 참고가 될지 모른다. 권위주의 시대의 종결을 위하여 권위주의적 성격은 한마디로 권력에 대한 사도-마조히즘적 태도다. 즉, 이 세계는 힘을 가진 자와 갖지 않은 자로 나뉘며, 힘에 무조건 끌리는 한편 무력한 인간이나 제도에 대해서는 경멸과 공격의 충동이 생긴다. 지배와 복종만이 있을 뿐 평등이나 연대 개념은 없다. 권위주의적 성격은, 종교적인 것이든 제도적인 것이든 윤리적인 것이든 ‘숙명’에 복종하기를 좋아한다. 또 과거를 숭배하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는 믿지 않는다. 권위주의적 성격 가운데는, 권위에 도전하고 위로부터의 어떠한 영향에도 반감을 갖는 그런 유형도 있다. 이들은 권위와의 싸움에서 자존심을 얻고 무력감을 극복하지만 늘 더 강력한 권위에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들이 대개 급진주의에서 극단의 권위주의로 돌변하는 케이스들인데, 프롬은 이 유형에 ‘혁명가’ 대신 ‘반역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는 군사정권에서 문민정권, 국민의 정부를 거쳐왔다. 권위주의시대로부터 한 단계씩 진보의 발걸음을 옮겨왔다. 하지만 권위주의시대의 법제도적 구조물이 철거되는 건 시작일 뿐이다. 권위주의 인간형, 권위주의의 상상력에서 벗어날 때야 마침내 권위주의시대가 물러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희/ 소설가
권위주의의 시대는 물러가는데, 그 그림자는 여전히 한국사회에 깊숙히 드리워 있다. 우리는 한동안 국민을 호되게 가르치는 정권 아래 살았고, 그 때문에 어떤 숙제들은 쾌속으로 풀어내기도 했다. 가령, 한국이 중국 이전까지는 가장 단시간 내에 국가 주도의 가족계획 정책에 성공한 사례로 꼽혔다는 것도 그렇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제한의 캐치프레이즈는 한때 일세를 풍미했다. 또 내가 보기에 지금 한국인의 교통질서 의식은 세계 최고다. 우리 세대는 “교통질서를 잘 지켜야 선진시민이 될 수 있다”는 훈시를 들으면서 어른이 됐다. 하지만 내가 20대 후반, 처음 파리에 갔을 때 사람들이 찻길을 무시로 건너다니는 걸 보고 어떤 배신감 같은 걸 맛보았다. 뉴욕도 마찬가지였다. 이 분야에서 미국이나 프랑스가 선진 한국을 따라오려면 멀었다. 하지만 무서운 선생님 같은 정권은 사람들 머리 속에 파시즘의 구조물을 들어앉혀 놓았다. 최근 나이 마흔쯤의 어떤 남자가 “한국 사람은 때려야 말을 듣는 게 문제”라고 말해서 나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식민시대가 만들어내고 군사정권이 계승한 파시즘 이데올로기의 파편들을 사람들 머리 속에서 다 끄집어내려면 얼마나 더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 이제, 우리 유전자 안에 박혀 있는 권위주의의 형질이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해볼 때가 됐다. 에리히 프롬이 분류한 권위주의적 성격의 특징이 참고가 될지 모른다. 권위주의 시대의 종결을 위하여 권위주의적 성격은 한마디로 권력에 대한 사도-마조히즘적 태도다. 즉, 이 세계는 힘을 가진 자와 갖지 않은 자로 나뉘며, 힘에 무조건 끌리는 한편 무력한 인간이나 제도에 대해서는 경멸과 공격의 충동이 생긴다. 지배와 복종만이 있을 뿐 평등이나 연대 개념은 없다. 권위주의적 성격은, 종교적인 것이든 제도적인 것이든 윤리적인 것이든 ‘숙명’에 복종하기를 좋아한다. 또 과거를 숭배하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는 믿지 않는다. 권위주의적 성격 가운데는, 권위에 도전하고 위로부터의 어떠한 영향에도 반감을 갖는 그런 유형도 있다. 이들은 권위와의 싸움에서 자존심을 얻고 무력감을 극복하지만 늘 더 강력한 권위에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들이 대개 급진주의에서 극단의 권위주의로 돌변하는 케이스들인데, 프롬은 이 유형에 ‘혁명가’ 대신 ‘반역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는 군사정권에서 문민정권, 국민의 정부를 거쳐왔다. 권위주의시대로부터 한 단계씩 진보의 발걸음을 옮겨왔다. 하지만 권위주의시대의 법제도적 구조물이 철거되는 건 시작일 뿐이다. 권위주의 인간형, 권위주의의 상상력에서 벗어날 때야 마침내 권위주의시대가 물러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