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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문고리 권력’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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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1-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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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강재훈 기자
취재하면서 이곳저곳 다녀보았으나 청와대 구조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출입기자에 따르면 “큰 운동장만한 방에 대통령 책상과 회의용 탁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 흡사 절간을 연상시킨다”고 합니다. 청와대 사람들에게 본관은 구중궁궐에 비유되며 본관에서 근무하다 보면 내부 장식과 웅장함에 압도돼 궁중문화에 젖게 된다고 합니다.

역대 대통령이 민심을 너무 모른다는 지적을 받은 것도, ‘문고리 권력’을 낳은 이러한 공간 배치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열린 청와대, 일하는 대통령’을 지향한 조처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청와대 본관에 뚝 떨어져 있는 대통령 집무실을 비서실에 붙이고, 전자시대에 걸맞게 e-청와대를 열며 기자실 문호도 개방한다는 것입니다.

시대와 불화를 빚은 청와대의 구조와 시스템을 뜯어고치겠다는 것은 늦었지만 당연한 조처입니다.

일부 보수신문이 e-청와대 등에 대해 포퓰리즘을 우려하지만 기우에 불과합니다. 대중에 영합하려다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것인데, 한마디로 국민 무시하는 얘기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조직은 건강합니다. 내부 의사소통이 잘 되는 기업은 흥합니다. 국가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열린 청와대는 또한 참여민주주의, 주권재민의 이념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한판 선거로만 되지 않고, 주인인 국민의 참여와 요구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내친 김에 ‘대통령’이란 명칭도 바꿨으면 합니다. 큰 대, 거느릴 통, 다스릴 령, 세 글자 모두 뻣뻣합니다. 세습 안 되는 제왕으로 들립니다. 이름값 하느라 목에 힘이 들어간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대통령이란 용어는 조선시대 고종이 미국의 대통령(President)을 지칭하면서 처음 쓰였다고 합니다. 1883년 민영익이 미국 대통령을 만나 제출한 신임장에는 프레지던트의 독음인 백니쇠턴덕으로 표기했으나 1884년 <승정원일기>에서 고종이 미국 대통령에게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붙였다고 합니다. 당시 청나라에서는 미국 대통령을 두목·통령·총통 등으로 호칭했습니다.

서양에서 프레지던트는 회의에서 사회 보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유래했으며, 챈슬러는 문지기, 비서라는 뜻이고, 미니스터도 종이라는 뜻입니다. 회수를 건넌 귤이 탱자가 된 이상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에서 왕조시대에 갖다붙인 ‘대통령’을 물려 쓰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리더십 또한 명령과 지도에서 타협과 설득, 그리고 조정자와 중재자의 구실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명칭은 이런 기대역할에도 맞지 않습니다.

큰일꾼, 마름, 지킴이, 대공복…. 탈권위주의적이고 친근한 이름을 국민에게 지어달라고 해보면 어떨까요. 이것도 포퓰리즘인가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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