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색내기용 특별전형에 그친 서울대 관악 캠퍼스… 불편한 이동·획일적 평가 등에 눈물 삼키는 학생들
서울대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어 ‘관악’으로도 불린다. 관악‘가는’ 길에 장애는 없다. 서울대가 지난해부터 장애인 특별전형을 실시하고 있고, 일반전형에서도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악‘다니는’ 길에는 장애가 있다.
지난해 1월 말 서울대는 처음으로 장애인 특별전형을 통해 8명의 신입생을 뽑았다. 언론에서는 서울대에 입학한 장애학생들의 눈물겨운 노력과 “몸이 불편한 것과 학업능력이 상관없다는 것을 꼭 보여주겠다”는 합격소감 등을 다투어 보도했다. 한 일간신문은 ‘관악가는 길에는 장애는 없다-서울대 특별전형 장애인 8명 합격’이란 기사를 싣기도 했다.
장애인 8명 합격, 그 미담이 서글픈 까닭
뇌성마비 장애인 이아무개씨는 지난해 1월30일 서울대 대학본부 3층 기자실에서 신입생 기자회견을 했다. 당시 이씨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좋은 친구도 많이 만나고 싶다”고 맑진 소감을 밝혔다. 이씨는 꼭 1년 뒤인 지난달 30일 다시 서울대 대학본부 기자실로 찾아갔다. 이날 아침신문들에 실린 기사 때문이었다. 대부분 1월30일치 아침신문들은 ‘두 다리 잃은 50대 장애인 서울대 법대 합격’이란 기사를 크게 실었다. 지난해 이씨의 인터뷰 기사와 대동소이한 내용이었다. 이날 이씨는 기자들에게 장애인이 입학 뒤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지 점검하지 않은 채 미담성 기사만 싣는 것을 항의했다. 이씨를 비롯한 장애인 재학생들은 ‘서울대 장애인 정책은 수험생과 학부모, 국민을 속이고 있다’는 반응이다. 이미 서울대에 입학한 장애인들이 배부른 투정을 하거나 야기부리는 것일까. 이들은 “1년 동안 학교에 다녀보니 학교 당국은 장애인들이 공부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을 외면하고 있다. 특히 겨울방학 동안 부족한 장애인 편의시설 확충 등은 소홀히 한 채 늦깎이 장애인 신입생 미담사례를 홍보하는 학교당국의 태도가 너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공개적으로 문제제기 하기를 꺼린다. 취재 과정에서도 학생들은 실명을 밝히길 원치 않았다. 학교에 잘못 보이면 그나마 받는 장학금 혜택이 끊기고, 교수나 동료 학생들 사이에 학교 망신이나 시키는 불평불만분자로 찍히면 사실상 학교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 신입생들은 서울대에서도 입학하자마자 차가운 현실에 부딪힌다. 팔다리가 불편한 한 학생이 겪은 일이다. “개강 첫주인 지난해 3월 초였다. 중·고등학교 때는 한 교실에서 쭉 수업을 받았지만 대학에서는 강의실을 옮겨다녀야 했다. 그런데 입학할 때부터 학교가 넓어서 다닐 일이 걱정이었다. 학생회관에서 점심을 먹은 뒤 1km가량 떨어진 건물에서 강의가 있어 순환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사람들이 꽉꽉 차서 버스를 탈 엄두가 나지 않아 5대나 그냥 보냈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허겁지겁 타고 갔다.” 관악산 자락에 널찍하게 자리잡은 서울대는 굴곡이 많고 건물 사이가 멀다. 대학본부는 장애인 학생들에게 강의실 배정이나 수강신청 과목 선택 등에서 거의 배려를 하지 않았다. 다른 한 장애인 학생은 “다른 학생과 마찬가지로 커리큘럼(교육과정)에 있는 대로 수업을 들으면 다음 수업이 있는 건물로 이동하는 게 불가능했다. 학교에 이런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했다.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하도 힘들어하니까 수업이 바로 이어지는 과목이 있을 경우는 한 교수님이 이동할 때 도움을 줬다. 중앙도서관 옆 계단은 폭이 좁고 가파른데다 난간도 없어 내려올 때는 거의 바닥에 붙어 내려와야 했다.” 멀고 먼 강의실…비장애인을 따르라
지난해 4월 기준으로 서울대 관악캠퍼스 건물 중 승강기가 설치된 곳은 186개동 가운데 45개동뿐이다. 장애인 학생들은 “강의시간에 수업 듣는 시간보다 이 건물 저 건물로 옮겨다니는 시간이 더 걸릴 때도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부푼 꿈을 안고 서울대에 입학한 20살 안팎의 장애인 학생이 뭇사람들 속에서 학교 계단이나 경사로 바닥을 기다시피하면서 이 건물 저 건물로 옮겨다녀야 했던 것이다. 몸이 힘든 것도 그렇지만 이들이 느꼈을 인격적 모멸감도 상당했을 것이다.
이들이 힘들게 강의실을 찾아가도 강의 듣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뇌성마비로 강의 내용 필기가 어려운 한 학생의 이야기다. “사정을 말씀드리고 교수님께 강의 자료를 요청했다. 1학기 때는 자료를 받았는데 2학기 때는 문제가 좀 생겼다. 하루는 조교가 “같이 수업 듣는 학생들이 ‘왜 저 학생에게만 강의 자료를 주느냐’고 항의한다고 말했다. 교수님 처지에서는 다른 학생들 의견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2학기 때는 강의를 그냥 듣기만 했다.” 그는 시험을 앞두고 친구들에게 노트를 빌리기도 했지만, 모든 과목 노트를 시험 때마다 빌리기는 힘들었다.
뇌성마비 장애인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청각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은 제대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채 강의실에 멀뚱멀뚱 앉아 있어야 한다. 강의에 들어가고도 과제 제출 지시가 있었는지 몰라 D학점을 받은 학생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청각장애인 학생은 입모양을 읽어 가까이에 있는 사람과 일상적 대화는 어느정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강의실 앞자리에 앉아야 하지만 학교당국은 지정석 마련 같은 조처를 해주지 않았다. 게다가 입모양만으로는 강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기가 어려워 대책을 호소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결국 이 학생은 외부 사회단체에서 수업을 보조해줄 수 있는 자원봉사자를 소개받아 1과목에 한하여 한 학기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강의 내용을 받아적는 대필은 대학 강의 내용을 이해해야 하는데다 쉴 새 없이 받아적어야 하기 때문에 노동강도도 만만찮았다. 강의 대필 서비스는 자원봉사 차원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에 대해 서울대는 새 학기부터 한달에 12만원을 지급하는 봉사근로장학생 30명을 모집해 학습보조요원으로 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방안에 따르면 47명에 이르는 장애인 학생은 1인당 1~2과목만 대필요원을 이용할 수 있다. 서울대 학생들은 대개 1학기에 6~7과목을 듣는다. 과외를 하면 한달에 40만원가량 벌 수 있는 서울대 학생들이 12만원의 돈을 받고 노동강도가 센 대필 서비스를 자원할지도 의문이다.
장애인 재학생들은 강의뿐만 아니라 시험 등 평가방식도 문제를 제기한다.
“외국에서는 장애인 학생들에게 맞는 평가방식을 따로 개발한다. 점자 시험지나 크게 인쇄된 시험지를 따로 준비하고, 필기가 힘든 장애인에게는 구술시험으로 대체한다. 집에서 시험 보는 것을 허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이런 수준까지 기대하진 않지만 너무 배려나 관심이 없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은 답안지를 쓰는 데 비장애인보다 휠씬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교수에게 시험시간이라도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싶었지만 분위기상 그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명성에 걸맞는 장애인 교육환경을…
장애인 학생들에겐 밥먹는 것도 큰일이다. 한 학생은 “점심 때 밥을 먹으려면 다른 친구들과 같이 먹어야 한다. 혼자 배식판을 들고 밥과 반찬을 탈 수 없는 형편이다. 친구가 없으면 굶거나 빵이나 김밥으로 사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형수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연구원은 “서울대는 장애학생들의 요구를 개별적으로 수렴하는 차원에서 이런저런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정작 원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 장애인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존중이다. 다른 학생처럼 학생으로서 존중받으며 공부하고 싶다는 것이다. 서울대가 장애인 문제를 은혜를 베푼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장애인의 고등교육 차별은 사람의 장애가 아니라 장애인의 교육환경을 갖추지 못한 대학의 장애가 그 원인이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방기황
뇌성마비 장애인 이아무개씨는 지난해 1월30일 서울대 대학본부 3층 기자실에서 신입생 기자회견을 했다. 당시 이씨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좋은 친구도 많이 만나고 싶다”고 맑진 소감을 밝혔다. 이씨는 꼭 1년 뒤인 지난달 30일 다시 서울대 대학본부 기자실로 찾아갔다. 이날 아침신문들에 실린 기사 때문이었다. 대부분 1월30일치 아침신문들은 ‘두 다리 잃은 50대 장애인 서울대 법대 합격’이란 기사를 크게 실었다. 지난해 이씨의 인터뷰 기사와 대동소이한 내용이었다. 이날 이씨는 기자들에게 장애인이 입학 뒤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지 점검하지 않은 채 미담성 기사만 싣는 것을 항의했다. 이씨를 비롯한 장애인 재학생들은 ‘서울대 장애인 정책은 수험생과 학부모, 국민을 속이고 있다’는 반응이다. 이미 서울대에 입학한 장애인들이 배부른 투정을 하거나 야기부리는 것일까. 이들은 “1년 동안 학교에 다녀보니 학교 당국은 장애인들이 공부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을 외면하고 있다. 특히 겨울방학 동안 부족한 장애인 편의시설 확충 등은 소홀히 한 채 늦깎이 장애인 신입생 미담사례를 홍보하는 학교당국의 태도가 너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공개적으로 문제제기 하기를 꺼린다. 취재 과정에서도 학생들은 실명을 밝히길 원치 않았다. 학교에 잘못 보이면 그나마 받는 장학금 혜택이 끊기고, 교수나 동료 학생들 사이에 학교 망신이나 시키는 불평불만분자로 찍히면 사실상 학교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 신입생들은 서울대에서도 입학하자마자 차가운 현실에 부딪힌다. 팔다리가 불편한 한 학생이 겪은 일이다. “개강 첫주인 지난해 3월 초였다. 중·고등학교 때는 한 교실에서 쭉 수업을 받았지만 대학에서는 강의실을 옮겨다녀야 했다. 그런데 입학할 때부터 학교가 넓어서 다닐 일이 걱정이었다. 학생회관에서 점심을 먹은 뒤 1km가량 떨어진 건물에서 강의가 있어 순환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사람들이 꽉꽉 차서 버스를 탈 엄두가 나지 않아 5대나 그냥 보냈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허겁지겁 타고 갔다.” 관악산 자락에 널찍하게 자리잡은 서울대는 굴곡이 많고 건물 사이가 멀다. 대학본부는 장애인 학생들에게 강의실 배정이나 수강신청 과목 선택 등에서 거의 배려를 하지 않았다. 다른 한 장애인 학생은 “다른 학생과 마찬가지로 커리큘럼(교육과정)에 있는 대로 수업을 들으면 다음 수업이 있는 건물로 이동하는 게 불가능했다. 학교에 이런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했다.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하도 힘들어하니까 수업이 바로 이어지는 과목이 있을 경우는 한 교수님이 이동할 때 도움을 줬다. 중앙도서관 옆 계단은 폭이 좁고 가파른데다 난간도 없어 내려올 때는 거의 바닥에 붙어 내려와야 했다.” 멀고 먼 강의실…비장애인을 따르라

사진/ 관악산 기슭에 자리잡은 서울대에서 장애인들이 옮겨다니며 강의를 듣는 것은 ‘고난의 행군’이다. (강재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