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다감한 인터넷사이트 솔로문의 운영자 손로문씨가 노숙투쟁을 하는 이유
하루에 15만~20만명이 방문하고, 40개의 게시판에 하루 600~700개의 새 글이 올라오고, 동시접속 인원이 1500명이나 되는 인터넷 사이트라면 사람들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포털서비스를 말하는 줄 알겠지만, 아니다. 헤어진 여자친구와의 첫사랑을 그리워하며 한 순정파 남자가 만든 홈페이지 ‘잃어버린 사랑을 위하여’(http://solomoon.com) 얘기다. 홈페이지 운영자인 손로문(35)씨가 발송하는 이메일 잡지는 받아보는 사람만도 20만명이다.
“여자 천명과의 연애소원 고백해!”
네티즌 사이에서 ‘모르면 간첩’ 취급을 받는 ‘솔로문’ 홈페이지 첫 화면에 들어가면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것이다”라는 애절한 영화대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은은하게 깔리는 배경음악도 감미롭다. 게시판 제목만 보고 ‘대충 짐작되는 상투적인 내용이겠거니’ 생각하고 클릭해보면, 장난이 아니다. 사랑·여행·영화·향수 등 현대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모든 분야가 총망라돼 있고, ‘시’(詩) 하나만도 주제에 따라 ‘사랑’, ‘우정’, ‘자유’, ‘이별’에 관한 시를 적을 수 있는 게시판이 따로 마련돼있다. 눈이 나쁜 헤어진 여자친구를 위해 라식수술에 대한 정보도 갖춰놨다. 홈페이지 어느 구석에서도 ‘노동운동’이나 ‘투사’의 분위기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홈페이지에 색다른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래에 실리는 글은 10여년 동안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했지만 부임한 지 6개월된 악덕 사장 홍성완에 의해 단지 노동조합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 정리해고 되어 투쟁 중인, solomoon 홈운영자 및 매거진 발행자의 현실에 관한 내용입니다. 현재 아래 글들로 인해 민·형사 고소까지 당하고 몇 개월째 월급을 받지 못했으며, 12월3일 부당해고까지 당해 여의도 SBS 사옥 앞에서 노숙투쟁 중입니다. 노동자란 이유만으로 힘없이 생존권을 박탈당하고 죽을 수 없다는 신념 하나로 계속 투쟁하고 있습니다.” 한겨울에 길바닥에서 잠을 자며 싸워야 하는 ‘노숙투쟁’이라니 도대체 이것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손로문씨를 만나러 찬바람 몰아치는 여의도의 SBS 사옥 앞으로 찾아갔다. 집회를 하고 있는 SBS미디어넷 노동자들에게 잠깐 인사말을 하는 동안에도 마이크를 쥔 손이 견딜 수 없도록 시려왔다. 맨 앞줄에 있는 노동자가 자신의 두툼한 스키장갑을 내 손에 끼워주었다. 차가운 보도블록 위에 얇은 스티로폼 한장 깔고 앉아 있는 조합원들의 엉덩이는 얼마나 시렸을까 “오늘은 제가 이야기하러 온 게 아니라 손로문 동지 인터뷰하러 왔습니다. 근처 조용한 곳으로 가서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따위의 상투적 질문부터 해야 되는 그런 상황이거든요”라고 양해를 구했다. 손로문씨와 함께 집회대오를 빠져나오는데 한 조합원이 큰 소리로 외친다. “여자 천 명하고 연애해보는 것이 어릴 적 소원이었다고 어서 가서 고백해!”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노숙농성투쟁을 하는 노동자들의 웃음소리에 나는 또 코끝이 찡해진다. 근처 찻집에 가 앉아 언 손을 따뜻한 유자차 김으로 녹이며 얘기를 시작했다. 손로문씨는 1994년 3월에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운영하는 스포츠채널 회사에 들어갔다. 1995년에 노동조합이 설립되었고, 1999년에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아래 경제위기를 맞아 공단이 스포츠 채널 회사를 청산한다고 했을 때, 직원들은 스스로 1년 가까운 기간의 월급을 30만원대로 낮춰 받으며 회사를 살렸다. “SBS가 회사를 인수한 뒤에도 근로조건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회사는 ‘흑자 경영이 될 때까지 조금만 참으라’고 했어요. 인수한 첫해에 57억원 적자, 다음해에 17억원 적자를 봤지만 올해 상반기에만 16억원 흑자를 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갑자기 분사를 하겠다면서 1주일 안에 하청회사로 갈 건지, 아니면 회사를 그만둘 건지 결정하라는 겁니다. 자세한 분사계획을 제시하지도 않은 채…. 우리들이 결정하면 다음에 설명하겠다는데, 이건 도대체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끝까지 남을 사람 37명만 남다
나는 짐짓 “하청회사로 가서 계속 일하면 되지 않나요”라고 물었고, 손로문씨와 ‘가장 친한 친구’ 자격으로 합석한 이형돈씨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열심히 설명했다. “골프·드라마·스포츠 채널 이렇게 세 회사가 ‘SBS미디어넷’에 있는데 새 사장이 온 뒤로 집요하게 노동조합 와해공작이 진행됐어요. ‘노동조합에서 탈퇴하면 이렇게 해주겠다. 노동조합을 아예 해산해버리면 저렇게 해주겠다. 그러나 노동조합에 남아 있으면 그때는 이렇게 하겠다….’ 결국 골프와 드라마 채널에는 노조가 없어지고 우리 스포츠 채널에만 노동조합이 남았는데 다른 직원들은 그냥 다 놔둔 채, 스포츠 채널 직원들만 하청회사로 가서 용역 노동자가 되라는 거예요. 이건 정말 빤히 속이 들여다보이잖아요. 경영합리화는 말뿐이고 실제 목적은 노동조합을 없애겠다는 거지요.”
49명의 조합원들이 자회사로 갈 것을 거부하고 파업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정말로 끝까지 남을 사람” 37명이 남았다. 회사는 12월3일에 조합원 33명을 정리해고했고, 조합원들은 여의도 SBS 본사 앞 도로에서 노숙농성투쟁을 시작했다. 2002년 10월에 일찍이 징계해고당한 사람들까지 포함해 현재 남은 조합원들은 모두 해고 노동자다.
최근 노동조합은 몇개의 법률적 판단에서 작은 승리를 거뒀다. 회사가 노동조합의 대자보 내용을 명예훼손으로 문제삼았지만 ‘혐의 없음’으로 처리됐고, 회사가 제기한 집회금지 가처분신청 또한 “80데시벨이 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허용해야 한다”는 판단을 받았으며, 회사는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사무실에 출입하는 것을 방해하여서는 안된다는 법원의 결정을 받았다.
“회사도 자신들의 행위가 불법·탈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우리를 다시 복직시켜야 한다는 법률적 판단을 받는다 해도 그때까지 조합원 수를 최소한으로 줄여보겠다는 속셈이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절대로 자회사로 갈 수 없는 겁니다. 어느 것이 옳은지 명백히 알 수 있으니까요.”
조합원들이 교대로 슬리핑백 속에 들어가 잠을 자면서 노숙농성을 벌이는데, 동료 이형돈씨 말에 따르면 손로문씨는 “다른 사람보다 두배나 더 많이 노숙에 참여하는 열성 조합원”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노동운동에 관심 가진 적이 없었어요. 처음에는 그저 ‘동료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했어요. 그때까지 조·중·동이 왜 쓰레기인지도 몰랐고, 제 홈페이지에 있는 그런 내용들에 대해서만 주로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파업하면서 자료를 찾아보고 여기저기 물어보다가 ‘내가 30여년 동안 깜박 속고 살아왔구나’ 싶은 거예요. 처음에는 파업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이 눈치가 보였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삶에도 도움이 되는 정당한 싸움인 거예요. 파업하지 않았으면 평생 깨닫지 못하고 살 뻔했어요. 지금 싸우면서 배우는 것들이 너무 재미있어 다른 갈등을 느낄 짬이 없습니다.” 역시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라는 말은 진리다.
‘현장복귀’가 이루어지는 나라…
“우리는 월급 더 올려달라는 거 아니에요. 주5일 근무하게 해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경영이 정상화되는 시점에서 직원 일부를 줄이는 것도 아니고, 절반은 용역 노동자로 만들고 절반은 자르면서, 프로그램 제작인력이 전혀 없는 이상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회사는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어요. 무엇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것을….”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갑자기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솔로문’ 홈페이지의 다정다감한 내용들이 살벌한 노숙투쟁과 만나는 지점이 그곳인 것이었다. ‘인간이 우선’이라는 것…. 우리의 미남청년 ‘솔로문’을 투사로 만든 것은 그것이었다.
나는 결국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실제로 천명의 여자와 연애해보는 것이 어릴 적 소원이었어요” 손로문씨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절대로 아니에요. 홈페이지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여자를 만난 적도 아직까지 없었어요.”
결혼정보회사에서 억원대의 가격을 제시하며 홈페이지를 팔라고 했지만 “이런 일을 통해서 돈을 벌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 때문에 마다했을 정도로 순수한 청년 ‘솔로문’의 가장 큰 소원- ‘현장복귀’가 이루어지는 나라,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하종강의 휴먼 포엠'은 새해부터 '하종강의 진짜 노동자'로 문패를 바꿔 답니다. 이 칼럼을 통해 독자 여러분의 생활에 영감을 주는 살아 있는 노동자들과 만나게 되시길 바랍니다.

사진/ '잃어버린 사장을 위하여' 개인 홈페이지 솔로문을 운영하는 손로문씨. 그는 요즘 사랑만큼 절박한 삶의 터전을 잃었다. (박승화 기자)
“아래에 실리는 글은 10여년 동안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했지만 부임한 지 6개월된 악덕 사장 홍성완에 의해 단지 노동조합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 정리해고 되어 투쟁 중인, solomoon 홈운영자 및 매거진 발행자의 현실에 관한 내용입니다. 현재 아래 글들로 인해 민·형사 고소까지 당하고 몇 개월째 월급을 받지 못했으며, 12월3일 부당해고까지 당해 여의도 SBS 사옥 앞에서 노숙투쟁 중입니다. 노동자란 이유만으로 힘없이 생존권을 박탈당하고 죽을 수 없다는 신념 하나로 계속 투쟁하고 있습니다.” 한겨울에 길바닥에서 잠을 자며 싸워야 하는 ‘노숙투쟁’이라니 도대체 이것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손로문씨를 만나러 찬바람 몰아치는 여의도의 SBS 사옥 앞으로 찾아갔다. 집회를 하고 있는 SBS미디어넷 노동자들에게 잠깐 인사말을 하는 동안에도 마이크를 쥔 손이 견딜 수 없도록 시려왔다. 맨 앞줄에 있는 노동자가 자신의 두툼한 스키장갑을 내 손에 끼워주었다. 차가운 보도블록 위에 얇은 스티로폼 한장 깔고 앉아 있는 조합원들의 엉덩이는 얼마나 시렸을까 “오늘은 제가 이야기하러 온 게 아니라 손로문 동지 인터뷰하러 왔습니다. 근처 조용한 곳으로 가서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따위의 상투적 질문부터 해야 되는 그런 상황이거든요”라고 양해를 구했다. 손로문씨와 함께 집회대오를 빠져나오는데 한 조합원이 큰 소리로 외친다. “여자 천 명하고 연애해보는 것이 어릴 적 소원이었다고 어서 가서 고백해!”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노숙농성투쟁을 하는 노동자들의 웃음소리에 나는 또 코끝이 찡해진다. 근처 찻집에 가 앉아 언 손을 따뜻한 유자차 김으로 녹이며 얘기를 시작했다. 손로문씨는 1994년 3월에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운영하는 스포츠채널 회사에 들어갔다. 1995년에 노동조합이 설립되었고, 1999년에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아래 경제위기를 맞아 공단이 스포츠 채널 회사를 청산한다고 했을 때, 직원들은 스스로 1년 가까운 기간의 월급을 30만원대로 낮춰 받으며 회사를 살렸다. “SBS가 회사를 인수한 뒤에도 근로조건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회사는 ‘흑자 경영이 될 때까지 조금만 참으라’고 했어요. 인수한 첫해에 57억원 적자, 다음해에 17억원 적자를 봤지만 올해 상반기에만 16억원 흑자를 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갑자기 분사를 하겠다면서 1주일 안에 하청회사로 갈 건지, 아니면 회사를 그만둘 건지 결정하라는 겁니다. 자세한 분사계획을 제시하지도 않은 채…. 우리들이 결정하면 다음에 설명하겠다는데, 이건 도대체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끝까지 남을 사람 37명만 남다

사진/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노동사무소 앞에서 복직투쟁 중인 손로문(맨 오른쪽)씨. 동료들은 그를 '열성적인 조합원'이라고 평가했다. (박승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