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날인 거부운동 '두 번째 전술'
등록 : 2000-10-10 00:00 수정 :
“주민등록증 반납이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인지 미처 몰랐어요. 반납은 위법이 아니거든요. 더구나 학생증만 있어도 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는데…”
주민등록증 반납운동에 열심인 오석영(22·서울대 전기공학부4)씨는 이번에 ‘국가권력이 얼마나 무섭게 사람들의 무의식에 똬리를 틀고 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주민등록증을 반납하는 작은 실천도 ‘정상적인 국민들’에겐 참 어려운 일이었다. 당연히 반납에 참여할 것으로 여겼던 후배가 “아버지가 공무원이에요”라며 꽁무니를 뺐고, 어떤 후배는 “무서워요…”라며 달아났다.
9월25일부터 시작된 주민등록증 반납운동에 동참한 서울대생은 총 50여명. 생각만큼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함께 벌인 ‘지문전산화 폐지 촉구를 위한 범서울대인 서명운동’에는 400여명이 참여해 이 운동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줬다.
반납운동은 지문날인 거부운동의 지평을 넓힌 깜찍한(?) 전술이다. 몰라서든, 독촉에 넘어가서든 일단 주민등록증을 만든 사람에게 지문날인 거부운동은 다시 참여할 수 없는 운동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반납’이라는 반짝이는 아이디어 하나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운동이 된 것이다. 이 운동은 ‘서울대 지문날인 거부모임’을 주축으로 이번에 처음 시작했다.
“저는 대표는 아니고요. 다만 좀더 책임감을 느끼고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서울대 지문날인 거부모임에는 대표가 없다. 대표제도든 뭐든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이들은 의심한다. 지문날인도 마찬가지다.
“전산입력된 내 지문정보가 어떻게 쓰이는지 국민들은 전혀 모릅니다. 누구의 손에 넘어가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는 무방비 상태인 거죠. 이건 일종의 폭력입니다.”
10월6일 서울대생과 사회단체활동가 15명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뒷마당에 모여 집회를 했다. 일단 전지 크기의 두꺼운 마분지로 대형 주민등록증을 만든 뒤 사진 붙이는 곳에 구멍을 뚫었다. 그 큰 구멍에 얼굴을 밀어넣고 옥중에 갇힌 춘향이처럼 하고 있으려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지문날인 거부를 알리는 효과적인 퍼포먼스였다.
집회가 끝난 뒤 서명인 명부는 직접 행정자치부에 제출했다. 반납받은 주민등록증은 내용증명을 확보하기 위해 우체국에서 등기로 행정자치부에 보냈다. “저 행자부 들어갈 때도 주민등록증 안 냈습니다.” 아직도 옛날 주민등록증을 고수하고 있는 오씨의 쑥스러운 자랑이다.
신윤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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