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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행복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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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1-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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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새해 특집으로 ‘행복’을 얘기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그러던 것이 정치기사에 밀렸다가 설 기획회의에서 부활했습니다.

한달을 끌어온 기자들은 정작 행복이란 바람 같고 햇살 같아 언어의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행복이 웃음이고, 웃으면 복이 오고, 따라서 ‘많이 웃자’라는 조금은 동어반복적인 기획이 표지이야기가 됐습니다.

팍팍한 삶에 한가해보이지만, 부대효과가 있습니다. 웃음과 행복을 얘기하는 회의시간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나의 행복이 무엇인가 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원더풀 라이프>라는 일본영화에서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은 저 세상으로 가기 전에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골라 그 기억만을 갖고 영원의 시간 속으로 사라집니다.

행복의 기억은 사람에 따라 다양합니다.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뒤 처음 먹은 주먹밥의 맛, 6살 때 빨간 드레스를 입고 춤추던 순간, 유곽 여성과의 한때, 귀지를 파주는 동안 베고 누운 엄마의 무릎 감촉….

그 가운데는 자신의 삶이 녹화된 비디오 테이프를 돌리고 돌려보지만 행복한 순간이라고 할 만한 것을 찾지 못해 오도가도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모든 기억은 잊고 일생 동안 가장 행복했던 한 순간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기억을 택할 것인가”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행복에 대해 생각하면서 스스로 내린 결론은 비디오 테이프를 되감지 말자, 곧 지금 행복하자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요즘 아침에 자는 아이 깨울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볼을 살짝 때리고 꼬집고, ‘안 일어날 거야’ 하면서 한판 레슬링을 하는 시간입니다.

임레 케르테스는 자전적 소설 <운명>에서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도 행복, 희망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행복한 사회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행복은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입니다. 많이 웃고, 사회적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행복지수를 높이는 길이겠지요.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홍세화 지음)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사회적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방편으로 공감합니다.

“사회 안에는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직업의 사람들이 있고,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마지못해 소외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소외노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 사회는 자아실현과 생존의 양면에서 불평등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배려해야 마땅하다.”

새 정부가 좌든 우든 이런 쪽으로 가까이 간다면 웃을 일이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독자 여러분, 지금 그리고 올 한해 많이 웃고 행복하십시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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