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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여성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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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1-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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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은 왜 축구판처럼 남자들만 북적대는가. 전체 유권자의 절반인 여성들이 참정권을 허비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지만 투표를 할 수 있으려면 먼저 후보부터 만들어놓아야 한다.

지난해 봄 최보은씨가 “박근혜를 사유하자”고 했을 때, 그가 곧 돌팔매 속에서 순교하리라는 걸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진보적인 남자후보만 찍으면 그가 여성문제를 다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게 과연 옳은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하는 문제제기는 그 당시에 다소 낯설었고 여성단체들조차 불편해했다. 하지만 재미있는 현상은, 최씨가 온라인 공간에서 무차별 공격을 당한 그 시점부터 벌써 여성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논의가 부쩍 잦아지기 시작했고, ‘여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투표하기’가 여자들 사이에서 인기 토픽이 됐다는 점이다.

고은광숙에 대하여

그 직후 지자체 선거에서 나도 처음으로 ‘여성 입장에서 누굴 찍을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시장뿐 아니라 구청장·시의원·구의원까지, 동작구 선거벽보에 여자가 단 한명도 없었는데, 여성후보가 없다는 걸 새삼 발견한 것도, 이거 뭔가 크게 잘못 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실은 처음이었다.

요즘 여성문제를 좀 생각한다는 여자들이 모이면 “누구를 정치로 내보내야 하는가” 하는 얘기를 하게 된다. 여성의 정치참여 현실이 형편무인지경인 것은 우리 자신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거나 나태했기 때문이라는 반성도 많이들 한다. 지난 대선에서 여성계가 국회와 지방의회의 후보공천, 그리고 비례대표에서 30% 내지 50%의 여성할당을 요구하기도 했고, 대통령 후보들도 이런 요구들을 우호적으로 받아들이는 공약을 경쟁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투수가 아무리 좋은 공을 던져도 타자가 있어야 홈런을 날릴 것 아닌가.


지난해의 마지막 날 저녁, 열명쯤의 여성들이 모여서 이런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모임 하나를 만들었다. 이름하여, ‘고은 사람들’. 고은광순을 정치인 만들자는 것이 모임의 목적이다. 그는 이미 개혁국민정당에서 회원들의 상향식 공천으로 서초갑 위원장이 되었으니, 우리가 할 일은 그가 내년 총선에서 당선되도록 각기 최선을 다해 지원하는 것이다.

그는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다니다가 두번씩 제적당하고 한의학과로 다시 대학을 들어가서 지금은 강남에서 한의원을 개업한 사람이다. 아들 낳는 처방을 받으러 한의원에 오는 사람들을 허구한 날 상대하다가 호주제 문제의 심각성을 발견한 그는 호주제폐지운동에 시동을 걸었고, 대표적인 이론가이자 활동가로서 이 운동을 주도했다. 부모 성을 따서 두자 성 쓰기 운동을 시작한 당사자도 그다.

1999년인가, 그는 호주제가 왜 문제인가에 대한 팸플릿을 시리즈로 16회 작성했는데, 팸플릿이 한번 나올 때마다 273장을 보자기에 싸가지고 국회 의원회관에 들어가서 각각의 의원 사무실을 두드리고 보좌관들에게 한장씩 나눠주곤 했다. 그것이 그의 방식이다. 그는 비타협적인 호주제폐지론자고, 그를 과격하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폐지 주장이 결국은 호주제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정부와 비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안들을 검토하게 했다.

그가 과격하다고?

내 주위를 둘러볼 때 ‘이런 사람이 반드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 1순위가 고은광순이다. 그에게서, 정치하기에 제격인 요건은 이런 것이다. 먼저, 낙관적인 천성. 낙관적인 사람에게는 ‘반드시 돼야 하는 일’을 ‘되게’ 하는 힘이 있다. 또한 그는 다행히도, 돈 주고 권력을 사고 그 다음에는 권력으로 돈을 챙기는 구시대 정치인들에게서 정치를 배울 기회가 없었다. 대신, 시민운동에서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을 익혔으며, 대의를 위해 개인적 안락과 부를 포기한 경험은 있다. 또 하나 아주 중요한 점. 그는 탁월한 싸움꾼이라서, 자기 주장을 펼 때 주저함이 없으며, 저열한 인신공격을 동반한 역풍 앞에서 눈썹도 까딱 않는 배짱이 있다.

그가 과격하다고 고대 철학자 아낙사고라스는 “태양은 불타는 돌덩어리다”라고 말했다가 아테네에서 추방됐고, 갈릴레오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했다가 재판에 회부됐다. 그들이 과격한 건 그들이 옳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대의 상식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정치판은 왜 축구판처럼 남자들만 북적대는가. 전체 유권자의 절반인 여성들이 참정권을 허비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지만 투표를 할 수 있으려면 먼저 후보부터 만들어놓아야 한다. 아마 또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여성들이, 또 다른 고은광순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단결할 줄 모르는 마이너리티는 마이너리티의 운명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조선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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