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폐지 경험 함께 나눠요”
등록 : 2003-02-12 00:00 수정 :
영국과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 체포 작전을 벌이고 있던 2001년 12월9일, 제프 훈 영국 국방장관은 “영국군이 빈 라덴을 붙잡으면 미국에 넘기겠지만 미국이 그에게 사형집행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경우에만 인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사형제가 실시되는 다른 나라에 용의자를 인도할 경우 사형을 집행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있을 때에 한해 용의자들을 인도하도록 규정한 유럽인권협약의 서명국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월3~8일 한국을 찾은 국제사형폐지연맹위원회
피터 호지킨슨 영국 대표는 6일 강연회에서 “1965년 사형선고를 심사가 가능한 무기형으로 바꾼 영국이 사형제도 폐지의 모범적 모델은 아니다”고 말했다. 사형제 폐지 시기를 놓고 보면 유럽 나라 가운데서 영국은 꼴찌에 가까운 편이란 설명이다. 그는 영국의 ‘머뭇거린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사형제 폐지 경험을 한국과 나누기 위해 방한했다고 밝혔다.
그는 가끔 사형제도 폐지론자들이 인명보호에 대한 시민들의 자연스러운 걱정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거나,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높은 위치에 두거나, 사형 반대론자들만 참석하는 집회나 학술 세미나를 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그는 “사형 반대론자들이 살인 범죄 피해자들이나 가족들의 권익을 비중 있게 다루어야 한다. 이를 통해 살인 희생자와 가족들도 품에 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한국은 사형 폐지가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반론에 대해 “사형제도 폐지론자들이 무조건 사형제를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국민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고, 대체 형벌, 사형제도 찬성론자 설득법에 대한 연구활동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형제가 옳지 않다’는 주장에 그칠 게 아니라 사형제를 폐지한 외국의 경험과 구체적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사형이 흉악 범죄를 예방한다’는 주장을 반박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