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을 바꾸기 위해, 청혼을 하기 위해, 꼬마들과 어울리기 위해 마술을 배우는 사람들
마술의 손놀림이 바빠지고 있다. 대학가와 인터넷의 마술 동아리에는 수천수만명의 회원이 가입했다. 대학을 마치고 직업 마술사의 길을 택하거나, 마술 공부를 하려고 휴학하는 대학생도 생겼다. 발빠른 일부 부모들은 대인관계를 넓히고 발표력을 키우기 위해 자녀들을 웅변학원이 아니라 마술학원에 보내기도 한다.
10대와 20대 젊은이들은 원래 호기심이 많은데다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의 영향을 받아 가장 먼저 ‘마술 유령’에 빠져들었다.
멋진 장미꽃 마술로 사랑의 고백을…
이정아(22·숙명여대 인문학부 3년)씨는 지난해 여름방학 때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개인기’도 갖추기 위해 2달 동안 마술 강좌를 들었다. 모임이 있을 때 마술 같은 특별한 재주가 있으면 처음 보는 사람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이씨는 “내성적이고 수동적인 성격인 사람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술을 하면 성격을 고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원 이병기(27)씨는 여자친구에게 청혼하기 위해 마술을 배우려고 한다. 그는 마술사처럼 허공에서 장미꽃을 멋지게 만들어내면서 마법 같은 말로 청혼을 할 계획이다. 마술 관련 인터넷 게시판에는 마술을 배우고 싶다는 청소년들의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이에 비해 30·40대가 마술을 배우는 목적은 실용적이다.
교사인 오재준(32)씨는 평소 마술에 관심도 있었지만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마술을 배웠다. 청각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서울 애화학교 교사인 오재준씨는 수업할 때 마술로 아이들의 흥미를 끌고 싶었다. “학생들을 칭찬하더라도 예전과 달리 말로만 하면 아이들이 집중하기 힘들다. 지난해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학예발표회 때 마술 공연을 할 정도로 아이들이 마술에 대한 관심이 많아 마술을 배우면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우리 학생들이 청각장애라서 시각에 민감해 마술을 더욱 좋아한다.”
이승희(42)씨는 중학생인 아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마술을 배우고 있다. 그는 그동안 직장생활에 바빠 아들과 이야기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다 보니 어쩌다 마주 앉아도 ‘공부 잘하느냐’고 물은 뒤 공감대가 없어 할말이 없더라는 것이다. 이씨는 “아들이 친구들끼리 배웠는지 집에서 마술 연습을 하는 것을 보고 이거구나 싶었다”며 “마술을 배워 나와 아들의 마음을 잇는 끈으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마술에 관심을 갖고 동호회에 가입하거나 마술강좌를 듣는 사람은 대략 3만~4만명가량이다. “만약 꿈꿀 수 있다면 그것은 현실이다.” 중국 만리장성을 통과하는 대형 이벤트 마술로 유명해진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한 말이다. 상상하는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주 매혹적이다. 마술 관련 사이트인 드림매직의 운영자 김지훈(34)씨는 “마술은 사람의 꿈을 간접적으로 실현시켜주는 수단이다”고 말했다. 창공을 날개 없이 날아오르는 꿈, 누군가에게 쫓기다 막다른 골목길의 장벽을 무사히 통과하는 꿈, 가고 싶은 곳을 순간 이동하는 꿈. 누구나 한번쯤은 꾸던 꿈이다.
김지훈씨는 “이런 꿈은 과학의 힘을 빌려 어느 정도 이루었지만, 거기엔 신비로움이란 요소가 빠져 있다. 마술은 이런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멋진 수단이며 그 속에는 보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치밀한 계산과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다. 마술을 신비한 현상이 아니라 논리와 기교를 갖춘 예술이다”고 설명했다.
넘어야 할 선입견의 벽
서기원(26·항공대 항공기계공학과 4년)씨는 ‘마술사’다. 서씨는 대학 2학년 때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곳이 마술카페여서 어깨너머로 마술을 배우게 됐다. 그는 다음달 대학을 졸업한 뒤 “돈을 적게 벌어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즐겁게 살기 위해” ‘프로’ 마술사로 진로를 확정했다.
서씨는 현대사회의 특성상 사람들이 마술에 관심을 쏟는다고 본다. 현대사회가 분화되고 급속히 변화함에 따라 혼란과 불안감을 느낀 사람들은 이를 잊기 위해 복권을 사고 영화를 본다는 것이다. 서씨는 “마술은 이런 현대인의 현실망각 문화에 딱 들어맞는다. 게다가 신기하고 재미있고 어린 시절의 향수도 불러일으킨다”고 최근 마술 열풍의 배경을 해석했다.
하지만 마술사에겐 넘어야 할 벽이 있다.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마술을 사기나 속임수라고 여기는 ‘닫힌’ 선입견이다. 1월3일 저녁 서울 신촌 마술카페 바그다드에서는 마술 공연이 펼쳐졌다. 연미복을 차려입은 마술사가 10여분 동안 무대에서 비둘기를 만들어내는 등 각종 마술을 선보였다. 하지만 일부 관객들은 공연 내내 박수 한번 치지 않고 팔짱을 끼고 마술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들은 마술사의 오른손과 왼손, 옷과 무대장치를 번갈아 보며 실수는 하지 않는지 어떤 속임수를 쓰는지 기어이 찾아내려는 듯했다.
드림매직 운영자 김지훈씨는 “마술 공연이 담고 있는 분위기에 마음껏 빠져드는 게 좋다. 꿈과 환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게 우리들 마음속에 순수라는 보물상자를 지키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기도 했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이 병으로 죽는다. 두 사람 가운데 한명은 그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안타까워한다. 그런데 다른 한명은 오히려 ‘저거 다 쇼다. 실제 죽는 게 아니라 각본에 따라 죽는 척 연기만 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둘 중 어느 쪽이 바람직한 자세일까. 실제 두 사람 모두 드라마나 영화는 허구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다름에 따라 감성적 여유를 느끼는 데 큰 차이를 보인다.”
글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서기원 마술사가 마술 카페 바그다드에서 카드 마술을 보여주고자 손님들이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고 있다.

한진우 마술사가 손가락에 낀 '빌리어드 볼' 숫자를 자유자재로 바꾸고, 비둘기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마술사들은 마술은 속임수가 아니라 논리와 기교를 갖춘 종합예술이라 설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