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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대안 배움터 ‘도심 연착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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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1-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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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지옥에 숨통 트려는 이유교육공동체… 9월 개교 앞두고 열린 겨울캠프 현장에 가다

사진/ “경쟁없는 교육이 참교육”이라고 말하는 정광필 이우교육공동체 대표. 그는 도시형 대안학교의 전국화를 기대하고 있다.
“아이들은 그대를 거쳐서 왔을 뿐 그대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또 그들이 그대와 함께 있을지라도 그대의 소유가 아닌 것을….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으나 그대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는 말라.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생각이 있으므로….”(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중에서)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발이 조금씩 굵어지면서, 어느새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갔다. 1월22일 눈밭을 헤치고 찾아간 강원 원주시 치악산 자락의 자연학습원에서는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가 잔잔히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우교육공동체(www.2woo.co.kr)가 마련한 겨울캠프가 열리는 이곳에서는 예비중·고등학생 55명과 교사 14명이 모여 ‘예비학교’가 한창이었다.

예비학교 교실에서 펼쳐지는 이색풍경


사진/ ‘소곤소곤, 도란도란’이우학교의 수업은 학생이 진행하고 학생이 참여한다. 교사는 매끄러운 수업진행을 위한 도우미 구실을 할 뿐이다.
첫 시간 수업이 끝난 뒤 눈싸움을 벌이며 뛰노는 예비중학생 21명을 따라 강당으로 들어섰다. 철학담당 이현영 교사가 수업을 시작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친구들과 입씨름하느라 정신이 없다. “점심시간 뒤에 축구하자”, “아니, 눈싸움 승부부터 내자”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이번 시간은 ‘몸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철학공부를 합니다. 살아가면서 한번쯤 생각해보는 문제를 배우는 게 철학이에요.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시간이죠. 모둠별로 사회자 먼저 정하고요, 사회자는 발표자를 뽑으세요.” 7명씩 3모둠으로 모여앉은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곁에 앉은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얘기꽃을 피운다. 토론 주제는 ‘살빼기 열풍’이다.

“연예인처럼 예쁘게 보이고 싶은 건 예쁜 사람의 기준이 연예인이기 때문이야. 다 연예인 탓이야.” 사회자도 뽑기 전에 미리부터 과제를 풀어나가는 친구에게 “굳이 연예인만 탓할 건 못 된다고 생각해. 괜히 남의 눈길을 의식하기 때문이지”라고 딴지를 걸어보기도 한다. 아직 발표 수업이 익숙지 않기 때문인지 서로에게 사회자를 하라고 떠밀더니, 이내 “네가 해라, 내가 하리” 발표자로 나서기를 꺼린다.

“살을 빼서라도 아름다워지려는 건 무조건 예쁜 여자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국어책을 읽듯 조금은 긴장한 목소리로 1모둠 박형근(12)군이 먼저 발표에 나섰다. “모델이나 텔런트 등 연예인이 모두 마른 여자고, 그것이 미의 기준이 됐기 때문에 살을 빼려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3모둠 이윤수(12)군은 제법 다이어트 열풍에 대한 대책까지 내놓는다. “살빼는 데 의사 허가를 받게 하면 좋겠습니다. 비만이 아닌 사람은 살을 빼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헛웃음이 나올 법도 한데 수업 진행을 맡은 교사는 사뭇 진지한 표정이다. 아이들의 말을 하나하나 빼곡이 칠판에 적어놓았다.

“오는 9월 개교를 하면, 이우학교 교실에서 이런 식으로 수업을 할 계획입니다. 이번 캠프는 하나의 예행연습인 셈이죠.” 이우학교 정광필 상임대표는 “수업진행과 참여 모두 아이들이 스스로 해나가는 게 이우학교식 교육방법이다. 교사는 그저 곁에서 원활한 수업 진행을 위한 도우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5년여의 준비기간… 각계인사들 참여

이우학교는 1997년 11월 교육운동가들이 중심이 돼 “도심 속에 대안학교를 세우자”는 뜻을 모으면서 시작됐다. 간디학교(경남 산청)·푸른꿈고교(전북 무주)·한빛고교(전남 담양) 등 기존 대안학교 11곳은 모두 농촌에 자리잡고 있는데 굳이 도심에 학교를 세우려는 까닭이 궁금했다. “대다수 학생이 도시에 있기 때문이죠.” 개교 뒤 국어과목을 맡을 이광호 이우학교 사무국장은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는 절대다수 중고생이 변하지 않는 한 우리 교육현실은 몇몇 성과조차 ‘고립된 섬’으로 남게 된다. 이우학교를 시작으로 각 지방도시 주변에 도시형 대안학교가 들어서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8년 4월부터 수도권 지역에 부지를 찾아나섰고, 2001년 1월에는 ‘내일을 여는 학교 준비 모임’을 결성하면서 도심 속 대안학교 설립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학교 이름도 이때 지었다. 각 학생들의 개성과 인격을 존중하며, 서로 경쟁이 아닌 협력관계를 이루겠다는 다짐의 뜻으로 붙여진 이우(以友)란 이름은 신영복 성공회대 사회교육원장이 “천지만물을 벗삼는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며 지어줬다. 지난해 5월 경기교육청에서 학교설립 계획을 승인받으면서 결성된 학교법인에는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과 채규철 두밀리 자연학교 교장, 강지원 전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 이세용 전국학부모연대 부대표 등 각계인사 87명이 참여했다.

“현재 우리 교육은 극단적 경쟁논리로 인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더불어 사는 삶으로 경쟁을 극복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교육이다. 경쟁논리가 가장 극명히 서 있다. 이런 교육현실을 바꾸는 것이 우리 사회를 바꾸는 길이다.” 정 대표가 전하는 이우학교의 설립취지다. 그는 “이를 위해선 수업방식에서부터 차별을 둬야 한다. 입시를 위해서는 잘 정리된 내용을 전해주고, 이를 숙달하면 그만이지만, 이우학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 스스로 답을 찾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급의 규모도 교사가 학생 개개인을 충분히 배려할 수 있도록 20명으로 정했다. 3년 연속 담임제를 실시하기로 한 것도 같은 이유다.

학생의 흥미·적성·진로 등을 고려해 학생과 교사가 긴밀히 협의해 개인별 교육과정을 짤 계획이다. 개성이 다른 학생들에게 국화빵 찍듯 똑같은 교육과정을 적용하는 건 창의력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21세기에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국어·사회·과학·철학·예술 과목은 분기별로 ‘주제’를 정해 집중식 수업을 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여러 과목을 동시에 학습하는 부담을 덜고, 해당 과목을 깊이 있게 학습할 수 있다”고 전했다. 세미나식 수업도 도입해 학생들이 개인이나 모둠 단위로 연구하고 그 결과를 발표·토론하는 방식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교사는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학생들의 탐구과정을 적절히 안내·조언·평가하는 ‘길잡이나 촉매자’ 역할을 해야 학생들이 수업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학생 개인에 적합한 교육과정 마련

이를 위해 이미 각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교사들이 모여들었다. 경남 간디학교 교감을 거쳐 서울대 입학처 자문위원을 지낸 최영준 교사(과학)부터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피터 양 교사(영어), 방송사 교양제작실에서 기획피디로 일하다 미술교사를 맡은 노길상 교사(미술)와 원주지역 생활협동조합 상무이사로 일하던 김용우 교사(생태·NGO)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이우교육공동체의 목표가 그저 바람직한 중등교육 차원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교육기관에서 출발해 삶의 공동체로 발돋움하는 것이 이들의 궁극적 목표다. 정 대표는 “학교를 시작으로 생활협동조합과 방과후 프로그램 등 인근지역 청소년과 성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실시할 계획이다. 아울러 생활협동조합, 생태적 주거단지, 의료생협, 신용협동조합운동을 활발하게 벌여 성남지역에 공동체 문화를 널리 확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런 소망을 담아 지난해 12월22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동원동 산 13-1에서 학교 건축을 위한 첫 삽을 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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