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독 부부의 ‘촛불 일심동체’
등록 : 2003-01-02 00:00 수정 :
효순, 미선을 기리는 촛불이 전국의 밤을 수놓은 12월14일. 독일 베를린에서도 교민 200여명이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모였다. 독일 교회와 유학생들이 중심이 된 이날 집회에서 한국 관련 행사에는 빠지지 않는 낯익은 얼굴의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김진향, 클라우스 멕 부부가 친구 소개로 처음 만난 것은 1969년. 김진향씨는 1966년 파독 간호사로 독일 땅을 밟았고, 클라우스 멕씨는 한 언론사에서 편집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1971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집회가 열리기 전 부부는 분주했다. 남편 클라우스씨는 편집기자 경험을 살려 독일어로 된 유인물과 피켓 작성에 발벗고 나섰다. 김진향씨 역시 촛불 등 시위용품을 준비하느라 쉴 틈 없이 손을 놀렸다. 집회 뒤 멀리서 온 사람들의 식사와 대화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부부의 몫이었다.
결혼 초기 두 사람은 의견 충돌이 많았다. 독일의 ‘운동권’이었던 클라우스씨는 고 윤이상 선생의 친구인 프로이덴 베르그씨를 통해 한국의 실정에 눈떴고 한국의 군사독재에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었다. 반면 철저히 반공교육을 받아온 김진향씨는 남편의 시각이 못마땅했다. 그러나 숱한 밤을 논쟁과 토론으로 지새우며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신뢰하게 됐고, 나아가 든든한 동지가 됐다.
김진향씨는 1977년 한국 여성들의 모임인 ‘서로 돕는 여성조직’에 참여하며 ‘재독 한국간호요원 강제송환반대’ 서명운동을 이끈다. 김진향씨가 본격적인 사회운동을 펼치며 부부의 집은 독일의 한국 유학생, 한국에서 온 시민운동가, 한국에 관심 많은 독일인들의 아지트가 됐다. 파독 간호사들의 모임인 재독한국여성모임 총무를 맡아온 김진향씨는 새해에는 일본군 강제위안부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며 한국의 통일에 이바지할 꿈을 안고 있다. 남편 클라우스씨는 유럽의 한국교민들을 묶어낼 유럽연대에 힘을 쏟고 있다.
김진향, 클라우스 멕 부부는 기회가 된다면 한국의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둥지를 틀 계획이다. 텃밭을 가꾸고 닭도 기르면서 한국의 아름다운 정취와 문화를 느끼며 여생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한다.
베를린= 글·사진 이정용 기자/ 한겨레 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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