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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나홀로 애국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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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1-1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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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문제로 온 국민의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이 문제의 해결을 저해하는 가장 치명적인 독소는 ‘나홀로 애국심’을 내세우면서 자기 본분을 망각하여 외교적 성과를 반감시키는 편협한 애국자들이다.

사진/ 김종수 기자
북한 핵문제가 불거지면서 새삼 안보의 중요성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경제와 문화의 시스템이 아무리 이상적으로 구축되었다고 하더라도 한번 전쟁에 휩싸이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은 한순간에 산화하고 만다. 이 때문에 안보는 ‘국가존망의 이익’(survival interest)이라고 일컬어진다.

이처럼 중요한 안보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세 가지 요소는 국방과 외교 및 국민통합의 힘이다. 세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비로소 우리의 생명과 재산은 안전해진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은 안보문제와 관련해 일차적으로 외교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100년 전의 역사가 증명하는 것


서양인들도 과거에는 외교보다 국방을 더 중요시했다. 그러다가 근대 민주주의의 성장과 더불어 외교를 중시하게 됐다. 과거의 군주국가에서는 전쟁을 통한 영토확장이 곧 부의 확대였던 반면, 현대 민주국가에서 전쟁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태롭게 만드는 행위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근대의 정치학자들은 평화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평화는 외교에 의한 힘의 균형이나 국제기구를 통해 유지된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현대의 대부분 국가들은 이와 같은 사상적 조류에 입각해 외교부(외무성 또는 미국의 국무부)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그 위상을 강화해왔다. 반면 우리나라는 오히려 외교의 위상이 약화되는 역행의 과정을 밟았다. 우리나라 외무부 예산은, 국제통상 업무까지 흡수했음에도 정부예산의 0.6%(약 7천억원)에 불과하다. 세계 12위의 무역국가로서, 특히 열강의 이해관계 속에서 적극적인 외교를 추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최소한 선진국 평균 수준인 전체 재정의 1% 정도로는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사실 그동안 우리의 외교는 미국에 크게 의존해왔기 때문에 적은 예산으로도 외교활동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탈냉전 시대의 외교는 변화를 요구한다. 실제로 외교부 예산을 심사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 빈약한 예산으로 ‘다변화 외교’로부터 ‘경제 외교’에까지 이르는 현대국가에 요구되는 방대한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외교가 안보의 전부가 될 수 없다. 국민의 통합된 힘과 국방이 뒷받침하지 못하는 외교로 안보를 지켜낼 수 없다는 사실을 100년 전의 우리 역사가 증명해준다. 당시 고종 임금은 철저한 외교론자였지만 나라를 일본에 강탈당할 수밖에 없었다. 힘없는 외교의 비극적 결말이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군사력의 약체보다 오히려 국민통합의 힘이 약한 데서 기인했다.

나는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책임이 친일 매국노들뿐만 아니라 애국자들에게도 있다고 생각한다. 근대문물을 수용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자는 개화파도 애국자였고, 우리의 정신을 잃지 말자는 위정척사파도 애국자였으며,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를 외치며 봉기한 동학농민군도 애국자였다. 이들 애국자들의 정변과 군란과 혁명이 그 본의와 달리 결과적으로 한일합방을 가속화했다는 것이다.

100년 전 조상들의 애국심은 오늘날 우리가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숭고하고 위대한 것이었다. 그분들은 신념에 목숨을 걸었고 총칼 앞에서도 의연했다. 그러나 그 정신은 본받을지라도 그 정치적 태도는 버려야 할 것이다. 그분들의 애국심은 ‘나홀로 애국심’이었기에 외교론자 고종을 도와 안보를 지키는 데는 크게 유용하지 못했다.

관용과 통합의 정신이 절실하다

개화파는 동학농민군을 비적(匪賊)으로 생각했고, 위정척사파는 개화파를 외세에 빌붙는 소인배로 폄하했고, 동학농민군은 자신들만이 진정한 애국자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선조들은 다른 사람들의 애국심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틈바구니로 외세의 힘이 손쉽게 침투해 들어올 수 있었다.

100년이 지난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애국심과 장관의 애국심, 여당의 애국심과 야당의 애국심, 장군의 애국심과 병사의 애국심, 기업주의 애국심과 노동자의 애국심, 노인의 애국심과 청년의 애국심이 각기 다를 수 있고, 실제로 그 차이는 정상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서로 다른 애국심을 상호 인정하고 관용하지 못하는 배타적인 정치적 태도로부터 우리의 안보가 심각하게 위협당하고 있다.

북핵 문제로 온 국민의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모두가 각자의 애국심을 표출해 슬기롭게 이 상황을 극복해야 할 때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평화적 해결’이며, 그것을 이뤄낼 수 있는 외교적 역량이다. 그리고 이 문제의 해결을 저해하는 가장 치명적인 독소는 ‘나홀로 애국심’을 내세우면서 자기 본분을 망각하여 외교적 성과를 반감시키는 편협한 애국자들이다.

‘나홀로 애국심’은 ‘나홀로 권력’(독재)이나 ‘나홀로 부자’(독점)를 추구하는 것만큼이나 우리 사회를 피폐시킨다. 서로 다른 애국심을 존중하고 그 애국심을 모아 타국과 논쟁하고 타협하는 공식적인 대표들의 외교활동은 존중하는 관용과 통합의 정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김대영/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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