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영화배우 출신’ 북한통들의 대모

440
등록 : 2002-12-26 00:00 수정 :

크게 작게

김보애(65). 한때 ‘은막의 여왕’ 또는 ‘사교계의 대모’로 불린 1960년대 최고의 영화배우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언제부턴가 대북 문화사업에 걸출한 족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북한 영화에 대한 관심이 그를 가시밭길이나 다름없는 대북사업에 첫발을 내딛게 만들었다. 국내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안방에 방영된 웬만한 북한 영화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쳐 들어왔다. 99년 12월 처음으로 남북 대중가수가 평양무대에 함께 선 민족통일음악회를 열었고,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직전에는 무려 50만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은 평양교예단 서울 초청공연을 막후에서 성사시켰다.

하지만 북한과의 문화교류 사업이라는 게 대개 돈 되는 장사가 아니어서 이제는 거의 빈털터리가 다 됐다고 푸념한다. “벌써 10년을 훌쩍 넘긴 것 같네요. 정말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끔찍하기까지 해요. 가끔은 왜 내가 이런 험난한 길을 선택했나 하는 후회를 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북한과의 인연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충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북한과의 교류는 나에게 더는 늙지 않게 하는 정신을 심어준 것 같네요. 참으로 보람 있고 신나는 일도 많았고요.”

그에게는 남이 하기 힘든 일거리가 하나 더 있다. 남쪽에서 대중성이나 예술성을 인정받는 괜찮은 한국 영화가 나오면 당국의 허가를 받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한국 영화를 전해주는 일이다. 지난 6월에도 베이징에 나와 있는 북쪽 관계 인사를 통해 <집으로…>의 복사본 35mm 필름을 전달해 언론의 눈길을 끈 바 있다.

이제 그는 새로운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2003년 1월부터 북한 기사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월간지 <민족21>의 공동발행인으로 거듭 태어난다. 민족사학자인 강만길 상지대 총장이 다른 공동발행인으로 든든하게 그의 뒤를 받쳐주고 있다. “사실 아직도 북한만 다루는 전문지가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간의 경험을 밑천으로 더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재정적인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직접 남북교류 현장에 달려가 주요 인물을 인터뷰해 더 많은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