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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예비군도 신념에 따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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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2-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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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이유로 동원훈련 거부하는 사람들… 향군법 위반자 선고연기 결정 나와 귀추 주목

“총의 무게는 제대 연차에 비례하고, 사격능력은 이에 반비례한다.” 예비군 훈련에 가본 사람은 대부분 인정하는 ‘법칙’이다. 어떤 이들은 아예 총의 쓰임새를 바꿔 깔고 앉거나 베고 자는 데 활용하기도 한다. 제대 7년차 예비역 병장 오동렬(30)씨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지난 1993년부터 1995년까지 강원도 고성군의 최전방 부대에서 박격포 사수로 군생활을 했다. 또 제대한 뒤에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예비군 동원훈련에도 충실히 나갔다. 그러나 지난 2000년 그의 삶의 방식이 바뀌었다. 그해에 그는 형의 권고로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됐다.

군복무 마친 뒤 신자가 된 오동렬씨


종교를 갖게 된 뒤 나온 첫 예비군 훈련통지서를 손에 쥔 2001년 3월 어느 날 오씨는 이른 새벽 훈련장을 찾았다. 예비군 동대장에게 “종교적 신념에 따라 총을 들 수 없기에 훈련에 참여할 수 없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7월쯤 10만원짜리 약식명령이 나왔습니다. 바로 벌금을 냈지요. 그런데 계속 훈련에 참가하지 않으니, 9월쯤에 또 벌금 50만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11월쯤에 100만원이 다시 나왔고요.”

두달에 한번꼴로 나오는 벌금은 평범한 월급쟁이가 부담하기에 버거운 액수였다. 정식재판을 시작한 지난해만도 모두 5차례에 걸쳐 500만원가량의 벌금고지서가 날아들었다. 그동안 오씨는 벌금을 내기 위해 새벽시간을 이용해 따로 부업까지 해야 했다.

“박격포까지 쐈던 사람이 왜 그러느냐. 잠깐 가서 훈련받으면 되지 않느냐.” 주변에서는 “쓸데없는 고생을 사서 한다”며 오씨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럴 때면 오씨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군복무를 했던 것처럼, 이제는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총을 들 수 없다”고 담담히 말했다.

사진/ 최전방 부대 박격포병으로 근무했던 오동렬(왼쪽 맨앞). 예비군 7년차가 된 그는 이제 종교적 신념에 따라 총을 들 수 없다고 말한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힘을 얻어가고 있지만, 아직 예비군들의 집총 거부 문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정운영 사단법인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 홍보부 대표는 “군복무를 마친 뒤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된 이들은 대부분 오씨처럼 향토예비군법 위반자가 돼 쌓여가는 벌금으로 생활고에 허덕이거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는 이들도 상당한 숫자”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 1996년 10월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한 뒤 1998년 신자가 된 김아무개(29)씨는 향군법 위반으로 두 차례 실형을 선고받아 모두 1년8개월을 복역하기도 했다.

정 대표는 “병역법을 보면 1년6개월 이상의 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은 제2국민역에 편입되게 돼 있는데도, 김씨는 1년과 8개월 등 두 차례로 나눠 형이 선고됐기 때문에 제외대상이 아니라는 병무청의 유권해석이 나왔다. 이 때문에 실형을 마친 뒤 다시 예비군 훈련 통지서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벌금에 생활고 겪어… 실형 선고받기도

오씨는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다. 지난 2월5일 경남 창원지방법원 제1형사부(최윤성 부장판사)는 오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헌법재판소에서 병역법 88조의 위헌 여부를 가릴 때까지 선고를 연기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1월 서울지법 남부지원 박시환 부장판사가 “대체복무 기회를 주지 않는 병역법 88조가 헌법의 기본권 침해소지가 있다”며 낸 위헌법률 심판제청 신청이 받아들여진 뒤 일부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선고연기 결정이 내려진 적은 있었다. 그러나 향토예비군법 위반자에게까지 선고연기 결정이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씨는 “어떤 사람은 양심에 따라 총을 들었고, 나는 양심에 따라 총을 들지 않았다. 독거노인이나 치매병원 등에서 대체복무하는 것도 우리 사회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비군 훈련보다 훨씬 긴 시간을 대체복무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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