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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슬픈 한국인 “전쟁 못 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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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1-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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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국방장관의 ‘전쟁 불가피’ 발언 속사정… 미국의 단독 대북 선제공격 상황에 속수무책

사진/ 지난해 12월 미 워싱컨의 국방부에서 열린 제34차 한-미 연례안보회의(SCM)를 마친 뒤 두 나라 국방장관이 합동기자회견을 하고있다. (연합)
이준 국방장관이 1월16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이 안 돼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한반도에서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본다”는 발언을 하자 나라 안팎에서 논란이 일었다. 이 장관은 “일부 젊은층에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더라도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는 질문에 이같이 답변했다.

답변 내용이 알려지자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신문들은 17일 이 장관의 발언을 ‘서울 전쟁 대비’ 등의 제목으로 보도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들도 20일 서울 국방부 앞에서 “이 장관의 발언은 망언”이라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남한의 동의 없는 전쟁 얼마든지 가능


사진/ 한반도는 언제까지 전쟁에 떨어야 하나. 지난 1월 8일 평양주민들이 군중대회를 열어 신년공동사설 관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이준 장관의 ‘전쟁 불가피’ 발언은 북핵 문제로 예민한 한반도 정세와 각종 남북 대화를 앞둔 시점에서 부적절한 발언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한-미 동맹이란 안보 현실의 구조를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일부 평화운동가들은 “이준 장관의 발언도 문제지만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 안보가 터잡고 있는 한-미 연합방위체제를 세밀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북한 핵문제가 불거졌던 94년과 98년, 지난해와 올 초 미국의 북한 선제공격 가능성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북한도 여러 차례 불안감을 드러냈다. 김일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은 2000년 9월 제주도에서 열린 제1차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남북 간 군사적 신뢰구축이 이뤄져야 한다”는 조성태 당시 국방장관의 주장에 “남과 북이 신뢰를 구축한다고 해서 뭐하느냐. 미국이 있지 않느냐. 미국이 남한을 젖혀두고 단독으로 우리를 공격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당시 조 장관은 “미국은 (사전협의 등 없이) 남한을 배제하고는 절대로 단독으로 북한을 공격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역대 국방장관 등도 미국의 단독 대북 선제공격의 가능성이 나올 때마다 국회 답변 등을 통해 국민에게 이렇게 설명해왔다.

이에 대한 미국의 주장은 이렇다. 백악관은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2월 한국을 방문한 이후 미국이 북한에 선제공격을 단행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일관되게 밝혔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23일 “존 볼튼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의 강경발언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나 영변에 대한 선제공격 방안을 일단 포기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말만 그대로 믿고 ‘미국의 단독 대북 선제공격은 불가능하다’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미국의 발언을 면밀하게 뜯어보면, 미국은 일관되게 북한을 선제공격할 ‘의도’가 없거나 ‘포기’했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미국이 마음만 바꾸면 언제든지 대북 선제공격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남쪽 사람들은 “미국이 남한의 동의 없이 대북 선제공격이 가능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아예 관심이 없거나, “그래도 우리가 반대하면 불가능할 것”이란 희망섞인 기대를 한다. 과연 그럴까

우리의 운명이 미국의 선택에 달려 있다

출처: 조남풍, ‘한·미 군사안보동맹체제에 관한 연구: 구조변화와 발전방안 모색’,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선례’과 ‘한-미 동맹의 구체적 현실’이란 두 측면을 살펴보자. 94년 6월 미국은 북한과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다. 당시 미국은 북한 영변 핵시설에 대해 공중폭격 등 무력제재를 준비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박관용 국회의장은 <월간조선> 올 2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뒤늦게 낌새를 안 김영삼 대통령이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절대 전쟁은 안 된다’고 강하게 항의했다. 클린턴 대통령이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해 전쟁에 대비한 병력 증파를 논의하는데 우리는 그걸 까맣게 몰랐다. (‘전쟁을 치르려면 한-미 연합사 차원의 대비도 필요했을 텐데’란 기자 질문에) 군사 행동을 하기 직전에는 알려줬겠지. 98년 9월 워싱턴에 갔다가 94년 당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멤버였던 대니얼 포네먼 핵비확산 담당 특별보좌관으로부터 엄청난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미국은 한국에 대한 통고, 군사력 결집, 한국주재 미국인 피난 등의 사전조처들이 북한에 사전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해 바로 공격을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경악을 넘어서 ‘우리의 운명이 이렇게 결정되고 있었구나’ 하는 허탈감을 느꼈다.”

이 인터뷰에서 박 의장은 “가정이지만 미국이 군사행동 개시를 한국에 통보했으면 우리 정부는 어떻게 했을까”란 기자의 질문에 대해 “전쟁 못한다고 펄펄 뛰는 거지 무슨 수가 있겠는가. 실제 김영삼 대통령이 그랬고”라고 대답했다. 국가안보와 관련해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경악을 넘어 허탈감을 느꼈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관련 소식통들에 따르면 미국은 대북 선제공격 때 핵의혹 시설과 휴전선 근처 지하 요새에 배치된 사정거리 50km가 넘는 장거리 포대를 동시에 파괴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당 5만발의 포탄을 수도권에 쏟아부을 수 있는 1만3천여문의 북한 포대를 무력화시키지 않고 선제공격에 나설 경우, 반격에 나선 북한군에 의해 남한 민간인과 한-미 연합군이 엄청난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한 군사소식통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른 뒤 미 국방부 무기 전문가들은 레이저로 정밀 유도되는 지하시설 파괴 무기가 지하에 있는 북한 핵의혹 시설이나 휴전선 근처 장거리 포대를 거의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대북 선제공격에 나서면 미 제7함대 소속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함재기들과 미 순양함과 구축함에서 발사된 토마호크 미사일 등이 북한의 핵의혹 시설과 군사지휘·통신시설 등을 공격할 것으로 보인다. 또 경기 오산에 있는 미 7공군 기지와 일본 미 공군 기지에서도 폭격기와 전폭기가 출격해 북한군 지하기지 등을 폭격할 것이다.

상식적으로 미국과 한국의 공군기를 동원해 북한 공습을 하려면 사전에 한국과 미국 대통령이 합의해야 한다. 북한 선제공격을 위해서는 양국의 국가통수 및 군사지휘기구가 한-미 연합사의 상급기관인 군사위원회(MC)를 통해 연합사에 작전지침과 전략지시를 하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한 미군 주력부대는 연합사 밖에 놓여

그러나 현행 한-미 연합사 작전지휘체제에서 평시 연합사령관이 작전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전력을 대부분 한국군 전력이다. 대부분의 주한미군은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평시 한미연합사 작전 통제를 받지 않는다.장영달 의원이 2001년 9월 펴낸 <21세기 한-미 군사동맹체제의 발전방향과 정책과제>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주한 미 지상군 전력인 미 제2사단은 한-미 연합사의 작전통제권 관할 밖에 있다. 평시 주한미군은 미 태평양사령부의 작전통제를 받으며, 태평양사령부는 미 합참의 전략지시를 받는다. 대북 선제공격 때 핵심 구실을 하는 공군 역시 마찬가지다. 장영달 의원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 오산 등에 기지를 둔 미 제7공군 등 주한 미 공군은 하와이에 있는 미 태평양공군사령부의 작전통제하에 있다. 한-미 연합사령관의 작전통제하에 있는 미 공군전력은 미 육군 방공포 부대와 고공정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비상대기하고 있는 2대의 F-15 전투기뿐이다. 한-미 연합사 해군에는 아예 미국쪽 실 전투병력은 소속되어 있지 않다.

다시 말해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에 동원될 주한미군 대부분과 한반도 주변 미군 전력은 한-미 연합사의 작전통제 밖에 있다. 미국 국가통수기구와 군지휘기구의 작전통제에 따라 미군들이 대북 선제공격에 나설 경우 한국 대통령은 ‘전쟁 못한다고 펄펄 뛰는 수밖에 없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한반도에서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본다”는 이준 국방 장관의 발언은 부적절했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볼 만한 대목이 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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