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행복에 대해 생각하면서 스스로 내린 결론은 비디오 테이프를 되감지 말자, 곧 지금 행복하자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요즘 아침에 자는 아이 깨울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볼을 살짝 때리고 꼬집고, ‘안 일어날 거야’ 하면서 한판 레슬링을 하는 시간입니다. 임레 케르테스는 자전적 소설 <운명>에서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도 행복, 희망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행복한 사회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행복은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입니다. 많이 웃고, 사회적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행복지수를 높이는 길이겠지요.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홍세화 지음)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사회적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방편으로 공감합니다. “사회 안에는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직업의 사람들이 있고,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마지못해 소외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소외노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 사회는 자아실현과 생존의 양면에서 불평등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배려해야 마땅하다.” 새 정부가 좌든 우든 이런 쪽으로 가까이 간다면 웃을 일이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독자 여러분, 지금 그리고 올 한해 많이 웃고 행복하십시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