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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마지막 잎새는 겨울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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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1-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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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4명 무기징역으로 감형… 정권 말기 관행처럼 되풀이됐던 사형집행도 안 이뤄져

사진/ 정권 말기 무더기 사형집행의 문제점을 다룬 <한겨레21> 432호. 56인의 사형수들은 두려움이 좀 가셨을까.
“너무나 기뻐하고 새로 태어난 것 같았다. 감격의 눈물을 흘린 사람도 있다. 감형되지 않은 다른 사형수 형제들에게 미안해하고. 자기들이 생활을 잘해서 사형폐지로 가는 기폭제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들의 삶에 더 큰 무게가 실린다고도 했다.”

인권단체들의 계속된 노력


이영우 신부는 2003년 1월3일 오후 서울구치소에서 지난해 12월31일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4명 가운데 3명을 만났다. 이영우 신부는 사형수임을 뜻하는 ‘빨간 명찰’을 뗀 사람들의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사형제도 폐지운동을 펴온 그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연말이 다가올수록 내심 불안했다. 역대 정권이 정권 말기인 연말이면 관행처럼 사형집행을 했기 때문이다. 곧 물러날 정권이 새로 출범한 정권으로부터 ‘우리가 새 출발을 하게 설거지를 하고 떠나라’는 무언의 압력을 의식한 결과였다. 인권단체들은 이를 ‘재고처리’ 차원의 반인권적 발상이라고 비판해왔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권도 대통령 선거 뒤인 1997년 12월30일 23명의 사형수를 한꺼번에 처형했다.

사형수 출신에 인권 대통령을 표방한 김대중 대통령은 5년 임기 동안 한건의 사형집행도 하지 않았지만, 정권 교체기의 무더기 사형집행 ‘관행’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였다. 천주교쪽은 지난해 11월 정권교체기의 사형집행을 막기 위해 각당 대통령 후보들에게 사형제에 대한 공개질의를 하고, 사형제도를 다룬 영화 <데드맨 워킹>의 주인공 헬렌 프리진 수녀 초청강연회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기도 했다.

국제앰네스티의 국제적인 사형폐지 운동의 일환으로 앰네스티 국회 모임도 지난해 11월30일 ‘세계 사형반대의 날’을 맞아 국회의원 56명이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보호를 위해 사형폐지가 실현될 때까지 대기 중인 56명의 사형수들을 무기형으로 감형해줄 것”을 탄원하는 편지를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내기도 했다. 지난해 <한겨레21> 11월7일치(제432호)도 표지이야기 ‘대선이 두려운 56명의 사형수’에서 정권말기 무더기 사형집행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사형제도 폐지운동을 펴온 종교계와 인권단체들은 “그래도 연말에 사형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었는데, 집행을 하지 않았고 4명이 감형됐다. 현 정권 들어 사형수 11명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이런 결과가 쌓이면 궁극적으로 사형폐지로 갈 수 있다”고 기대를 내비추기도 했다.

사형폐지 특별법안 통과될까

이들은 사형폐지 법안을 발의한 정대철 의원이 민주당 대통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고, 노무현 당선자도 사형제도에 대해 “전향적으로 폐지를 추진하겠다. 다만 유괴살해범이나 가정파괴범 등 흉악범죄에 대해서까지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국민 법감정을 고려해 국민적 공감대를 넓히는 노력을 병행하겠다”는 정책을 밝힌 점을 눈여겨보고 있다.

2000년 7개 종단이 발족한 ‘사형제 폐지 범종교연합’에서는 올 봄 국회 본회의에서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01년 10월 민주당 정대철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를 넘는 155명이 서명해 법사위로 넘겼는데, 지금껏 심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검사 출신이 대부분인 법사위 소속 의원들이 사형제 폐지에 소극적이고 국민 여론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최근 가톨릭 신자 국회의원 모임 회장을 지낸 현 박관용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환 추기경 등 7대 종단 대표들도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면담을 요청해 이 문제에 대한 협조를 구할 계획이다.

현재 56명의 사형수가 형집행 대기상태에 있다. 국제인권단체들은 법률로 사형제도가 있더라도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면 사실상 폐지상태로 보고 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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